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택시·버스·택배 기사, 색안경 시선
[편집자] 응급환자를 태우고 가던 구급차를 막아선 택시기사의 횡포가 알려지면서 국내 응급차 시스템에 대한 점검과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특히 사설 구급차에 대한 개선 요구가 절실해 보입니다. '119 구급차'와 똑같은 일을 하면서 단지 '사설'이란 이유로 불신과 홀대를 받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에 뉴스핌은 국내 사설구급차 운영 실태와 현장기사의 애환, 개선 방향 등에 대해 짚어봅니다.
[서울=뉴스핌] 사건팀 = # 간질 증세로 입원한 한 아이가 퇴원하는 길에 갑자기 산소 수치가 떨어지면서 위급해졌다. 간호사는 골든타임 6분을 넘기면 안 된다며 아이를 사설 구급차에 태워 다급하게 이동했다. 하지만 병원으로 향하던 중 승용차와 접촉사고가 발생했고, 승강이가 벌어지면서 3분이라는 시간을 길바닥에 허비했다. 구급차 블랙박스 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자 승용차 주인은 "사설 구급차 안에 환자가 진짜 타고 있었는지 몰랐다"며 후회했다.
구급차를 막아 세운 택시기사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택시기사가 접촉사고 처리부터 하고 가라며 10분 가까이 구급차를 막아선 주된 원인이 사설 구급차에 대한 불신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사설 구급차 대원들은 택시나 버스 운전기사들의 경우 119 구급차와 사설 구급차를 차별 대우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119 구급차와 달리 사설 구급차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는 것이다. 응급환자를 싣고 가는 상황에서 "119에요? 사설이에요?"라고 물어보는 경우도 발생해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사설 구급차.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 통행 방해 처벌 가능한데도…'길터주기'는 남일
12일 도로교통법 제29조에 따르면 119 구급차와 사설 구급차 모두 같은 지위를 인정받으며, 우선 통행할 수 있도록 진로를 양보해야 한다. 도로교통법 29조 4항과 5항에는 모든 차의 운전자는 교차로나 그 부근 또는 다른 곳에서 긴급자동차가 접근하는 경우 교차로를 피해 도로의 우측 가장자리에 일시 정지하거나 긴급자동차가 우선 통행할 수 있도록 진로를 양보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사설 구급차에 응급환자를 태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행 방해를 겪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사설 구급차를 방해할 경우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12조 및 제60조에 따라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 처분이 가능하다. 119 구급차와 처벌이 같지만 사설 구급차에 대한 불신이 더 많은 통행 방해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사설 구급차 대원들은 응급환자가 타고 있지 않은 것 아니냐는 오해로 인해 일명 '길터주기'를 지키지 않는 운전자가 많다고 입을 모았다. A 사설 구급차 업체 대표는 "사설 구급차 역시 응급환자를 태워 이동하기 때문에 법적 처벌 규정이 있는데, 잘 안 비켜줄 때가 많다"며 "구급차는 지정된 용도 이외에 사용할 수 없다. 어기면 영업정지가 내려와서 손실이 크다"고 토로했다.
B 사설 구급차 업체 대표는 "대부분 시민들은 사설과 119 구분 없이 길을 터주지만, 일부 택시나 택배차량 등 영업차량이 진로를 방해한다"며 "우리도 의료진이 동승하고 의료장비를 갖춘 구급차다. 응급환자를 데리러 가기 위해 이동 중인 경우도 많은데, 유독 사설 구급차는 환자가 타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사고가 나면 보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 초록색은 일반·빨간색은 특수, 차별도…"내 가족의 일" 인식 전환 시급
효율적인 환자 이송을 위해 특수 구급차와 일반 구급차를 색깔로 구분지어 놓은 것이 오히려 사설 구급차에 대한 반감만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위급의 정도가 중한 응급환자를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이송하기 위한 도입 취지와는 달리, '별로 위중하지도 않은데 왜 사이렌을 울리냐'는 반발심만 부추긴다는 것이다.
사설 구급차는 환자의 위급 정도에 따라 특수 구급차와 일반 구급차로 나뉜다. 특수·일반 구급차는 차량 외관에 둘러진 띠 색깔로 구분된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르면 특수 구급차는 '위급의 정도가 중한 응급환자의 이송에 적합하도록 제작된 구급차'로 외부에 빨간 띠와 '응급출동'이 표기돼 있어야 한다. 일반 구급차의 경우 외부에 초록 띠, '환자 이송, 환자후송' 표기가 원칙이다.
119 구급차.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환자의 위급 정도에 따라 긴박함을 구분 짓기 위한 띠 색깔이 오히려 사설 구급차 대원들에게는 '차별의 상징'이 된 셈이다. 특히 사정을 잘 아는 일부 택배·버스·택배 기사 등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C 사설 구급차 업체 대표는 "대부분의 시민은 사설 구급차 띠 색깔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사이렌을 울리면 길을 잘 비켜준다"며 "반면 택배기사나 버스기사 등은 사설 구급차의 사정을 잘 알고 있어 '별로 급하지도 않으면서 왜 유난이냐'는 시선으로 길을 제대로 비켜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자신이나 가족에게 언제 위급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고, 사설 구급차에 내 가족이 타고 있을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설 구급차 대원으로 일하는 B씨는 "사설 구급차는 119 구급차 운영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도입된 것"이라면서 "사설 구급차의 분명한 역할이 있는 데도 그에 비해 인식이 너무 좋지 않다"고 했다.
한 사설 구급차 대원은 "2차 병원에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사설 구급차를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며 "2차 병원에서 3차 병원으로 갈 때는 만성질환자가 아닌 목숨이 위험한 응급질환자가 대부분이니, 골든타임을 지켜주기 위해 양보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ur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