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이쯤 되면 왕비 전문배우다. 뮤지컬배우 김소현이 '마리 앙투아네트' 재연으로 다시 한 번 무대에 오른다. 초연 캐스트로 애정이 깊은 만큼 매 신 열정이 가득하다.
최근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에 출연 중인 김소현과 만났다. 주 6회 공연을 하느라 식사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바쁜 일정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이번 작품을 준비하며 그는 "초연을 보신 분들께 미화된 기억을 해치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다시 마리가 올라온다는 말을 듣고부터 설레고 좋았어요. 초연 때 뮤지컬을 몇십년씩 해온 분들도 가장 힘들었다고 할 만큼 고생했고 힘들게 올렸던 작품이거든요. 그때도 생각외로 너무 잘되고 많은 분들이 기다려주셨고, 반가우면서도 부담도 컸죠. 다시 하니까 그래도 힘들었던 게 많이 줄어들었고 반복하지 않아도 됐어요. 초연 관객들이 장면이 많이 다듬어지고 감동적인 부분이 더 많이 생겼다고 말씀해주셔서 감사했고 기분이 너무 좋았죠."
[서울=뉴스핌] 백인혁 기자 = 배우 김소현이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뉴스핌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09.02 dlsgur9757@newspim.com |
김소현의 말처럼 '마리 앙투아네트'는 초연에 비해 많은 부분 수정을 거치면서 개연성을 채웠다는 평을 받는다. 그에 따르면 마리와 페르젠이 마지막 이별하는 장면, 마그리드와 대립신을 비롯해 다양한 부분에 새로운 음악과 감정이 추가됐다. 김소현은 유난히 반복해서 연습을 시켰던 로버트 요한슨 연출을 언급하며, "본인도 많이 우셨다. 그 연출님의 눈물이 기억나고 다시 반복할 때 무뎌지지 않을 수 있어 참 감사하다"고 웃었다.
"1막, 그리고 2막을 거치면서 마리를 연기하는 게 사실 많이 힘들어요. 가끔 1막만 보고 가신 분들이 계신데 절대 안돼요. 이전에 왕비로서 밝은 면만 보이는 것과 달리 마리는 너무 외로워요. 시작부터 끝까지 너무 고독한 사람이죠. 페르젠의 넘버 중에 '가장 화려하고 높은 곳에서 형장의 이슬이 된 너'라는 표현이 딱이에요. 극중에 유독 단독신이 많기도 하고 혁명군들의 그 기세를 뚫고 다음 장면에서 또 솔로를 하라는 거예요. 초연 땐 그때 눈물이 났어요.(웃음) 그래서 외롭고, 그만큼 진심을 다해 토해내야 비슷하게 보일 정도니까 피를 토하면서 하고 있죠."
김소현은 이번 작품에서 남편 손준호를 비롯해 박강현, 정택운(레오), 황민현 네 명의 연하남 페르젠과 연기하게 됐다. 그는 "이것만 기사로 나가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웃으면서도 4명의 페르젠 백작들에게 각자 애정을 드러냈다. 특별히 바깥사람 손준호를 향해서는 고마운 마음도 잊지 않았다.
"민현 씨랑 공연할 때는 더 소녀 같은 마리 앙투아네트예요. 굉장히 맑은 눈빛과 순수한 감정의 표현들이 저도 그러게끔 도와줘요. 꾸밈없는 매력이 정말 좋고 깨끗한 목소리로 부를 때 저도 새로운 소리를 찾게 돼요. 눈빛이 흔들림이 없는 친구고 가수로서 내공을 무시할 수 없더라고요. 강현 씨는 서정적인 목소리가 너무 좋고 듣고만 있어도 황홀해요. 소프트하면서도 강한 매력이 있죠. 레오 씨는 생각보다 굉장히 터프하고 강한 매력이 있어서 놀랐고요. 준호 씨는 귀족 전문배우예요.(웃음) 라울로 데뷔했고 '팬텀'의 필립, '삼총사' 아라미스를 했죠. 귀족의 태도가 잘 갖춰진 배우예요. 듬직하죠. 이번엔 부부 역할이 아닌데 부부케미를 기대한다고 하시고 다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특별히 남편이 10kg나 감량했는데 배우로서 역에 맞게 조절하는 걸 보면 참 배울 점이 있구나 싶죠."
[서울=뉴스핌] 백인혁 기자 = 배우 김소현이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뉴스핌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09.02 dlsgur9757@newspim.com |
김소현은 비극적 왕비 역할을 숱하게도 거쳐온 배우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명성황후' '엘리자벳' '안나 카레니나'를 연기했고 모두 극중 죽음을 맞았다. 어쩌면 왕족, 왕비 전문배우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이 전혀 아니다. 하지만 김소현은 스스로도 변신을 꿈꾸고 있다.
