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고노, 남 대사 초치 때마다 한일 언론 대대적 보도
초치시간은 결례 아니지만 상대국 ‘막말’ 비판 문제 있어
[서울=뉴스핌] 허고운 기자 = 일본 정부는 지난 22일 한국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를 이례적으로 밤늦게 초치해 항의했다.
일본 정부가 큰 충격을 받았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일본이 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거친 언사를 쏟아내는 외교 결례를 반복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 현지 언론에 따르면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지난 22일 밤 9시 30분쯤 남관표 대사를 외무성으로 불러 항의 입장을 전달했다.
고노 다로(왼쪽) 일본 외무상과 남관표 주일 대사. [사진=일본 외무성] |
고노 외무상은 “한국 정부가 협정을 종료하는 결정을 내린 것은 현재 지역의 안보 환경에 대한 완전한 오판”이라고 말하며 한국 측이 ‘극히 부정적이고 비합리적인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막말에 가까운 표현도 사용했다.
남 대사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잘 전달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본관 정문이 아닌 다른 문으로 건물에 들어와 취재진과는 만나지 않았다.
‘불러 들인다’라는 뜻의 단어인 초치는 외교 부문에서는 국가 간 관계가 나빠질 수 있는 현안이 발생했을 때 자국에 주재하는 상대국 인사를 불러 항의하는 행위를 말한다. 구체적 대화 내용은 공개하지 않더라도 초치 사실 만으로도 엄중한 외교적 항의의 뜻을 갖는다.
일본 정부가 늦은 시간에 남 대사를 초치한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 발표를 오후 6시 20분쯤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발표 직전까지 한국과 일본 언론에서는 지소미아 종료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던 만큼 다급해진 일본으로서는 자국의 입장을 당일 신속히 전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韓 6시 20분 지소미아 종료 발표, 日 다급했던 3시간
통상 초치를 할 때 장관은 대사를, 국장급 인사는 대사관의 공사급 인사를 부르는 등 당사자 간의 ‘급’을 맞춘다. 이번 지소미아 종료의 경우 한국 측도 청와대에서 발표하는 등 한일 모두에겐 핵심 사안이라 고노 외무상이 직접 초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노 외무상은 22일까지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일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한 뒤 귀국했다. 이후 한국 정부의 발표를 듣고 자국 입장을 정리하기 위한 시간을 가진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오후 10시가 넘어서 임시기자회견을 열어 일본 정부가 상황을 엄중하게 보고 있음을 알렸다.
공관장을 역임한 한 전직 외교관은 “당일 밤에 초치하지 않고 한숨 돌려 다음날 오전에 부르는 방법이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외교에 낮과 밤은 없다”며 “사안이 시급하다면 우리도 시간에 관계없이 상대국을 부르고, 일본도 이런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가에서는 초치 시간 자체보다는 일본 측의 메시지가 결례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이 나온다. 익명의 전직 외교관은 “고노 외무상의 워딩이 언론에 나온 것과 같다면 외교적으로 구사하기엔 굉장히 자극적인 언어들, 정제되지 않은 거친 언사가 여과 없이 나온다”고 말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날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묻는 기자 질문에 “한국이 한일청국권협정을 위반하는 등 국가와 국가 간의 신뢰관계를 해치는 대응이 유감스럽게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차분한 말투로 한국 정부를 과도하게 비판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으나 한국이 먼저 약속을 어겼다는 주장을 펼쳤고, 한국을 향해 ‘못 믿을 나라’라는 표현도 반복하며 날을 세웠다.
일본 정부가 한국을 상대하며 외교 결례를 범했다는 지적은 불과 한 달 전에도 불거진 바 있다. 지난 19일 고노 외무상이 우리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을 논의할 중재위원회 구성에 한국 정부가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남 대사를 초치했을 때다.
고노 외무상은 한국 정부의 태도가 “극히 무례하다”고 말하는 등 격한 반응을 보였고, 남 대사가 입장을 표하려 하자 말을 끊고 면박을 주는 결례를 범했다.
주선양 총영사를 지낸 신봉섭 한림대 교수는 당시 사건에 대해 “초치의 경우 어느 격이냐, 준비된 문건이 있느냐에 따라 상황이 다를 순 있지만 자국 입장만 전달하는 일방통행식 소통은 엄청난 결례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heog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