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6일~내년 3월 12일까지 전시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손으로 만질 수도 눈으로 볼 수 없는 시간을 시각화한다면 어떤 형상이 될까. 예술가들의 시선을 통해서 본 시간은 마모된 비누, 지우개를 지우는 행위에서도 나타난다.
서울대미술관은 기획전 '시간을 보다'를 26일부터 내년 3월 12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의 구성은 ▲순간의 박제 ▲시간의 궤적 ▲수행의 시간으로 나눠진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구본창의 'Soap' 시리즈에 대해 설명하는 이준영 서울대미술관 학예사 2019.12.26 89hklee@newspim.com |
전시는 유유히 흘러가는 시간을 순간 포착하고, 시간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수행을 통해 시간성을 표면화하는 작업을 소개한다. 참여 작가는 구본창, 김태헌, 노경희, 박승원, 배남경, 배수경, 성낙인, 이가경, 이만나, 이현우, 이창훈, 임윤경, 임윤수, 정재호, 천창환, 홍희령, 로만 아팔카이며 설치미술, 사진, 회화, 영상 등 80점을 볼 수 있다.
사진작가 구본창의 'soap' 시리즈는 마모돼 작아지고 부서져가는 다양한 종류의 비누를 촬영한 작품이다. 비누로 몸을 씻는 행위는 비누가 작아지고 소멸되는 즉,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다. 작가는 시간에 따라 작은 존재들이 간직하는 찰나의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이창훈 작가의 설치작품 '미완의 프로젝트 두물머리' 2019.12.26 89hklee@newspim.com |
이창훈 작가는 시간의 궤적을 볼 수 있는 작품을 마련했다. 설치 작품과 사진, 드로잉 작품이다. 이 작품의 배경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명박 정부 당시 '4대강 사업'을 통한 경기도 양수리 '두물머리의 유기농업 육성정책'이 진행됐으나 다음 정부에서 취소됐다.
이에 작가는 유기농업 육성정책을 환기시키는 의도를 담은 붉은 깃발 12개를 2015년 1년간 한 달에 한 기씩 추가해 개양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그러나 '레드 콤플렉스' 등 주변의 반대로 붉은 깃발을 4개까지 다는 것으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미처 달지 못한 8개 깃발을 전시장에 설치했다. 그리고 12개 깃발을 다 세웠을 경우를 상상해 그린 드로잉 작업도 볼 수 있다. 시간에 따라 붉은빛이 바랜 깃발의 모습을 담았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홍희령 작가의 'DA 지우게' 2019.12.26 89hklee@newspim.com |
또한 작가는 1년간 사용한 메모용 칠판의 궤적을 기록하고 이를 책자로 만들어 실제 칠판과 함께 관객에게 제시한다. 사회적 이슈를 대변하거나 개인적 의미를 가진 특정한 사물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화해가는 궤적을 시각화하는 이창훈의 작업은 이념의 취약함과 존재의 가변성을 드러낸다. 동시에 그럼에도 변하지 않고 지켜나가야 하는 소중한 가치를 부각한다.
또, 관람객들을 위한 칠판도 준비됐다. 작가는 방문객이 직접 참여하고 '시간'의 궤적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홍희령 작가의 '지우개' 작업도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 예정이다. 전시장 한편에는 기억이 깨끗해질 때까지 빈 책상을 지우개로 지우는 관객 참여 작품 '마음에 지우다'(2016)가 놓여 있다. '마음에 지우다'에서 파생한 대량의 지우개 찌꺼기를 모아 설치작업 'DA 지우게'를 전시했다.
이 작업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마음에 지워진 고통에 대한 해소의 의지를 '지운다'는 행위를 통해 드러낸다. 동시에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를 보여준다. 관람객이 직접 지우개질을 하고 'DA 지우게'에 옮겨 참여할 수 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홍희령 작가의 '마음에 지우다' 2019.12.26 89hklee@newspim.com |
이 전시의 유일한 해외 작가의 작품 로만 아팔카(1931~2011, 폴란드)의 '1965/1-∞'도 만난다. 1965년부터 동일한 크기의 캔버스(196x135)에 1부터 무한에 이르는 숫자를 써 내려간 로만 아팔카는 캔버스에 자신이 기록한 숫자를 하나 하나 음성으로 녹음했고 하나의 캔버스를 완성하고 나면 동일한 의상과 표정으로 초상사진을 촬영했다.
각각의 캔버스 작업은 '1965/1-∞'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작품의 일부로서 개별 캔버스의 첫 숫자와 마지막 숫자로 이뤄진 '부분'으로 표기되는데 이러한 반복적인 행위를 '수행적'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 2011년 작가의 사망과 함께 완성된(미완으로 끝난) 이 작품은 46년에 걸친 지난한 창작의 시간과 삶 자체를 명징하고 연속적인 숫자의 나열로 변환함으로써 자신의 인생과 존재를 예술로 치환하는 수행의 완결을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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