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중국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토록 불만을 토로했던 첨단산업 육성 정책 '중국제조 2025'를 포기, 미국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면서도 미국산 농산물 500억달러 수입은 보장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과 중국은 11월 중에 1단계 무역합의에 서명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다만, 중국의 이러한 아리송한 태도 때문에 무역합의 서명까지 종잡을 수 없다는 회의론도 나온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이 중국제조 2025를 대신할 산업 정책을 구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는 익명의 중국 정부 관리들을 인용해 류허(劉鶴) 부총리가 새로운 정책 설계 책임을 맡았으며 그는 현재 2021-2025년 산업 정책 초안을 마련 중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지난 28일부터 열린 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4중 전회)에서 제조 2025를 포기하고 이를 대신할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제조 2025는 지난 2015년 5월 8일 국무원이 제조업 활성화를 목적으로 발표한 첨단산업 전략을 일컫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정부가 해당 정책 아래 자국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현지에 있는 미국 기업의 첨단기술 이전을 자행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해왔다. 때문에 중국의 제조 2025 포기는 미국에 한발짝 양보한 움직임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WSJ는 그러나 이는 해외 기업의 투자 유치 활성화를 위한 조치에 더 가깝다고 했다. 공산당원들은 4중 전회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의 경제 성장 목표인 '2010-2020년까지 2배의 국가 경제 성장'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3분기 국내총생산(GDP)은 27년 만에 최저치인 6.0%(전년 동기 대비 기준)를 기록했다. 현재 1년정도 기한이 남은 상황에서 시 주석의 목표치를 이루려면 경제성장률은 6% 이상 유지돼야 한다. 경제 성장 압력이 가중되면서 중국 고위 관료들은 외국 기업의 중국 투자와 사업을 계속하기 위해 노력을 강화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 美中, APEC 취소에도 1단계 무역합의는 예정대로
칠레가 오는 16, 17일로 예정됐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를 취소했지만 미국과 중국은 예정대로 1단계 무역합의 서명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31일 트위터에 "중국과 미국은 전체 거래의 60%가량인 1단계 무역합의 서명을 위해 새로운 장소를 물색하고 있다"면서 "새로운 장소가 곧 발표될 것이다. 시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은 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보다 앞서 중국 상무부도 성명을 통해 내고 양국이 긴밀한 대화를 이어가고 있으며 양국 협상단은 1일 전화통화도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직 무역합의 서명을 위한 대체 장소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로이터통신과 폭스 비즈니스는 중국이 미국에 마카오를 서명식 장소 후보로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양국의 1단계 무역합의 내용은 중국이 대두와 돼지고기 등 미국산 농산물 연간 400억~500억달러어치를 구입하고 미국은 2500억달러 규모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25%→30% 인상하지 않겠다는 것이 골자다.
양국은 지난달 10, 11일 워싱턴DC서 고위급 무역협상에서 이같은 내용의 1단계 무역합의를 잠정 도출했다.
대두 [사진=블룸버그 통신] |
◆ 中, 1단계 합의해도 당장 美농산물 구입 어려워
문제는 중국이 현실적으로 미국의 연간 농산품 구입 요구를 맞출 수 있느냐다. 중국은 연간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약속했지만 구체적인 규모와 특정 기한을 약속하기 보다 시장 상황에 맞춰 수입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중국이 약속을 온전히 이행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로이터에 따르면 중국 상무부 산하 중국식품수출입상회(CFNA)의 차오더룽(曹德荣) 회장은 30일(현지시간) 싱가포르에서 개최한 한 포럼에서 "중국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추가 관세를 철회하는 것"이라며 "관세를 철회한 후 기업들이 각자의 판단과 시장 규칙에 따라 구매 결정을 내리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중국이 미국산 농산물에 대한 추가 관세를 철회하면 기업들이 수입하는 데 덜 어려움을 느낄 것이라는 설명이다. 기업들의 자발적 선택에 맡기겠다는 것은 연간 400억~500억달러 어치 수입을 보장할 수 없다.
중국은 지난해 7월 미국발 관세의 보복 조치로 대두 등 미국산 곡류에 대해 25%의 관세를 물렸고 올해 9월 일부 관세를 인상했다.
차오 회장은 "중국은 시장 여건에 기반해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늘리도록 노력하겠지만 400억~500억달러는 매우 높은 목표이므로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은 미국산 대두 수입을 늘리고 미국산 오일시드를 수입하는 업체들에게 당국이 관세를 면제해주는 등 선의의 태도를 보였다고 강조했다.
앞서 로이터는 중국 정부가 10월 초 미국산 대두 1000만t에 대해 정제업체들이 내야 하는 관세를 면제해줬다고 보도한 바 있다.
지난달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이 시작되기 전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오른쪽부터)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류허(劉鶴) 중국 국무원 부총리를 맞이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 뉴스핌] |
미국 측도 중국이 농산물 구매 약속을 당장 실행할 수 없다는 데 동의하는 분위기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 행사 참석차 방문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농산품 구입 약속은 "미국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중국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수준을 바탕으로 한 '바텀업'(bottom-up·상향식) 방식에 기초한 것"이라며 "1년이 목표지만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는 연간 400억~500억달러라는 농산물 수입 규모가 미중 무역갈등이 있기 전에 2017년 수준에서 2배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 진짜 문제는 2·3단계 합의
미국과 중국은 1단계 합의 서명에 근접했지만 중국 관료들은 미국과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무역협상 타결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31일 블룸버그통신은 중국 정책입안자들이 4중 전회를 맞아 베이징을 방문한 미국 측 인사들과 비공개 대화에서 무역협상에 대한 낮은 기대감을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복수의 소식통은 블룸버그에 중국이 가장 민감한 사안에 있어서는 양보할 의사가 없을 뿐더러 제한적인 합의에 이른다 해도 트럼프 대통령이 워낙 충동적인 기질이 있어 막판에 뒤집힐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1단계 합의 서명 이후 중국에 경제 개혁 등 구조적인 문제를 2·3단계 무역협상에서 다루고 싶어하지만 중국은 미국이 36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철회를 선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보여 2단계 합의 도출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소식통들은 미국이 오는 12월 15일로 예정된 추가 관세 부과를 철회하길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이 대중 관세 일괄 철회하기를 기대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2단계 협상에서는 부과된 관세 일부를 철회하길 바란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1단계 무역합의는 중국의 산업보조금 등 민감한 사안이 빠진 것이어서 순조로웠다고 말한다. 에스와르 프라사드 미 코넬대학교 교수는 "1단계 합의가 이뤄져도 다른 모든 어려운 문제가 뒤로 미뤄진 만큼 2단계 합의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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