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119구급차 단속했다는 얘기 못 들어봤다"
전문가 "CCTV 설치 등 요구하려면 정부 지원부터"
[편집자] 응급환자를 태우고 가던 구급차를 막아선 택시기사의 횡포가 알려지면서 국내 응급차 시스템에 대한 점검과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특히 사설 구급차에 대한 개선 요구가 절실해 보입니다. '119 구급차'와 똑같은 일을 하면서 단지 '사설'이란 이유로 불신과 홀대를 받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에 뉴스핌은 국내 사설구급차 운영 실태와 현장기사의 애환, 개선 방향 등에 대해 짚어봅니다.
[서울=뉴스핌] 사건팀 = "골든타임 응급환자가 타고 있는데도 경찰이 사설구급차만 단속하는 경우가 있어요. 119는 응급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안 잡는데 사설이라는 이유로 의심하는 거죠. 119든, 사설이든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로 긴급자동차인데 억울합니다."
병원 및 119, 사설 등 구급차는 모두 대통령령으로 지정한 긴급자동차로, 응급상황에서 사이렌을 울리고 출동한다. 그러나 응급환자를 태우지 않은 채 사이렌을 울리는 경우도 종종 발생해 따가운 눈초리를 받기도 한다. 사설구급차 업계는 경찰이 사설에 대해서만 가짜 사이렌을 단속하는 등 민간에서 운영한다는 이유로 유독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토로했다.
◆ 사설구급차도 긴급자동차인데...색안경 벗어야
15일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긴급자동차는 긴급한 용도로 사용될 때만 사이렌을 울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구급차가 응급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경광등을 켜거나 사이렌을 작동시키는 경우에는 그 운전자에게 최소 4만원부터 최대 7만원까지의 범칙금이 부과될 수 있다. 해당 법은 2016년 7월 개정됐다.
[사진=게티이미티뱅크] |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이 정한 '응급환자'는 질병, 분만, 각종 사고 및 재해로 인한 부상이나 그 밖의 위급한 상태로 인해 즉시 필요한 응급처치를 받지 아니하면 생명을 보존할 수 없거나 심신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환자 또는 이에 준하는 사람이다.
현장에서는 구급차 사이렌은 어쩔 수 없다는 목소리가 주를 이룬다. 법률이 정한 응급환자가 아니더라도 언제 상태가 악화될 지 알 수 없는 데다, 자칫 교통상황으로 인해 지체되면 골든타임을 놓쳐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열악한 영업 현실에서 고객이 빨리 가기를 원하면 요구에 맞출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A 사설구급차 업체 관계자는 "거동을 할 수 없는 환자 외래가 1시 진료인데 12시 40분쯤 전화가 와서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맞춰 도착하려면 어쩔 수 없이 사이렌을 울리기도 한다"며 "또 응급환자가 아닌 환자를 이송하는 중간에 급한 요청이 갑자기 들어오면 사이렌을 켜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고 말했다.
특히 사설구급차 대원들은 유독 사설에만 색안경을 끼고 이중잣대를 들이댄다고 토로했다. 사설구급차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현장에서 차별 대우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B 사설구급체 업체 대표는 "응급환자를 데리러 갈 때 당연히 빈 차라도 1분 1초가 급하니 사이렌을 켜야 한다"며 "쓸데없이 구급차가 경광등을 켜고 사이렌을 울린다고 비난하는 경우가 많은데, 신고자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환자의 구체적인 상태를 설명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단 위급하다는 신고를 받으면 사이렌을 켜고 환자를 데리러 가는 것"이라며 "사설, 병원, 119 모두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로 긴급자동차인데, 경찰은 사설만 단속한다. 119구급차였으면 경찰이 잡았겠느냐"고 덧붙였다.
◆ 사이렌 실효성 떨어져…구급차 공적 영역으로 끌어들여야
사이렌과 관련한 불만과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사이렌이나 경광등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끈다. 구급차 사이렌이 울린다고 해서 응급환자의 병원 이송 시간이 단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시은 응급구조학회 정책이사는"사이렌 소리로 인해 운전자의 심리상태가 불안정해질 뿐만 아니라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는 시간을 과학적으로 분석해봤을 때 사이렌을 켠다고 해서 감소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고율은 증가했다"며 "최근에는 되도록 안 켜는 추세로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게티이미티뱅크] |
위법적인 사이렌 사용에 대한 단속의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도 구급차 사이렌과 관련한 제도 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경찰 입장에서는 사이렌을 켜고 달리는 구급차를 일일이 단속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 응급환자가 타고 있을 경우 단속으로 인해 골든타임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7년 서울 강북구에서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60대 뇌졸중 환자를 이송하던 사설구급차가 버스전용차로로 운행한다는 이유로 경찰 단속에 붙잡혀 논란이 됐다. 경찰은 환자 탑승여부와 의사 소견서를 확인하고 구급차를 보냈다. 이 과정에서 환자 측은 20여분 지체됐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익명을 요구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구급차 안에 응급환자가 있는지 직접 열어봐야지 어떻게 알겠느냐"며 "만약 환자가 죽으면 사건이 되고 이슈화가 되는 상황에서 경찰도 정확한 제보가 없으면 단속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설구급차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선행된 후 철저한 관리감독 체계를 가동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시은 이사는 "규제와 의무만을 부과하고 정부의 실질적 지원과 관리 감독이 부실한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며 "우선 정부가 지원부터 해줘야 한다"고 했다.
이어 "구급차는 현장 및 응급실 처치, 전원 등 응급의료의 영역이라 공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당연히 국가가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하는데 민간 구급차 서비스는 철저하게 국민이 100% 부담하고 있다"며 "정부가 지원하게 되면 구급차 이용 관련 객관적 데이터의 실시간 확인이 가능하고 구급차를 적절하게 이용했는지 판단지표도 생기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ur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