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 우량자산 매각·경영진 사재 출연 요구
두산중공업, 자구안 마련 위해 실사 진행
[서울=뉴스핌] 김진호 기자 =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두산중공업에 1조원 규모의 유동성 지원을 결정한 가운데 두산그룹의 자구안을 놓고 채권단과 두산그룹이 물밑 신경전을 벌이는 모양새다. 채권단은 ▲우량자산 매각 ▲경영진 사재 출연 등 고강도 자구안을 요구하는 반면 두산그룹은 이에 대해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두산중공업이 제작한 신한울 원전 1호기용 발전 터빈 <사진=두산중공업> |
2일 금융권에 따르면 두산그룹은 자구안을 마련하는 대로 산은과 수은 등 채권단에 제출할 계획이다. 두산그룹은 현재 자구안 마련을 위해 회계법인 실사를 진행 중이다.
앞서 정부는 두산중공업에 대해 긴급 운영자금 1조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수주 부진에 따른 경영 위기가 심각하다는 판단에서다. 두산은 1조원 대출과 관련해 두산중공업 주식과 동대문 두산타워의 신탁수익권 등을 담보로 제공하고 책임 있는 자구노력을 약속했다.
채권단은 두산그룹에 고강도 자구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의 재무 상태를 볼 때 1조원으론 턱없이 부족해 추가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두산중공업의 지난해 말 기준 차입금은 4조9000억원으로 이중 4조3000억원이 올해 만기다.
이렇다 보니 시장에서는 채권단이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밥캣 등 이른바 알짜자산에 대한 매각 방안을 자구안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뼈를 깎는 고강도 자구안이 없는 한 추가지원에 나서기 어렵다는 일종의 '경고'인 셈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막대한 국민 혈세가 투입되는 만큼 자구안은 설득력이 충분해야 한다"며 "알짜자산 매각도 여러 옵션 중 하나겠지만 중요한 것은 경영진의 책임 있는 태도"라고 말했다.
문제는 두산인프라코어, 두산밥캣 등 이른바 알짜자산 매각 방안을 두산그룹이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점이다. 두 계열사는 그룹 내 '캐시 카우(현금 창출원)' 역할을 하는 우량기업인데 이를 매각할 경우 사실상 두산중공업을 포기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서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채권단 요구에 대한 두산그룹의 셈법이 복잡해 보인다"며 "다만 우량기업 매각을 선택할 경우 영업환경 부실 등 악순환이 지속될 여지가 높아 현실성은 적어 보인다"고 귀띔했다.
대주주 고통 분담 차원에서 논의되는 총수 일가의 사재 출연에 대해서도 채권단과 두산그룹은 미묘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대주주 등의 고통 분담을 전제로 지원에 나선 것"이라며 "경영정상화에 실패하면 대주주에게 철저히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산그룹은 보유 중인 두산중공업 주식과 부동산 등을 담보로 제공했다는 입장을 밝혔을 뿐 경영진의 보수나 배당 반납 등 사재 출연 계획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다.
한편 채권단은 오는 27일 이전에 두산그룹이 자구안을 제출할 것으로 전망한다. 1조원의 긴급 운영자금 외에 수출입은행에서 지급보증했던 6000억원 규모의 외화공모채 만기가 오는 27일 돌아오기 때문이다. 두산중공업은 해당 외화채권 상환액을 추가 대출 형태로 전환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채권단 관계자는 "자구안 대출 데드라인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돈이 시급한 만큼 서두르지 않겠냐"며 "외화공모채 만기가 돌아오는 27일 전에는 자구안을 제출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rpl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