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자들 "모처럼 외롭지 않다는 감정 느낄 수 있던 시간"
매주 1회씩 총 5주 동안 프로그램 진행
경찰 "실종자 가족에 행복과 희망 심어주겠다"
[서울=뉴스핌] 임성봉 기자 = 지난달 31일 오후 3시쯤 서울 동대문경찰서 용두치안센터 2층 '실종자 가족 지원센터'에 희끗한 머리의 중·장년 10여명이 둘러앉았다. 이들은 '몸짱', '짠돌이' 등 각자 지은 별칭이 적힌 이름표를 부착하고 있었다. 곧 '만남 윷놀이' 게임이 시작되자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이들은 윷놀이 말판에 적힌 지령에 따라 옆 사람에게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라며 덕담을 하거나 큰 소리로 웃고 박수를 치기도 했다.
지난달 31일 서울 동대문경찰서 용두치안센터 2층 '실종자 가족 지원센터'에서 참가자들이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임성봉 기자] |
이 자리는 다름 아닌 경찰청의 '실종자 가족 심리치유 프로그램' 현장이다. 대상은 잃어버린 자녀를 애타게 찾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이다. 짧게는 1년, 길게는 40년이 넘도록 아이의 행방을 찾느라 웃음조차 잃었던 이들은 이날만큼은 마음 놓고 웃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날 프로그램에는 40년 넘게 실종된 아들 이정훈(당시 4세)군을 찾고 있는 전길자 씨도 함께했다. 집 앞에서 놀겠다던 전씨의 아들이 사라진 건 지난 1973년. 아직 눈에 선한 아들을 보지 못한지 꼬박 46년이 지났다. 그 세월 동안 웃음, 슬픔 등 전씨의 모든 감정은 무뎌져 갔다. 하지만 작은 기대를 안고 찾은 '실종자 가족 지원센터'에서 전씨는 더 큰 희망을 발견했다.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웃으면 곧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다.
전씨는 "모처럼 행복하다는 감정, 외롭지 않다는 감정을 느꼈다"며 "특히 다른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하면서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꿈꾸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프로그램은 1시간 30분 동안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무려 40분이나 늦게 끝났다. 프로그램에 푹 빠진 참석자들의 호응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참석자들은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 "아이를 잃은 후 웃을 일이 전혀 없었는데, 오늘은 오랫동안 웃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가슴 한구석이 막혀있는 느낌이었는데 이렇게 웃고 나니 소화가 다 되는 느낌이다" 등의 소감을 밝혔다. 특히 이들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이런 자리를 마련해준 경찰에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경찰도 참가자들에게 '경찰이 실종자 가족들 곁에 항상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의미의 호신용 호루라기 등을 나눠주는 것으로 답례했다.
경찰이 실종자 가족들의 심리·정서적 문제 등을 돕기 위해 '실종자 가족 심리치유 프로그램'이 호평 속에 이날 처음 돛을 올렸다. 경찰이 실종자 가족을 집단대상으로 심리치유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은 이번이 최초다.
이번에 진행되는 1회차 프로그램에는 '1년 이상 실종자' 가족 중 희망자 10여명이 선발돼 참여했다. 프로그램은 매주 목요일마다 △오리엔테이션 △마음 인식 △마음 표현 △감정 다루기 △희망 설계 등을 주제로 총 5주 동안 진행된다.
서울 동대문구 용두치안센터에 마련된 '실종자 가족 지원센터'의 모습 [사진=임성봉 기자] |
프로그램은 경찰청이 피해자 지원을 위해 개발한 '폴케어앱'을 이용해 호흡명상, 이완호흡법 등을 배우거나 찰흙만들기, 역할극 등으로 구성됐다. 특히 경찰은 전문적인 심리치유를 위해 경찰 심리전담요원 19명도 투입했다.
경찰청은 오는 28일 1회차 프로그램을 마무리한 후 보완점 등을 검토해 2회차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방침이다. 참가를 희망하는 실종자 가족들은 경찰청 아동청소년과 혹은 실종자가족지원센터로 연락하면 된다.
경찰 관계자는 "실종자 가족들 대부분은 가정에서 홀로 아픔을 삭히는 경우가 많은데 보통은 마음의 병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심리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실종자 가족들에게 행복과 희망을 심어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imb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