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선미 기자 = 지난 50년 간 가까워지던 미국과 중국의 경제냉전이 돌연 가시화되면서, 전 세계가 무역, 기술, 표준, 인적교류의 측면에서 두 개로 갈라져 기술 발전과 협력 관계 성장이 둔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악수하기 위해 다가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사진=로이터 뉴스핌] |
미국이 결국 2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율을 25%로 올리고 중국이 보복을 예고한 가운데, 양국 고위급 무역협상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현지시간) 심층기사에서 이번 주 협상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수십 년에 걸쳐 통합되던 미국과 중국이 상호 의심과 전략 지정학적 경쟁구도로 인해 이제 각자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이 이미 미국이 무시하기에는 지나치게 커지고 국제사회와 긴밀히 통합돼 있으므로, 새로운 경제냉전은 이전의 냉전처럼 험악하지는 않겠지만 미국과 중국의 투자자, 기업, 학자들은 점차 별도의 전략을 따르는 별도의 세계에서 활동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징후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비용·품질·접근성 등에 의해 좌우되던 무역 흐름이 정치적 상황에 따라 휘둘리고 있으며, 투자 풍토도 전 세계가 두 개 구역으로 갈라지고 있고, 미국과 중국의 탈동조화가 뚜렷해지고 있으며, 양국 산학 협력 등이 단절되고 있다.
아이폰, 카메라, 신발을 만드는 미국 기업들이 서둘러 생산시설을 중국에서 빼내고 있고, 미국 관료들은 중국 투자자들의 미국 기업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고 있으며, 중국 과학자들의 미국 비자도 막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를 철회하더라도 철회한 것만큼이나 손쉽게 다시 부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은 섣불리 중국으로 귀환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대미 투자는 2010년부터 급증하기 시작했지만, 미국의 이른바 ‘스파이’ 및 ‘기술 절취’ 의심으로 제한이 강화되자 지난해 중국의 대미 투자는 7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급감했다. 반대로 중국 기업과의 합작 벤처를 통한 기술 공유에 대한 규제도 강화돼 미국의 대중 투자도 급감하고 있다.
미국이나 중국이나 자본이 부족하지는 않기 때문에 이러한 탈동조화는 처음에는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탈동조화가 지속되면 양국 모두 가치 있는 시너지 효과를 상실하게 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과 중국은 전 세계에서 최대 규모의 인공지능(AI) 인력을 갖추고 있는데, 양국 관계가 단절되면 전 세계 AI 발전이 한층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전 세계 이분화로 기술 표준도 갈라질 위험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기술 제품은 통합된 공급망과 자유롭게 유출입되는 자본과 지식, 표준을 정하기 위한 국제적 협력이 필수적인데, 경제냉전이 본격화되면 전 세계는 두 개의 표준을 따라야 한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미국 정부가 지식재산권 절도를 이유로 중국 반도체 업체 푸졘진화에 미국 기술 판매를 금지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 일을 계기로 중국은 외국 기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특히 자체 반도체 산업 육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차세대 통신기술 5G의 등장을 앞두고 중국 화웨이와 미국 시스코가 대척점에 서서 세계가 양분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인적 교류도 점차 단절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최근 스파이 활동이 의심된다며 중국 학자들의 입국을 막고 학생 비자 규정도 강화했다. 미국은 중국 두뇌 유입을 반기고 중국은 미국의 전문 기술을 배울 수 있었던 상호 윈-윈 관계가 적대 관계로 돌변한 것이다.
미국 내 강경파는 미국의 경제 및 군사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경제 교류를 한층 더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중국 국수주의자들은 역시 경제 및 군사 굴기를 위해 자력갱생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양국의 온건파는 국가 안보 리스크를 별도로 다뤄야 상업적 관계가 경색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중국 베이징 소재 공립대학인 대외경제무역대의 존 공 교수는 “앞으로 미국 중심의 경제 질서와 중국 중심의 경제 질서로 세계가 양분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며 “이러한 경제냉전만큼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국기 위에 비치는 화웨이 로고 그림자 [사진=로이터 뉴스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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