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법정 감염병 발생 단계별 대응' 매뉴얼 실시
법정 휴정? "위헌 소지 우려"vs"행정 조치 가능"
[서울=뉴스핌] 장현석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18번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환자가 나오는 등 국내에서 확산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민·형사 사건 관계자들이 많이 밀집해 있는 법원에도 이를 대비한 감염 대처법이 마련돼 있는지 관심이 쏠린다.
5일 뉴스핌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 법원은 다른 공공기관과 마찬가지로 신종 코로나에 대비한 대응 매뉴얼을 마련해 실시하고 있다. 다만 법원은 현재 단계에서 재판 휴정 문제는 고려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뉴스핌] 이한결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우려로 마스크를 쓴 시민들. 2020.01.30 alwaysame@newspim.com |
◆ 법조타운 덮친 코로나 여파…법원 대응책은
지난달 25일 신종 코로나 국내 8번째 확진자가 서울 서초구 소재 한 감자탕집에서 식사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법원, 검찰청, 변호사 사무실 등이 모여 있는 서초동 법조타운에도 감염병이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뉴스핌 취재 결과 법원은 코로나 같은 외부적 요인에 의한 위기 상황에 대비해 '법정 감염병 발생 단계별 대응' 매뉴얼을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고등법원에서 입수한 코로나 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법원은 크게 ▲위생관리 ▲출입통제 ▲업무관리 ▲환자관리 ▲홍보 등 5가지 항목으로 구분해 방역 관리에 나서고 있다. 관심, 주의, 경계, 심각 등 감염병 위기 경보 단계별로 각 항목의 대응 수준도 강화하는 방식이다.
우선 지난달 27일 격상된 '경계' 단계를 기준으로 볼 때 법원은 개인 선택에 맡기던 마스크 착용을 민원인을 접촉하는 모든 인원에게 확대했다. 세정제는 주요 출입구마다 비치하도록 의무화했다.
출입통제는 각 출입구 검색대에서 육안 검색으로 이뤄진다. 구두 질문을 통해 선별적으로 체열을 측정하기도 한다. '심각' 단계에선 건물에 출입하는 모든 인원이 체열 검사를 받아야 한다.
법원 구성원에 대한 업무관리도 더 엄격해진다. 법원 직원 중 환자가 발생하면 성모병원으로 후송하고, 접촉 인원을 조사해 격리 조치한다. 민간인을 접촉하는 부서는 업무시간을 단축하는 반면 법원 내 보안을 담당하는 부서는 근무시간을 확대해 관리를 강화한다.
◆ '코로나 우려'로 법원 휴정?…"헌법적 문제와 연결"
다만 코로나 위기 경보 단계가 '심각' 단계로 격상돼도 재판을 연기하는 등 법정 휴정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법원 감염병 대응 매뉴얼은 법원 개정 여부에 대한 권한을 재판장 재량에 맡기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난안전대책본부 결정도 '권고' 수준으로 뒀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관계자는 "법정 휴정 문제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며 "재판장이 질서유지권과 소송지휘권 형태에서 마스크를 쓰도록 하는 것과 재판을 일률적으로 일단 멈추라고 하는 것은 시작점이 다르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행정부에 속하는 대통령 뿐만 아니라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이라고 해도 권고라면 모를까 일률적으로 휴정을 지시하는 것은 사법농단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며 "헌법적인 고민을 더 해봐야 할 지점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대한민국 헌법이 '입법·사법·행정' 등 3권의 분립을 엄격하게 분리하고 있고 각 재판을 이끄는 판사 개개인의 사법권을 보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외부적 요인을 이유로 법정 휴정을 강제할 경우 자칫 헌법이 보장하는 판사의 독립권을 헤칠 수 있다는 우려로 해석된다.
이 관계자는 현재 법원은 신종 코로나 여파와 관련해 법정 휴정 문제는 논의되고 있는 바가 없다고 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우려가 국내에 확산하는 가운데 서울고등법원은 4일 '법정 감염병 발생 단계별 대응' 매뉴얼을 마련해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2020.02.04 kintakunte87@newspim.com [자료=서울고등법원] |
◆ "법원도 공공기관, 휴정 조치 가능…강제할 순 없어"
판사 출신의 신중권 법무법인 거산 대표 변호사도 법정 휴정 문제와 관련해 신중한 입장을 내놨다.
신 변호사는 "민사든 형사든 모든 국민은 재판받을 권리가 있다"며 "지금도 사실 재판이 너무 많아서 기일이 계속 밀리고 있는데 이 사태가 끝날 때까지 재판을 열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형사 사건의 경우 당장 구속 기간 만기가 있고, 기일 내 처리해야 하는 사건도 있어 마냥 연기할 수는 없다"며 "권리 구제가 빨리 이뤄져야 하는 등 국민의 권리와 연관돼 있어서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국가적 재난 사태와 같은 특별한 상황의 경우 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가 일률적으로 휴정을 결정하는 것은 법원 행정권자의 재량권 범위 내에 있어 헌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봤다.
신 변호사는 "법원행정처는 법원 내에 있는 사법기관이기 때문에 법원 자체 내에서 법정 휴정을 정할 수 있다"며 "법원 행정적 차원에서 내리는 조치는 기관장의 재량이자 권리일 수 있고, 그 정도의 통제는 법원장의 권한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석했다.
행정부의 정책적 결정에 대해서도 "사법기관이 독립적인 기관이지만 한편으로는 공공기관이기도 하기 때문에 다른 관공서와 함께 손발을 맞출 필요가 있다"며 "(코로나 여파가) 가장 심한 기간만이라도 법정을 휴정한다는 자체로 헌법적 문제가 크게 발생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입장을 내놓았다.
그러면서도 "물론 각각의 판사 자체는 하나하나가 헌법기관이기 때문에 강제할 방법은 없다"며 "현 국면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법원 휴정까지 결정할 상황은 아니고 예전에도 특별히 (감염병 때문에) 재판을 연기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kintakunte8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