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현대화랑은 '한국 추상회화의 선구자' 남관의 회고전 '남관의 추상회화 1955-1990'을 선보인다. 1955년 프랑스로 건너가 현대미술을 공부하며 추상화 작업을 펼친 그의 작품 중 60여 점이 공개된다.
이번 전시는 현대화랑에서 열리는 남관의 다섯 번째 전시다. 1972년 열린 남관의 개인전은 현대화랑의 첫 추상화 전시이기도 했다. 이후 1983년, 1988년, 1995년 전시를 개최하며 남관의 국제적 성공과 예술적 성취를 한국 미술계에 적극적으로 알렸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남관 작가 [사진=현대 화랑] 2019.11.04 89hklee@newspim.com |
도형태 현대화랑 대표는 "1972년 당시 추상회화를 갤러리에 거는 건 힘든 결정이었다. 그 후 정기적으로 전시를 열었고 좋은 반응을 얻었다. 현대화랑 최초의 추상회화전을 연 남 작가는 우리에게도 소중하다"고 소개했다.
남관(1911~1990)은 프랑스에 미술공부를 떠난 최초의 한국 작가다. 현대화랑 관계자는 "이성자 작가가 1951년으로 프랑스로 떠난 시기가 남관 작가보다 이르긴 하다"며 "하지만 이 작가는 화가로 간 것이 아니다. 남관이 미술공부를 위해 가장 먼저 프랑스로 간 작가"라고 말했다.
남관은 몽파르나스에 화실을 마련하고 세계 각지에서 파리로 모인 작가들의 아지트와 같았던 아카데미 드 라 그랑드 쇼미에르에서 3년간 현대미술을 공부, 본격적으로 추상화 작업을 시작했다.
파리에 정착한 지 1년 만인 1956년, 남관은 파리시립미술관에서 기획한 '현대국제조형예술전'에 참여했다. 1958년 당대 파리 화단을 이끈 전위적 예술모임 '살롱 드 메'에 한국인 최초로 초대 받는다. 이 모임은 추천인이 필요한데, 당시 평론가였던 가스통 딜이 남관을 높이 평가했다. 가스통 딜은 "남관이야말로 서양문화를 흡수하고 동양문화의 어느 일부조차 희생 없이 동서를 분리시키면서 동시에 융합시키는 거의 독보적인 예술가"라고 극찬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전시장 전경 [사진=현대화랑] 2019.11.04 89hklee@newspim.com |
이번 전시에서는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말 그가 파리에 머물던 시기의 작품과 1968년 귀국해 작고 전까지 탐구한 작품을 선보인다. 쉽게 나눠 '파리 시대', '서울 시대'로 나눌 수 있다. 두 시기 작품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파리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은 그의 추상화 초기작인 '피난민'(1957)에서 잘 드러난다. 한국전쟁 당시 해군종군화가로 활동한 그는 전쟁의 참혹함을 가까이서 목격하고 이를 그림에도 녹여냈다. 작가는 생전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전쟁터에 널브러진 인간의 연약한 신체를 고성의 돌 조각이나 부서진 유물과 연결지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 그림의 모티브는 자주 전쟁의 기억에서 온다. 벌판에 쓰러진 젊은 병사의 얼굴, 토막나 뒹구는 팔다리, 시체 위로 쏟아지는 햇볕, 전란으로 우왕좌왕하는 군중까지. 내가 그리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얼굴"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서울 시대'에서는 남관의 독특한 인간상과 색채가 잘 드러난다. 파리 시절 회색이나 자색 계열을 자주 사용한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청색으로 캔버스를 물들였다. '푸른 반영' '묵상' '정과 대화' '내 마음에 비친 상들' '방랑자의 꿈' '삐에로의 꿈' 등 작품 제목에서도 명상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가 풍긴다. '서울 시대'에 청색을 많이 사용한 이유에 대해 현대화랑 관계자는 "일각에서는 남관 작가가 프랑스 파리의 하늘을 떠올리며 작업했다고 보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황색의 반영'(1981), Oil on canvas, 130x199.8cm [사진=현대화랑] 2019.11.04 89hklee@newspim.com |
남관은 뭣보다 표현 기법이 인상적이다. 미술계에서 그를 현대미술가로 보는 이유도 이것이다. 종이를 캔버스에 붙이거나, 붙였다 떼고 그 위에 물감으로 덧칠하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추상 언어를 완성해갔다. 이 기법으로 상형문자, 신라시대 왕관이 떠오르는 형상도 만들었다. 현대화랑 관계자는 "작가 작품의 질감은 서구적이고 그림 속 형상은 동양적이다. 이를 두루 다루는 것이 작가의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1911년 경북 청송에서 출생한 남관은 14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해방 전까지 생활했다. 도쿄 태평양미술학교를 졸업한 후 구마오카 미술연구소에서 2년간 연구 과정을 수료하며 작가로 이름을 알린다. 문부성미술전, 동광회전 등에 출품했고 후나오카상과 미츠이상 등을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해방 후 귀국한 그는 1947년 이쾌대, 이인성, 이규상 등과 조선미술문화협회를 결성했다. 1948~1951년 숙명여자대학교와 홍익대학교 교수를 역임했고 1955년부터 13년간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다. 1968년 귀국한 후 1978년까지 홍익대 미술대학 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썼고 1969년과 1975~1976년 국전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전시는 6일 개막해 30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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