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선미 기자 = 홍콩의 ‘범죄인 인도 법안’을 둘러싼 정부와 시민 간 대립이 미국과 중국 간 대립으로 확대돼 미국이 홍콩의 특별 지위를 박탈하면 글로벌 금융 시스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16일(현지시간) 심층 보도에서 홍콩의 이번 사태는 미·중 슈퍼 열강 간 패권 싸움과 불가분하게 연관돼 있다고 지적하며 이같은 관측을 내놓았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의 하야와 '범죄인 인도 법안' 철폐를 요구하는 홍콩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가 16일(현지시간) 진행됐다. 2019.06.16. [사진=로이터 뉴스핌] |
중국 정부가 홍콩의 시민권과 자주권을 계속 침해하면서 결국 선을 넘는다면,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개별회원국으로서 홍콩의 지위 인정을 철회해, 홍콩은 현재 중국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민감한 기술 교역이 단절되고 미국의 관세 포화를 맞는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되면 현재 홍콩에 진출한 1400여개 미국 기업들이 싱가포르로 대이동하고, 지금까지 알려진 홍콩 모델은 사라질 것이라고 텔레그래프는 전망했다.
중국이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주도면밀하게 침해하는 동안 미국은 미진한 반응만을 보여 왔으나, 이번 시위로 워싱턴 내 분위기가 급변했다.
미국 상하원은 지난주 초당적으로 ‘홍콩 인권 및 민주주의 법안’을 발의했다. 이는 무역·금융·기술을 망라하는 총체적인 제재 법안으로, 만약 통과된다면 홍콩은 특별 지위가 박탈되고 중국에 속한 도시 중 하나로 전락할 수 있다.
국제적 신용평가사들도 저마다 경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피치는 홍콩에 부여한 ‘AA+’ 신용등급의 근거는 ‘중국 본토와 구별되는 홍콩만의 거버넌스 기준, 법치주의 정책 구조, 비즈니스 및 규제 환경’이라고 강조했다.
홍콩에서 대규모 시위를 촉발한 ‘범죄인 인도 법안’은 단순히 범죄인의 신병을 해당 국가로 인도하는 것뿐 아니라 해당 국가의 요청에 따라 범죄인의 자산을 동결 또는 압수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는 결국 홍콩의 거대한 부가 중국 공산당의 통제 하에 놓일 수 있다는 위협인 셈이다.
이러한 우려 때문에 홍콩 부호들 사이에서는 최근 막대한 재산을 싱가포르로 옮겨 놓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크레딧스위스에 따르면 홍콩에서 자산 규모가 1억달러(약 1187억원) 이상인 억만장자는 850명이 넘는다.
지난달 폴 찬 모포 홍콩 재정사 사장(재정부 장관 격)은 자본유출에 대해 경고했고, 최근 수개월 간 홍콩 중앙은행 격인 금융관리국(HKMA)은 달러 페그제를 수호하기 위해 재차 시장에 개입해야 했다. 이에 따라 지난주 홍콩 금융 시장에서 단기 자금조달 금리가 2008년 이후 최고치로 급등했다.
홍콩은 중국의 금융 출입문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에, 홍콩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면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 막대한 파장이 일 것이라고 텔레그래프는 전망했다.
텔레그래프는 홍콩처럼 이미 확고하게 자리 잡은 안정적 금융 중심지를 와해시키기는 쉽지 않지만, 정치적 충격이 가해지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하며 벨기에 앤트워프의 사례를 들었다.
앤트워프는 1560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가장 번영한 상업 중심지이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자유로운 도시였다. 하지만 통치자인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가 자유를 억압하고 반개혁적 조치에 나서자 급격히 몰락했다.
16일(현지시간) 도심 도로를 검은 물결로 가득 메우며 '범죄인 인도 법안' 철폐를 요구하고 있는 홍콩의 시위대. [사진=로이터 뉴스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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