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숙혜의 월가 이야기
[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이른바 '나스닥 고래'로 등극한 일본 소프트뱅크의 미국 IT 종목 콜옵션 거래가 세간의 화제다.
일본의 큰 손이 40억달러에 달하는 콜옵션 베팅으로 500억달러 규모의 익스포저를 일으키며 IT 대형주 주가를 끌어올린 사실이 드러나면서 증시 전반에 충격이 일파만파 확산됐고, 소프트뱅크의 시가총액 역시 지난 한 주 사이 87억달러 증발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드라마가 소프트뱅크의 작품이 아니라는 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콜옵션으로 IT 대형주의 주가를 끌어올린 한편 뉴욕증시의 최고치 랠리를 주도한 세력이 실상 미국의 개미 투자자들이라는 얘기다.
월가 [사진=블룸버그] |
아울러 지난주부터 이어지는 기록적인 주가 폭락에서 콜옵션을 앞세운 극심한 쏠림이 영속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는 지적이다.
8일(현지시각)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2일 기준 1개월 사이 아마존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콜옵션의 일평균 거래 규모가 14만6000건에 달했다. 이는 사상 최고치에 해당한다.
애플도 마찬가지. 아이폰 생산업체의 콜옵션 거래 규모는 일평균 400만건을 웃돌았다. 이는 6년래 최고치다.
콜옵션 거래가 폭증한 한 달 사이 아마존과 애플 주가는 각각 9%와 24% 랠리했다. 꼬리가 몸통을 뒤흔들었던 셈이다.
테슬라의 콜옵션 거래도 200만건에 이르는 등 이른바 FAANG(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 모기업 알파벳)과 그 밖에 나스닥 지수의 최고치 랠리를 주도한 IT 대형주의 콜옵션 거래가 봇물을 이뤘다.
소프트뱅크가 대규모 콜옵션 베팅에 나선 것이 사실이지만 전체 물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지적이다.
콜옵션 거래를 주도한 세력은 미국의 무료 주식 거래 앱 로빈후드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개미들이고, 소프트뱅크는 오히려 이들의 거래가 달아오르는 상황을 확인한 뒤 베팅에 합류했다는 것이 시장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인터랙티브 브로커스의 고퍼트 스티브 소스닉 수석 전략가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 콜옵션을 이용한 주가 띄우기 전략이 열기를 더했고, 이를 확인한 헤지펀드와 그 밖에 기관들이 합류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묻지마 매수를 부추기는 레버리지 전략이 시장 질서와 주가를 왜곡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난해 주가 폭락에서 보듯 심각한 후폭풍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특정 종목을 보유한 세력들이 이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콜옵션에 뭉칫돈을 베팅할 경우 콜옵션 매도자들은 헤지 측면에서 해당 종목을 매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이로 인해 콜옵션 거래의 타깃이 된 종목의 주가는 상승 일로를 달리고, 더 많은 콜옵션 거래를 불러 일으킨다.
이 같은 움직임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지난 1월에도 150만에 달하는 회원을 보유한 미 커뮤니티 사이트인 레딧(Reddit)의 주식 게시판 월스트리트베츠(wallstreetbets)를 통해 콜옵션과 연계한 주식 거래 기법이 확산됐고, 이에 따른 잠재 리스크에 대한 경고가 쏟아졌다.
이후 로빈후드의 급부상과 함께 개미들이 운집한 플랫폼들이 늘어나면서 판이 커졌고, 이들이 IT 대형주를 뒤흔드는 이른바 고래로 세력을 확대했다는 설명이다.
이날 나스닥 지수가 장 초반 3% 이상 급락하며 1만선이 위태로운 상황을 연출한 가운데 시장 전문가들은 충격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시카고 소재 프로스퍼 트레이딩 아카데미의 스콧 바우어 최고경영자는 "개미와 소프트뱅크 중 어느 쪽이 먼저 시작했든간에 투기적인 콜옵션 베팅에 기댄 주가 상승이 영속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higrace5@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