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배우 윤소호가 '헤드윅'으로 파격을 넘어선 변신에 성공했다. 전동석과 함께 이번 시즌 뉴캐스트로 합류한 그의 공연에 가장 예쁜, 섹시한, 파워풀한 헤드윅이라는 찬사가 따라붙었다.
최근 뮤지컬 '헤드윅'에 합류한 윤소호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9월 첫주 '너를 위한 글자'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헤드윅'과 '랭보'의 병행출연을 앞둔 윤소호는 사실 소문난 다작 배우다. 그럼에도 새 작품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기대를 모은다. 각각 뮤지컬계의 아이돌로 불리는 전동석과 동반 합류한 이번 '헤드윅'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동석 형이랑 뉴캐스트끼리 연습 때부터 굉장히 의지를 많이 했죠. 당연히 그 전에 해본 형들도 도와주셨고 연출부, 제작진도 힘을 보태주셨어요. 이와 별개로 동석이형이랑 많이 얘기하면서 각자 캐릭터를 만들어나갔어요. 안풀리면 웹서치해서 찾아보기도 하고, 같은 말이라도 어떡하면 더 재밌게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을 훨씬 많이 했죠. 옷이나 헤어에도 저희 의견이 반영됐어요. 남자 캐릭터의 의상이나 머리를 찾아본 적도 없는데 여자 옷을 좀 찾아오라는 거예요. 처음엔 어색했는데, 솔직히 제 눈에 제일 예쁜 걸로 골랐죠. 제가 입을 거니까.(웃음) 그게 적절치 않으면 리턴되고, 합의 끝에 전문가 분들이 체형과 얼굴형을 다 고려해서 최종 조율을 해주셨죠. 저는 굉장히 만족해요."
윤소호는 처음에 '헤드윅'을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점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그중 가장 조심스러웠던 부분은 역시 헤드윅을 지칭하는 여러 수식어. 성소수자, 트렌스젠더, 혹은 성전환에 실패한 여자도 남자도 아닌 사람. 어떤 것으로도 명확하게 한정할 수 없는 그의 정체성이 극중 헤드윅이 그렇듯, 해석하고 표현하는 배우에게도 가장 어려웠다.
"성격이 활발할 때도 있는데 좀 정적인 편이에요. 편해지는 데까지 시간이 좀 걸렸죠. 오히려 연출님은 정적인 면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적절히 섞어 너만의 헤드윅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셨어요. 어려웠던 부분을 연습하고 믹스해서 저만의 헤드윅이 나온 것 같아요. 사실 대본 속 헤드윅을 지칭할 단어는 굉장히 많아요. 딱 하나로 정하기는 어렵죠. 그래서 특정한 한 가지로 접근하지 않았어요. 그냥 우리와 같은 한 명의 사람. 간단하게 생각하면 쉬워지는 것 같아요. 사실 평범할 수 있는, 일반적이진 않지만 우리와 똑같이 살아가고 사랑하고 음악하는 사람으로 캐릭터를 잡아나갔죠."
데뷔 8년차를 넘긴 윤소호는 연극, 뮤지컬 무대에서는 꽤 유명세도 얻었다. 외적으로 보기에 평탄한 인생을 살아온 것처럼 보이는 그가 과연 온갖 차별에 휩싸인 채 살아가는 '헤드윅'의 처지에 깊게 공감할 수 있었을지 솔직한 생각이 궁금했다. 윤소호는 "당연히 그를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인물에 공감하고 표현하기까지 물리적인 시간이 다른 작품에 비해 조금 길었어요. 그래도 저를 비춰서 '나는 내가 이런 일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공감할 수 없어' 이런 생각은 안했어요. 만약 그렇다면 어떤 연기도 할 수가 없겠죠. 다양한 시각에서 많은 생각을 해봤고 나한테는 헤드윅이 아픔이 많고 슬퍼보이지만 누군가에겐 별 불행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잖아요. 고민을 거듭하다보면 그 중간 지점에 다다르게 되죠. 남자라면? 아니면 여자라면? 또 팬레터에 적어준 성소수자 친구의 생각도 조금씩 참고해서 다각도로 고민했어요."
