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배우 이상윤이 'VIP'에서 가진 것을 모두 내려놨다. 데뷔 후 처음으로 불륜남을 연기하며 드라마의 성공을 위해 모두 내던졌다.
SBS 월화드라마 'VIP'의 종영을 앞두고 청담동 한 카페에서 이상윤과 만났다. 그는 "이 작품 덕에 수명이 굉장히 늘었다"면서 애써 웃었다. 다행히 그가 성준 역으로 욕을 먹을수록 드라마는 승승장구했다. 'VIP'의 성공을 단단하게 받친 한 축으로 역할을 해낸 셈이다.
"저한텐 감사한 작품이에요. 너무 많이 사랑해주셔서 다 좋았죠. 아쉬움이야 남는 거지만 좋은 사람들과 일할 수 있어 그게 가장 컸어요. 감독님, 작가님, 스태프들 다요.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 촬영 기간 감정적으로 힘든 게 연기 말고는 전혀 없었어요. 물론 각오했던 것보다 더 심하게 미워들 하셨어요.(웃음) 성준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들이야 예상을 했는데 많은 분들이 몰입해서 보시다보니 저한테도 강한 반응들이 많이 오더라고요. 어쨌든 제작 발표회 때도 성준이 욕먹을 수록 드라마가 산다고 말씀드렸으니까요."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배우 이상윤 [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2019.12.24 jyyang@newspim.com |
실제로 성준이 극중 불륜을 저지르고, 정선(장나라) 앞에서 답답하게 굴면서 이상윤을 향해서도 비난의 화살이 날아왔다. 성준을 연기하면서 이상윤이 어떤 부분에 포인트를 뒀는지, 어느 정도 시청자들의 해석과 맞아 떨어졌는지 궁금했다.
"저는 진짜로 이 사람 속을 알 수 없게 하고 싶었어요. 매 신에서 감정이 다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했죠. 드러나려고 하는 순간조차도 굉장히 답답하게 드러내는 게 성준이란 인물인 거예요. 그래도 그 감정이 있는지 정도는 몇 가지 신에서는 보여줄 필요가 있었어요. 그 몇 장면이 관건이었죠. 거기서마저 안보였다면 제가 잘못한 게 맞아요. 나머지에서는 답답하게 보이게끔 의도한 거예요."
나정선을 대하는 성준의 감정이야 미안함과 복잡한 감정이 얽혀있어 답답해 보인다 치지만, 온유리(표예진)를 향해서도 비슷해보인단 평도 있었다. 이상윤은 "유리와도 사실 좀 애매한 게 있긴 했다"고 연기하기 무척 까다로웠던 점을 털어놨다.
"처음에 유리랑 연결이 되는 건 분명히 계기가 있죠. 각자의 입장이 있었고 과거 가정사가 있었고요. 성준은 아내가 유산을 하면서 묵묵히 안아주려 하는데 아내는 밖으로 감정을 표출하면서 밀어내잖아요. 또 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힘든 상황을 겪게 되죠. 그래서 성준이 유리한테 흔들렸지만 진짜 사랑은 아니었다고 봐요. 옳은 관계가 아닌 걸 알고 있잖아요.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무너지는 걸 모른척할 수가 없는 거죠. 사랑보다는 이 사람에게는 과거의 트라우마랑 관련돼 마음이 열릴 수 있다고 봐요. 그래도 이 관계가 영원할 수 없다는 건 바보가 아닌 이상은 알겠죠. 함께 있으면서도 항상 진심으로 웃고 있지 못한 그런 관계 같아요."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배우 이상윤 [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2019.12.24 jyyang@newspim.com |
이상윤은 드라마가 큰 사랑을 받았음에도 웃을 수만은 없는 입장이지 않을까. 의외로 본인은 "욕 먹는 역이라고 해도 상관은 없다"면서 앞으로도 역할의 성격을 따질 마음이 없다고 했다. 오히려 드라마를 빛낼 수 있다면 어떤 악역이라도 감당할 준비가 돼있다면서 각오를 다졌다.
"욕 먹을 거라는 걸 사실은 대본을 보자마자는 몰랐어요. 6부까지 봤는데 너무 재밌었죠. 이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지, '이 문자가 진짤까' 저도 너무 궁금했어요. 처음에는 진짜 여자가 있는 게 아니고 사연이 있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 두 가능성을 갖고 미팅을 했어요. 얘기를 나누면서 문자가 사실이고 여자가 있고 그 여자가 누구인지까지 얘기를 듣고 알았죠. 뒤의 이야기도 너무 재밌게 풀어나갈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욕을 먹는 역이라고 해도 상관은 없었어요. 작품을 빛낼 수 있다면 당연히 연기잔데 욕먹는 것 정도는 감수할 수 있죠. 그동안은 훈남 역할이나 좋은 이미지 위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어요."
