황숙혜의 월가 이야기
[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정크본드 시장의 상승 열기가 뜨겁다.
지난달 3일 미국 46대 대통령 선거에서 조 바이든 당선인이 승리하면서 금융시장 전반에 훈풍이 번진 데다 화이자와 모더나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백신이 95%의 효과를 보였다는 소식이 고수익률을 제공하는 위험자산 매수 심리를 부추겼다.
뉴욕증시에서 항공과 호텔 등 팬데믹 사태에 직격탄을 맞은 섹터가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채권 투자자 역시 바이러스 확산에 벼랑 끝으로 내몰린 기업의 턴어라운드 가능성에 공격적으로 베팅하는 움직임이다.
1일(현지시각)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의 CCC 등급 회사채가 지난 11월 나란히 7%에 달하는 수익률을 올렸다.
이는 월간 기준으로 2016년 이후 4년래 최고치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유럽의 전체 하이일드 본드 시장은 같은 기간 4.3%의 수익률을 냈다. 이는 지난 4월 이후 최고치에 해당한다.
미국도 상황은 마찬가지. 투기등급 회사채의 수익률이 11월 사상 최저치로 밀렸고, 월간 기준으로 7월 이후 가장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
업계에 따르면 미국 CCC 등급 회사채의 평균 수익률이 최근 10% 아래로 하락, 지난 3월 19% 선에서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번 대선에서 백악관을 차지한 바이든 당선인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비해 매파 성향이 강한 것으로 평가 받지만 당장 강도 높은 규제를 동원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정크본드 시장에 훈풍을 일으켰다.
뉴욕증권거래소(NYSE)를 중심으로 한 뉴욕의 금융가 [사진=블룸버그] |
이와 함께 코로나19 백신 공급이 본격화되면서 경제 활동 재개에 속도가 붙는 한편 주요국 실물경기가 턴어라운드를 이룰 것이라는 기대도 정크본드 매수 심리를 자극했다.
페더레이티드 헤르메스의 앤드리 쿠즈네초브 펀드 매니저는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대선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해소됐고, 백신 공급에 따라 팬데믹 사태가 진화될 것으로 기대되는 등 굵직한 악재가 힘을 잃으면서 정크본드 시장에 상승 모멘텀을 제공했다"며 "11월 정크본드가 강한 상승 랠리를 펼쳤지만 당분간 강세 흐름이 이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JP모간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내년 유럽의 정크본드 디폴트율이 2%에 그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해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리는 기업들이 단기적인 유동성을 회복하면 파산 위기를 벗어날 것이라는 얘기다.
신용 평가사 스탠더드 앤 푸어스(S&P) 역시 미국 디폴트율 전망치를 내년 3월 기준 12.5%에서 9월 기준 9%로 낮춰 잡았다.
백신 공급이 임박했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면서 독일의 항공 업체 루프트한자와 영국 휘트니스 클럽 퓨어짐, 미국 크루즈 업체 카니발 등 팬데믹에 위기를 맞았던 기업들이 일제히 채권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시작했다.
카니발은 최근 6년 만기 달러화 표시 무보증 회사채를 7.625%의 금리에 발행했다. 이에 따라 지난 4월 약 12%에 달했던 발행 금리가 큰 폭으로 떨어졌다.
마찬가지로 팬데믹 사태에 개점 휴업 상태인 미국 영화관 업체 AMC 역시 하이일드 본드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 파산 위기를 모면했다.
미국 제약사 화이자가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 [사진= 로이터 뉴스핌] |
웰스 파고의 존 그레고리 레버리지 파이낸스 헤드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투자자들이 백신 공급에 대한 기대감에 벼랑 끝으로 내몰린 기업의 턴어라운드에 적극 베팅하고 나섰다"고 설명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경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백신 공급이 이뤄져도 경기 회복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MFS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헨리 피보디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백신의 대량 공급은 내년 중반에나 가능할 전망"이라며 "단기적으로는 백신 공급에 따른 경제 성장보다 2차 팬데믹에 따른 한파가 더 거셀 것"이라고 주장했다.
higrace5@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