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정화 기자 = # 직장인 A씨는 얼마 전 업무 용도로 사용하는 메신저 단체 채팅방에 포르노 영상이 올라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같은 팀 상사 B씨는 A씨의 항의에 뒤늦게 "잘못 보냈다"고 사과했지만 A씨는 불쾌함을 감출 수 없었다. B씨는 평소 A씨에게 업무 시간 외에도 사적으로 연락했다가 "잘못 보냈다"고 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다.
# C씨는 최근 거래처 직원으로부터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업무차 한 차례 만났던 D씨는 C씨에게 업무 시간 외에 대뜸 "며칠 후면 출장을 간다"며 "현지 카지노에서 돈을 따면 술을 사줄 테니 이후엔 오빠 동생으로 지내자"는 말을 들었다.
[서울=뉴스핌] 이정화 기자 =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으로 성희롱에 대한 경각심이 사회 전반에 확산했지만, 여전히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직장 갑질 성희롱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20.03.06 clean@newspim.com |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으로 성희롱에 대한 경각심이 사회 전반에 확산했지만, 여전히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직장 갑질 성희롱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성희롱 피해자들 대부분이 항의하지 않고 그냥 참는 것으로 파악됐다.
8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및 전국여성연대 등 15개 단체로 구성된 3시STOP공동행동(공동행동)이 지난달 404명의 여성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 노동자 10명 중 7명(74%)이 직장에서 성차별을 경험한 것으로 확인됐다.
업무 외 직장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강요받는 여성 노동자들의 고충도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자는 직장의 꽃이니 나긋나긋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미혼 때 다니던 직장에서 고객 접대 때 업무상 관련이 없는 부서인데도 동참하길 강요받은 경우 등이다.
결국 이 같은 역할 강요는 여성의 꾸밈 노동 강요와 회식 자리 성희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직장인 D씨는 "화장을 하지 않고 출근했던 적이 있었는데 상사가 '출근할 때 화장하는 건 예의이자 매너'라고 해 상당히 불쾌했다"고 했다. 직장인 E씨는 "회식 자리에서 상사가 몸을 아래위로 훑으면서 '몸매가 좋으니 남자들이 좋아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위계질서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직장 내에서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가해지는 성희롱에 대해 신고하기는 사실상 쉽지 않다. 지난해 9월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는 직장 내 발생한 성희롱의 경우 신고를 받는 사람이 '사용자'로 돼 있는 탓이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에는 직장 내 성희롱이 발생했을 경우 해당 사업주에게 신고할 수 있게 돼 있다. 반면 명시된 성폭행(강간), 성추행(강제추행) 등은 형법상 처벌 규정이 있어 곧바로 경찰 수사가 이뤄질 수 있다.
최혜인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평소 회사 분위기가 폐쇄적이거나 남성 중심적인 경우, 피해자가 회사 사장에게 신고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신고할 의욕 자체가 꺾일 가능성이 크다"며 "특히 괜히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가 '회사를 시끄럽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힐 가능성이 높고, '농담을 했는데 예민하게 받아들인다'는 취급을 받을 가능성이 커 피해자들이 신고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여성가족부가 2018년 6개월여간 직장인들과 성희롱 방지업무 담당자 등 총 11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희롱 피해자의 81.6%가 '참고 넘어갔다'고 응답했다.
전문가들은 성폭행, 성추행과 달리 성희롱의 경우 형법상 처벌 규정이 없어서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 대해 판단하는 노동청의 권한을 대폭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 노무사는 "성희롱은 성폭력 중에서도 제일 피해자의 데미지가 낮은 수준으로 입증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어 무작정 가해자와 사업자를 처벌하는 게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면서 "사업주뿐만 아니라 성희롱 가해자에 대해 넓게 인정될 수 있어야 하고, 노동청 근로감독관의 역할을 강화하는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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