'VIP'에서는 처음에 나오는 의문의 문자부터 성준이 바람을 피우는지, 또 그 상대는 누구인지 등 끊임없이 시청자들에게 미스터리를 던졌다. 방영 중반 즈음엔 '남편 찾기가 흥행하니 이번엔 불륜녀 찾기'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였다. 지상파 드라마에서 이런 포맷을 시도한 건 드물 뿐더러, 이상윤이 이런 형식의 드라마에 출연한 것도 처음이다.
"저희끼리 진짜 얘기를 많이 했어요. 어떻게 속여야 할까 고민했죠. 처음부터 뭐가 있었지만 잘 감춰서 나중에 그게 보여야 하는 걸까? 다들 전혀 아니었던 것처럼 연기를 하다 뒤통수를 쳐야 하는 걸까? 여러 가지로 연구했어요. 실제로는 유리를 다르게 대해야 정체가 확 눈에 띌텐데 그걸 안하려고 다른 사람들과도 다 톤을 맞췄죠. 유리랑도 현아(이청아)도, 미나(곽선영)도 신경 안쓰이는 척, 아무것도 없는데 오히려 뭐가 있는 척 하고요.(웃음) 현아가 성준의 넥타이를 올려주는 장면은 원래 없던 신이었어요. 감독님도 시선을 좀 돌리려고 장치나 신들을 추가하셨죠. 여기 걸려들까? 하면서 우리끼린 재밌었어요. 반대로 상상으로 더 크게 만들기도 했어요. 정선이 꿈 속에서 남편과 어떤 여자가 키스하려는 장면을 봐요. 그때는 세명을 다 찍어서 훼이크를 주는 거예요. 하하. 어떤 장면은 연기를 두 버전으로 해서 엔딩에는 놀라는 걸 쓰고, 사실은 아닌 걸로 간 적도 있죠."
[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배우 이상윤 [사진=제이와이드컴퍼니] 2019.12.24 jyyang@newspim.com |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드라마를 경험했다며 기뻐하면서도, 이상윤은 "사실 너무 힘들었다"고 고개를 저었다. 제작발표회 당시에도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하고 생각했다는 그는 장나라와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착하게 살겠다고 한번 더 다짐했다.
"드라마 보셨으니 다들 아시겠죠 이제. 사실 너무 힘들었어요. 이렇게 살아보니까 아내의 의심어린 눈초리를 계속 받아야 하고 말은 못하고 상황은 꼬이고요. 사건은 계속 터지니 죽겠더라고요. 대본만 받고서는 성준이 실수했고 잘못한 건 맞지만 살면서 이렇게까지 동병상련을 겪는 상대에게 위로받다보면 실수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뉘우치고 있고 정선에게 잘해보고 싶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너무 안받아주는 거 아니냐 했었죠.(웃음) 촬영하면서 겪어보니까 그냥 제가 다 수긍했어요. 이건 진짜 아닌 것 같다고요. 나라씨는 처음부터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 바람을 피운 순간 끝이다'고 하더라고요. 하하. 근데 그분도 찍다보니 변했어요. 계속 의심을 하다보니 성준이 불쌍하다고요. 본인 같으면 피말릴 게 아니라 그냥 정리했을 거라고 했죠."
전국의 안방에서 욕을 먹는 쉽지 않은 경험을 마친 이상윤은 오는 새해에도 몇 가지 도전을 앞두고 있다. 영화 '오케이! 마담'으로 코믹액션 장르를, SBS 새 예능 '진짜농구핸섬타이거즈'에서는 농구 예능으로 또 다른 면을 보여줄 예정이다. 또 연극 출연과 관련해서도 긍정적으로 얘기가 오가고 있다. '많은 것을 시도했고 바쁜 한 해'였다는 2019년을 보낸 그의 2020년이 새롭게 기대됐다.
"코믹액션 영화는 해보지 않은 장르예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는 액션만 해요.(웃음) 정화 누나와 성웅 형이 기가 막히게 코믹을 맡아주셨죠. 코믹연기를 해본 적은 없지만 시트콤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전부터 그런 얘기를 꽤 했는데 재밌을 것 같아요. 현장에서 배우들끼리 역할 정해서 매일 시트콤하고 놀거든요. 요즘은 많이 없어 아쉬워요. 내년 하반기 즈음엔 연극을 하려고 생각 중이에요. 얘기 중인 것도 있는데 더 자세하게 진행이 될 거예요. 예전엔 서울대라는 타이틀이 크게 작용했는데 감사하게도 이제는 희미해졌더라고요. 제가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는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다양한 쓰임으로 쓰이고 그렇게 믿음을 주길 바라죠. 반짝하는 배우가 아니라 오래오래 여러분과 만나고 싶어요."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