윤소호는 헤드윅의 상황을 '누가 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처지라고 했다. 이는 헤드윅이 처한 물리적 상태 그 자체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그 내면에 깔린 복잡한 감정들을 의미하는 듯도 했다. 극을 보면서 헤드윅이 과도하게 오버하고 동료 이츠학과 밴드 멤버들을 조롱하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 이같이 느끼는 관객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처음 만났을 때 이츠학에게 결정적으로 비수를 꽂는 게 '네가 원하는 여장을 하지 않으면 미국으로 데려가겠다고. 자유엔 희생이 따르는 법'이라고 말하죠. 본인도 당했던 일이고 엄마에게 강제로, 주입식으로 들었던 말이 트라우마로 남은 거라고 봐요. 평소엔 생각 안하다가 마음 한 켠으론 본인도 모르게 똑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을 보면서 어린 한셀이 떠오르는 거죠. 일부러 못되게 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그때의 나같은 저 친구를 봤을 때 당했던 어떤 울분이 튀어나와 상처를 주죠. 만약 이츠학에게 의도적으로 해코지하려 했다면, 둘은 뭔가 다른 결말을 맞지 않았을까요?"
한참 인터뷰하다 극중 잠시간 나오는 1인 2역, 토미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윤소호는 "처음에 연출님께 '토미가 거기서 왜 노래하는 거예요?'라고 물었다"고 웃었다. 그의 말처럼 작품을 처음 보는 사람에겐 서사 안에 겹겹이 쌓인, 말 그대로 해석하기 나름인 '헤드윅'의 의미들을 단숨에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마지막에 토미가 웃으면서 노래하는 건 '미안해요. 내가 훨씬 어린 아이였잖아. 당신이 들려준 두려워하지 말고 세상을 건너라. 이런 메시지들을 그땐 몰랐어요. 세상을 겪어보니 당신의 순수한 그 얘기들을 이젠 좀 알 것 같네요'라는 것 같아요. 갑자기 토미가 노래하는 게 저도 의문이었는데, 이건 선택의 몫이라고 하시더라고요. 토미로서 헤드윅에게 불러주는 노래로 표현해도 되고, 또는 그 전에 토마토를 으깨면서 헤드윅이 가발이랑 다 벗어던진 후에 생각하길, 토미가 이런 말로 이런 노래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환상을 구현하는 것. 둘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사실 두 번째가 더 마음이 아프죠. 선택은 관객들 몫이에요. 리얼한 토미일 수도 있고 헤드윅의 환상일 수도 있죠."
대학로와 대극장을 오가며 활약 중인 윤소호는 굉장히 다작을 하는 배우다. 그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다른 것보다 '재미'가 우선이다. 이제 8년차를 맞으며 그의 연기 인생에 변곡점을 맞게 해준 작품이 뭐냐고 물으니, 바로 첫 원캐스트로 무대에 올랐던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꼽았다.
"처음으로 원캐를 100회 이상 하니까 제 한계를 시험하는 계기가 됐어요. 장기공연에서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알게됐죠. 매일 공연하니까 갑자기 어떤 장면이 평범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때를 기점으로 작품을 대하는 태도나 인식이 좀 달라진 것 같아요. 한편으론 완주하고 나니 무엇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도 생겼죠. 한번은 최재웅 형이랑 '트레이스유' 마지막 공연을 하는데 마취총 맞은 것처럼 턱이 안움직인 적이 있었어요. 마사지도 소용이 없었죠. 일단 출근해서 아프다고 하니까 형이 '걱정하지 마. 무대에 올라가면 네가 창피하지 않으려고 다 하게 돼있어'라대요. 그말에 접종이 된 건지, 최대한 아픈 티를 내고 싶지가 않아서 어떻게 했어요. 내려오니까 또 아프더라고요.(웃음) 건강상 이유로 캐스팅을 변경한 적이 한번도 없는데, 형 영향이 컸어요."
윤소호는 그간의 도전보다 더 특별한 도전을 하게 된 만큼 '윤소호의 헤드윅'을 만나며 많은 관객들이 즐거워했으면 하는 마음도 얘기했다. 아직 앳된 얼굴이지만 21세 어린 나이부터 활동한 덕에 벌써 8년차에 다다른 중견급이다.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 곧 접어드는 30대에 달라질 스스로를 기대하고 있었다.
"'헤드윅'으로 도전하게 돼 감사하고 재밌어요. '나는 나, 세상 단 하나'라는 가사를 자꾸 곱씹게 돼요. 나는 나고 지금 이 순간에 헤드윅을 하는 사람은 나 하나고, 나만의 헤드윅을 잘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죠. 그런 도전 의식을 갖고 잘 완주하고 싶어요. 극중 '미드나잇 라디오'라는 넘버 가사에서 헤드윅과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다 나와요. 헤드윅은 인생을 자기 뜻대로 했던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타인의 뜻으로 수술을 하고, 이혼당하게 되고. 어떻게 보면 위너의 인생을 살지는 않았죠. 헤드윅 입장에서 나같은 패배자도 즐겁고 행복하게 공연하고 세상 단 하나의 나로 사니까. 너희도 지지마. 이런 메시지를 받아가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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