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화웨이를 필두로 한 미국과 중국의 IT 냉전에 전세계가 둘로 갈라질 것이라는 주장이 번지고 있다.
양국 관세 전면전이 IT 패권 다툼으로 확전됐고, 상황이 종료되지 않을 경우 아시아와 유럽 주요국들이 미국과 중국 가운데 어느 한 쪽을 택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는 얘기다.
화웨이와 미국 5G [사진=로이터 뉴스핌] |
특히 유럽에서 각축전이 후끈 달아오를 전망이다. 이번주 후반부터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왕치산 중국 국가부주석의 때를 같이 한 유럽 순방도 이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29일(현지시각) 블룸버그는 이른바 ‘디지털 철의 장막’에 전세계가 갈라지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미국이 전세계 IT 기술을 선도하고 있고,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배적인 입지를 유지할 전망이다. 하지만 중국이 신흥국을 중심으로 직간접적인 보조금까지 제공하며 통신 네트워크를 포함한 IT 인프라 건설에 공격적으로 뛰어들었고,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문제는 IT 영역에서 그치지 않는다. 초고속 철도와 첨단 항만 및 공항, 전기차 시장까지 패권 다툼의 전장에 해당한다.
특정 국가가 중국의 네트워크나 인프라를 채택할 경우 국가 안보 문제를 빌미로 미국과 거래에서 퇴출될 여지가 높고, 이 때문에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크고 작은 비즈니스 결정에 정치적인 촉각을 세워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주장했다.
필리핀과 베트남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는 물론이고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까지 미국 및 중국과 이해관계가 얽힌 정부가 난감한 입장에서 선택을 강요 받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 같은 전망은 석학들 사이에서도 제기됐다.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인 국제안보분석연구소(IAGS)의 갈 루프트 이사는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CMP)와 인터뷰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유럽이 매우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며 “두 개 국가 중 어느 한 쪽과 손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럽은 미국과 중국 모두에게 최대 무역 파트너다. 트럼프 행정부가 독일을 포함한 유럽 동맹국에 화웨이 제품 사용을 금지할 것을 압박하는 것이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유럽에서 일대일로 참여를 종용하는 것은 유럽의 무게감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최근 양국 고위 정책자들의 유럽 순방에 세간의 이목을 끄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왕치산 부주석은 이번주 독일과 네덜란드를 방문할 예정이고, 이에 앞서 중국 공산당 내에서 3인자로 통하는 리잔수 전국인민대표대푀 상무위원장은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순방을 마쳤다.
같은 시기에 폼페이오 장관 역시 독일을 필두로 네덜란드와 스위스, 영국 등 4개 국가를 방문할 예정이고, 다음달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영국 및 프랑스 방문이 계획돼 있다.
유럽의 싱크탱크와 석학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화웨이 보이콧이 국제 무역에 중차대한 터닝포인트라는 데 입을 모으는 한편 미국의 국가 안보 관련 경고에 동의하지만 대응책에는 찬성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이 중국을 꺾어놓지 못할 것이라는 회의론도 등장했다. 브뤼셀 소재 EU-중국연구소의 던칸 프리만 연구원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및 IT 패권 다툼이 보다 광범위한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하지만 이미 경제와 기술, 군사 측면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한풀 꺾였고,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책이 중국의 부상을 막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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