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파업 사흘째 접어들면서 시민 불편 가중
과거에는 시민들 사이에서 응원 대자보까지
[서울=뉴스핌] 황선중 기자 = 세종시에 사는 최모씨는 철도파업의 피해자다. 오랜만에 가족여행을 계획한 최씨는 2주전 오송-부산간 주말 KTX를 15% 할인받고 예약한 뒤 여행날짜만 기다려 왔다. 하지만 22일 최씨는 철도공사로부터 '취소됐으니 반납하고 다른 시간대로 예약하든 환불받아라'는 통보를 받았다.
여행을 하루 앞두고 날벼락을 맞은 최씨는 "여행스케줄이 완전이 망가졌다"며 "파업을 아예 하지 말라는 건 아니지만 이번 철도파업은 명분이 뚜렷하지 않은 듯 해 씁쓸하다"고 말했다.
근무여건 개선 등을 요구하는 전국철도노동조합의 무기한 총파업 사흘째인 22일 출퇴근길 교통 혼잡이 잇따르면서 시민들의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과거 철도파업 당시 시민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응원의 목소리를 전하거나 파업 지지 대자보가 붙었던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이날 만난 대다수의 시민들은 철도노조가 과도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직장인 김지환(43) 씨는 "요구사항을 보면 일은 더 편하게 하면서 월급은 더 많이 받고 싶다는 이야기 같다"며 "다들 힘들게 먹고 사는 세상이다보니 주변에서도 파업에 잘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종훈(27) 씨는 "파업이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굳이 파업까지 할 정도의 급한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다"며 "굳이 교통 운행량이 많아지는 대학교 수시 기간에 파업하기보다는 점진적으로 사측과 협상했으면 국민의 여론의 지지를 받았을까 싶다"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철도 파업이 시작된 다음날인 21일 오전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의 시민들이 전철을 기다리고 있다. 신도림역은 2호선과 철도노조의 파업 영향을 받는 1호선이 만나는 역이다. 2019.11.21 pangbin@newspim.com |
◆ 과거 철도파업 때는 시민사회 격려 이어져
그러나 시민들의 반응은 2016년 철도파업 당시엔 다소 달랐다. 2016년 9월 27일 철도노조는 성과연봉제 도입 반대 등을 명분으로 파업에 돌입했다. 이 파업은 74일간 이어졌다. 철도노조의 파업 중 역대 최장기간 파업이었다.
당시 시민들은 지하철역 곳곳에 자발적으로 응원 대자보를 붙였다. 파업 첫날이었던 9월 27일 서울 지하철 옥수역에는 '불편해도 괜찮아'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걸렸다. 대자보에는 "철도 같은 공공기관은 성과보다는 공공성과 시민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며 "이번에는 조금 불편해도 참겠다. 당당히 투쟁하라"고 적혀있었다.
서울 지하철 당산역에도 "공공기관 부채가 문제인 것은 맞지만 그 책임을 왜 노동자들이 져야 하는가"라며 "철도노동자들이 '철밥통'을 지키려고 파업한다는 말은 대한민국의 모든 일자리가 '하향 평준화' 돼야 한다는 말과 같다. 우리 모두를 위한 브레이크인 철도 노동자의 정당한 파업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대자보가 붙었다.
수서발 KTX 법인 설립을 반대하며 시작된 2013년 철도파업 때도 시민들은 격려를 보냈다. 당시 온라인 사진 커뮤니티인 'SLR클럽' 회원 600여명은 철도노조 파업을 지지하는 광고를 신문에 실었다. 광고에는 '정부는 4년, 철도는 100년'이라는 문구와 파업을 지지하는 회원들의 실명이 적혔다.
또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 '뽐뿌' 회원들은 자발적으로 라면 등 후원물품을 철도노조에 전달했다. '소울드레서' 회원들은 핫팩 2만개를 후원했다. '오늘의 유머' 회원들은 300만원가량의 후원금을 보냈다. 후원이 이어지자 당시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
대학가에서도 파업 응원 열기가 분출됐다. 2013년 12월 고려대학교에는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대자보를 붙인 당시 재학생 A씨는 "7600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도 모자랄 판에 철도 민영화에 반대한다며 7600명의 직원을 직위 해제하는 몰상식한 행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서울=뉴스핌] 황선중 기자 = 2016년 철도파업 당시 서울 지하철 옥수역에 붙었던 익명 대자보. <자료=온라인 커뮤니티> 2019.11.22 sunjay@newspim.com |
◆ 전문가 "이번 철도파업 명분, 국민 관심 끌기에 부족"
전문가들은 철도파업에 대한 여론이 달라진 이유를 철도파업 명분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철도파업 당시에는 노조가 '성과연봉제 반대', '철도민영화 반대' 등 거대 명분을 내걸었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었지만, 이번 파업은 그러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박근혜 정권 때는 정부가 민주노총에 대해 강압적인 모습을 보였고 철도민영화 등 대형 사회 이슈가 맞물려 대중의 공감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노조의 요구사항에 대해 국민의 관심이 떨어지는 상황"이라고 했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다른 공기업에 비해 철도노동자들은 3조 2교대로 근무하는 상황인 데다가 업무 특성상 야간에 일이 더 많기 때문에 극심한 피로에 시달리고 있다"며 "시민들에게 불편을 드려 죄송하지만 이번 파업을 통해서 근무여건 개선을 꼭 이뤄내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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