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숙혜의 월가 이야기
[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영난에 돈줄 확보에 비상이 걸린 미국 기업들이 전환사채(CB) 발행에 뛰어들었다.
트럼프 행정부와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천문학적인 규모의 유동성 공급에 나섰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현금 확보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고, 자금시장 여건이 악화된 데 따라 CB가 몇 안 되는 대안으로 부상했다는 설명이다.
달러화 [사진=로이터 뉴스핌] |
1분기 주요 기업의 매출액이 급감한 데 이어 2분기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어 기업의 자금난 역시 단기간에 진화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30일(현지시각) 회계 컨설팅 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4월 이후 미국 주식시장을 통한 기업의 자금 조달 규모가 125억달러로 파악됐고, 이 가운데 CB의 비중이 60%에 달했다.
이는 미국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초 이후 최고치에 해당한다. 딜로직이 데이터를 집계하기 시작한 1995년 이후 월간 기준 전체 자본 조달액 가운데 CB의 비중은 평균 18%를 나타냈다.
최근 수치가 수직 상승한 데 대해 시장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자금 조달 창구가 크게 제한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CB는 특정 시점에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주식 전환이 가능한 채권이다. 이를 매입한 투자자들은 주식 전환 시점까지 쿠폰 금리를 받은 뒤 주식으로 바꿀 때 전환 가격과 실제 주가의 차액만큼 수익을 손에 쥐게 된다.
다만, 주식 전환 시점의 주가가 전환 가격에 못 미칠 경우 채권을 주식으로 바꾸지 못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JP모간의 산토시 스리니바산 자본시장 헤드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금융시장이 정상적인 상황이었을 때 가동됐던 자금 확보 방안이 막혔다"며 "CB 발행이 기업에 얼마 남지 않은 대안"이라고 말했다.
바이러스 확산에 직격탄을 맞은 크루즈 업체 카니발이 이달 초 18억달러 규모로 CB를 발행했다. 주식과 회사채 신규 발행이 기대에 못 미치면서 CB 발행에 나선 것.
여기에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와 엘리어트 매니지먼트 등 헤지펀드 업체와 고금리 대출을 논의했지만 이 역시 매끄럽지 못했다.
발행 수익률은 5.75%로 올해 평균치인 2.2%를 크게 상회, 향후 실적 악화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반영했다.
코로나 충격에 매출 절벽을 맞은 벌링턴 스토어스와 딕스 스포팅 구즈도 각각 8억달러와 5억달러 규모로 CB를 발행했다.
카메라 업체 스냅도 CB 발행을 통해 8억5000만달러의 자금을 확보했고, 기업용 메신저 업체인 슬랙 테크놀로지 역시 이달 CB 매각을 통해 자금을 마련했다.
식품 가공 업체 US 푸즈 홀딩스는 CB 발행을 통해 사모펀드 업체 KKR로부터 5억달러의 자금을 조달했다.
CB 발행이 상대적으로 호조를 이루는 것은 연준이 자산 매입 프로그램에 회사채를 포함시키기로 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와 달리 기업공개(IPO) 시장은 마비 증세를 보이고 있다. 투자 심리 냉각과 증시 폭락으로 인해 지난 3월 중순 이후 기업의 IPO가 크게 줄어든 것.
의류 업체 J 크루가 자회사인 메이드웰 IPO를 취소했고, 여행 업체 에어비앤비의 올해 뉴욕증시 입성 역시 불발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higrace5@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