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쿠텐, 데이터 무제한 반값요금제 내놔…日, 요금인하 경쟁 시작?
GAFA에 대한 규제 목소리 높아진 점도 변수
[서울=뉴스핌] 김은빈 기자 = 일본 이동통신 시장에 요금 인하 바람이 불 전망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5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주장해오던 '통신요금 40% 인하'가 실현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애플이 비싼 통신료의 원인 중 하나였던 단말기 가격 인하에 나섰던 데 이어, 지난 3일엔 라쿠텐모바일이 타사요금의 반값 수준인 '라쿠텐 언리미트' 요금제를 내놨다. 월 2980엔의 요금으로 데이터를 무제한 사용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신문은 "요금 인하의 배경에는 GAFA로 불리는 대형 IT기업과 정치권 사이에 생기기 시작한 관계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라쿠텐 모바일 로고 [사진=로이터 뉴스핌] |
라쿠텐의 요금제 발표를 앞둔 2월 하순. 스가 관방장관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휴대폰 가격을 파괴하겠습니다"라고 말한 전화의 주인공은 라쿠텐을 이끄는 미키타니 히로시(三木谷浩史) 회장이었다.
스가 관방장관은 2018년 8월 삿포로(札幌)시 강연에서 처음 '휴대전화 요금 40% 인하'를 언급했다. 대형통신사 3사가 시장의 90% 이상을 독식하는 상황에서, 라쿠텐이 4번째 사업자로 참여하게 되면 가격경쟁이 이뤄져 이용자 부담이 줄어든다는 논리였다.
스가 관방장관은 지난 3일 라쿠텐모바일이 발표한 '라쿠텐 언리미트' 요금제에 대해 "해외 주요 사업자와 비교해봐도 상당히 저렴하다"며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일본 이동통신 시장에 변화가 일기 시작한 배경엔 다른 이유도 있다. 구글,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등 GAFA라 불리는 거대 IT기업이 각국 정부와 관계 모색에 나섰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스가 관방장관은 중의원(하원) 회관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면담을 가졌다. 신문에 따르면 스가 관방장관은 이 자리에서 "어디를 괴롭히겠다는 게 아니다"라며 "제대로 의견을 듣고 공명정대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스가 관방장관의 발언은 거대 IT기업을 규제하는 새 법안에 대한 것이었다. 일본 정부는 GAFA를 염두에 둔 규제 법안을 추진하고 있고, 스가 관방장관은 해당 법안을 논의하는 디지털시장 경쟁본부의 본부장을 맡고 있다. 새 법안에는 스마트폰 앱스토어 운영자와 앱 제작자와의 계약정보 개시 등을 요구하는 규제도 검토하고 있다.
스가 관방장관이 새 법안의 구상을 설명하자 팀 쿡 CEO는 "애플은 요코하마에도 거점을 만들어 일본에 공헌해왔다"며 "새로운 법안에서 협력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선다 피차이 구글 CEO도 이 시기 스가 관방장관을 찾았다. 피차이 CEO는 "일본에 더욱 투자할 생각이다"라며 "일본의 휴대전화 사업에도 한 층 힘을 쏟고 싶다"고 말했다. 스가 관방장관이 다루는 새 법안에도 협력하겠다는 자세를 드러냈다.
애플 텍사스 공장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제품을 보여주는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 [사진=로이터 뉴스핌] |
GAFA는 그동안 실리콘밸리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법 규제에 반발해왔다. 각국 정부와의 관계 구축에도 그다지 힘을 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 기업이 세계시장에서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소비자나 관계 사업자에 대한 그들의 지위가 막강해진 만큼 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세계 각국에서 높아졌다.
이에 위기감을 갖게 된 GAFA는 각국 정부와 법제도를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개인정보 유출 문제로 미 의회 청문회에 불려간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트레이트 마크인 티셔츠를 벗고 정장차림으로 의회에 간 것도 이런 맥락이 있다.
팀 쿡 CEO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가까운 관계임을 숨기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애플의 텍사스 공장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팀 쿡은 "미국 경제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며 추켜세웠다. 일본에서도 쿡 CEO와 피차이 CEO는 스가 관방장관을 규제 강화의 핵심인물로 보고 관계구축을 서두르고 있다.
스가 관방장관은 이런 변화를 포착했다. 전부터 그는 통신료가 비싼 이유가 50%가 넘는 일본 시장 점유율을 가진 아이폰에 있다고 보고 있었다. 통신사들이 애플과 맺는 계약 때문에 본래 통신료 할인에 충당해왔던 돈을 단말기 할인에 충당하고 있다는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다.
스가 관방장관은 이에 "핵심은 애플과의 싸움이니 애플에게 더이상 착취당하지 말라"고 총무부에 지시를 내리고,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지난해 5월 성립시켰다. 이 개정안은 통신계약을 조건으로 한 단말기 가격 인하에 상한선을 두고 있어, 과도하게 단말기를 할인할 수 없다.
애플은 이에 맞춰 지난해 9월 일반 시장을 위한 저가 아이폰을 발표했다. 사실상의 고액화 노선 전환이었다.
신문은 이같은 일련의 움직임에 대해 "일본에서 생긴 작은 변화로 향후 전 세계와 GAFA와의 관계를 점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kebj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