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헷갈리는 대책회의 '우후죽순'
보여주기식 탁상행정…내부불만 고조
[세종=뉴스핌] 민경하 기자 = '제31차 혁신성장 전략점검회의 겸 정책점검회의 겸 제12차 물가관계차관회의 겸 제14차 한국판 뉴딜 점검 TF회의'.
회의 이름만 무려 50자. 외우기도 힘든 이 회의는 지난 13일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 주재로 열린 회의의 공식 명칭이다. 바쁜 일정으로 참석자가 비슷한 여러 회의를 한 자리에서 연 것. 이렇게 긴 이름을 가진 회의를 진행하는 것도 올해만 벌써 3번째다.
'혁신성장 전략회의'와 '혁신성장 전략점검회의'는 다른 회의다. 전자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재하는 장관급 회의이며, 후자는 사전에 관계부처간 실무를 조율하는 차관급 회의로서 기재부 1차관이 주재한다.
올해 들어 기재부는 회의의 늪에 빠졌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부처 특성상 기존에도 회의가 많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 대책과 4차례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한국판뉴딜 대책 등이 맞물리면서 이름도 낯선 회의들이 부쩍 늘었다.
[서울=뉴스핌] 이한결 기자 =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5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 겸 제33차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0.08.27 alwaysame@newspim.com |
지난 4월 시작된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는 이번주면 20회째를 맞이한다. 지난 8월 시작된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는 이번주 10번째 회의가 열린다. 지난 7월 발표한 한국판 뉴딜 정책과 관련한 관계장관회의도 벌써 4회 열렸다. 모두 홍남기 부총리가 주재하고 있다.
이처럼 올해 신설된 주요 회의들은 대부분 경제·부동산 문제가 크게 불거질 때마다 여론을 환기시키는 용도로 신설됐다. 주요 대책을을 발표하는 수단으로 활용해 왔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안건을 선정하는 것 자체가 숙제가 되버렸다.
때로는 어떤 회의에서 발표할 지를 놓고 정부 내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것도 일이 되버렸다. 때문에 회의 전날 밤 안건과 일정을 급하게 공지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알맹이가 없는 회의도 많다. 굳이 장관급 회의를 열지 않아도 되는 '추진상황'이 안건으로 다뤄지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제는 정부 내부에서도 '보여주기식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비슷한 회의가 많아진 것도 문제지만, 안건을 조율하고 회의 일정을 잡는 것 자체가 큰 일이 되버렸다"고 토로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기재부 산하 TF는 12개에 달한다. 이중에는 1인 가구 정책, 인구 정책, 40대 일자리 등 주요한 현안을 다루는 TF들이 방치돼 있다.
여기에 기재부 소관 위원회만 25개다. 부총리가 참석하는 관계장관회의 등을 합치면 준비해야할 회의 수는 더욱 늘어난다. 게다가 매주 일요일 오후에는 간부회의도 열리고 있다.
우후죽순 회의 속에 공무원들도 지쳤고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최근 기재부 내부 익명게시판에는 "위만 바라보고 아래는 죽든말든 신경 안쓰는 거냐" 등 비판의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되고 있다.
정부의 다른 한 관계자는 "비슷한 참석자, 유사한 정책을 두고 이름만 다른 회의는 통합하고, 회의 체계를 좀 더 효율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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