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아이들이 발뒤꿈치를 들고 벽 뒤에 눈을 가리고 숨어있다. 식물은 뿌리째 뽑힌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고 벽에 걸려있어야 할 십자가는 바닥에 굴러다니고 몸체와 분리된 부처 머리는 의자 위에 올려져 있다. 한 캔버스 위해 다양한 서사가 일상의 풍경처럼 그려져 있다. 쓸쓸함이 사뭇히지만 동양화 기법과 물감을 써 정감있게 느껴진다.
삶과 현실에 대한 집요한 관찰을 토대로 일상의 상징적 오브제를 세밀하게 그리는 작가 이진주가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 개인전 '사각(死角, The Unperceived)'을 선보인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사각 死角 (a) The Unperceived (a) ⓒ 2020 Jinju Lee [사진=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2020.09.10 89hklee@newspim.com |
전시의 제목인 '사각'의 의미는 보이는 범주 안에 들어오지 않아 보이지 않는다고 믿는 것이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게되는 '모순'인셈인데 작가는 우리가 옳다고 믿는 풍경의 이면에는 진실이 있고, 소개되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해석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작가는 근본적으로 완벽하지 않고 어딘가 왜곡되거나 결핍된 '불완전한 보기'를 시도한다.
이에 이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한번에 그림을 파악할 수 없도록 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A자형 구조로 작품을 제시한다. 펼쳐진 두루마리를 감상하듯 관람객의 눈높이에 맞춰 설치된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A자형 작품은 총 네 면으로 이뤄진다. 작가는 일상을 다소 직관적으로 표현했다. 일상의 냉혹함과 외로움, 인위적인 행태를 날것으로 그려냈다. 그러면서도 길게 펼쳐지는 화면에서 삶의 순환을 이야기한다.
이 작가는"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소 '비극적'이었다"며 "생각보다 어두운 분위기가 떠올랐고 우리 삶에서 겪는 시행착오와 모순들, 비논리적인 부분도 삶의 일부분이라 생각한다. 이를 애써 붙잡고 있는 싱그러운 모습을 사이사이에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이진주 개인전 '사각' 전시장 내부. A자형 설치작품 2020.09.10 89hklee@newspim.com |
작가의 작품에서 식물이 주로 보이는데 이는 '인위적'이라는 의미를 시사한다. 남미에서 온 식물을 인위적으로 증식시키는 인위적인 행위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담겨있다. 아울러 부처와 십자가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종교는 무엇인가'라는 의문도 던진다.
또 다른 작품에서는 최근 코로나 사태와 일상 속에서 힘듦을 겪는 과정에서 서로 얽히고 설키고 유기적으로 연결돼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볼 수 있다.
뒷면으로 돌아서면 여성과 목마를 타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는 작가의 딸이 사고를 당한 경험에서 느낀 감정과 생각을 담은 그림이다. 이진주 작가는 "아이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다가 다쳤다. 상처를 보면서 생명의 속도를 느꼈고 삶의 속도는 곧 죽음의 속도와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이진주 개인전 '사각' 전시장 전경 [사진=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2020.09.10 89hklee@newspim.com |
작가는 이 생각을 날리고 싶었다. 그림 속 인물 뒷 배경에는 눈처럼 재가루가 뿌려져 있는데 실제로 날린 재가루를 그림에 담았다. 작가는 "날린 재와 물감을 섞어 쓰면 잠시 멈춘 삶의 순간을 포착한 것과 의미가 통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A자형 설치 가장 안쪽에도 그림이 있지만 작가는 관람객이 이를 꼭 볼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는 "어차피 우리는 삶의 이면을 잘 못 보고 지나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다"라고 첨언했다.
전시는 9일부터 내년 2월 14일까지 이어진다.
한편 이진주 작가는 홍익대학교 동양화과와 동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두산갤러리 뉴욕,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모스크바 트라이엄프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서울시립미술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국립현대미술관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지난해에는 광주화루 우수상, 2014년 송은미술대상전 우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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