"예전에 한번 '레베카'의 댄버스 얘기했다가 제가 내정된 것처럼 와전이 돼 난리였어요. 한번쯤 악역을 해보고 싶긴 해요. 섹시한 건 제가 못할 것 같아요.(웃음) 전혀 안어울리는 것 같아서요. 악역을 몇 년 전에 드라마로 해보긴 했는데 저는 사실 자신있어요. 이번 '레베카'에서는 오디션을 보라고 전화가 왔는데 못봤어요. 아직 댄버스는 좀 그래요. 내공이 더 필요하지 않나 싶죠."
뮤지컬 업계에서 오래도록 톱 여배우 자리를 유지한 탓에, 항간에는 그의 이미지를 보이는대로 오해하는 이들도 있게 마련이다. 김소현은 '마리 앙투아네트' 역할을 연구하면서 봤던 "불행을 통해 자아를 찾는다"는 글귀를 떠올리며 남들은 모르지만 본인에게도 늘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고 고백했다.
"사실 불행이라는 건 사람마다 다른 거고 본인의 불행은 본인만 힘든 거죠. 직업 자체가 화려한 면만 보시고 좋아보인다고 하실 수 있어요. 하지만 10년 이상 어떤 일을 하면 정말 별의 별 일을 겪죠. 저희처럼 위험에 노출돼 있고, 매번 라이브로 공연해야 하는 경우엔 정말 감수해야 할 것들이 많아요. 올해만 해도 개인적으로는 불행한 순간이 많았죠. 어제도 수레에서 엎어지는 장면에서 머리를 찧어 이마에 상처가 났고, '명성황후' 할 때도 칼에 맞아 응급실에 갔어요. 몸으로는 스펙터클한 일을 하면서 내면의 감정도 끌어내야 하기에 밝은 이면에 힘들고 불행하고 힘든 순간이 정말 많아요. 10년 넘게 반복하면서 쌓인 것들도 있죠. 남들에겐 작은 불행이지만 이게 쌓이고 그 과정에서 배우로서 자아를 찾고 여자로서도 더 성숙해지고 하는 것들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서울=뉴스핌] 백인혁 기자 = 배우 김소현이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뉴스핌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09.02 dlsgur9757@newspim.com |
다른 작품들과 비교할 때, '마리 앙투아네트'는 두 명의 여성이 중심이 되는 뮤지컬이다. 극중에서 마리와 마그리드는 대립관계에 있지만 극 후반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동정하며, 여자들 간의 우정도 보여준다. 김소현은 남자들 뿐만 아니라 여자들에게도 우정과 공감대가 있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만한 감정을 연기할 수 있어 기뻐했다.
"남자들만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건 아니죠. 마리랑 마그리드는 가장 높은 여자와 최하층민 여자의 만남이고 마그리드조차 마리를 보면서 나중엔 인간은 똑같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 불행에 빠진 순간 일으켜줄 때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마그리드는 진심을 다해 일으켜주고 마리는 고마워하죠. 어떤 장면보다도 감동을 전해주는 신이에요. 수많은 대사와 노래 없이도 강렬한 감정을 실감나게 전달하죠. 연습할 때도 엎어지자마자 눈물이 났어요. 은아 씨도 엄청 울고요. 그 장면이 그렇게나 특별하더라고요.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그 장면이 관객과도 만나 이어지게 되는 정말 소중한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화려해보이는 여배우의 삶을 살지만 김소현에겐 남편 손준호, 아들 주안 군과 함께 하는 평범한 삶도 있다. 그는 "5시반에 일어나 주안이 학교갈 도시락을 싸고 밤에는 공연장이 너무 멀어 12시가 넘어서야 잔다"면서도 끊임없는 긍정의 에너지로 매일을 살고 있다. "에너지는 쓰면 쓸수록 나온다"는 말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바쁜 만큼 더 집중해서 지내게 돼요. 저는 자는 시간을 일부러 세지 않아요. 배우에겐 잠이 보약인데 생각을 안하려고 하죠. 그래도 에너지가 나오는 거 보면 이 일을 정말 사랑하는구나 싶고 평범한 삶을 살다가도 힘이 나는 거 보면 천직인 것 같아요. 공연을 시작할 때 '이렇게 많이 남았어?' 하다가도 남은 60회 때문에 걱정하면서 오늘을 보내고 싶지는 않아요. 또 에너지가 나오겠지? 하고 무대에 오르죠. 에너지는 쓰면 쓸수록 나온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웃음)"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