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만으로 창업? 벤처 생태계 경험이 중요"
"창업 동아리 넘쳐나지만...기술 기반 벤처 드물어"
"중국은 지금 서부개척시대, 격차가 가속화된다"
[서울=뉴스핌] 김선엽 기자 = "혁신적이고 도전정신을 많이 가지고 있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말씀도 많이 해달라."
지난달 21일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을 방한한 잭 도시 트위터 최고경영자(CEO)를 만난 자리에서 건넨 말이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도시 CEO와 만나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는 벤처기업 육성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같은 시각 국회에서 열린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 나선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꺼냈다. 김 의원은 "청년들에게 용기를 심어주는 것은 좋지만 한국의 사회적 안전망이 튼튼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나치게 권하는 거 아닌가 반성한다"고 말했다.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이형석 사진기자> |
게임 업체 웹젠 의장을 역임한 김 의원은 매년 국회의원 중 재산순위 1위(지난해 기준 2763억원)를 차지해 주목을 받아왔다. 지난해 말에는 벤처인이 뽑은 최고의 국회의원(벤처기업협회 주관)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지난 2016년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표에 의해 영입돼 민주당의 험지인 성남시 분당갑 지역에서 당선돼 화제를 모았다.
◆ “아이디어만으로 창업하기보다 벤처에서 경험 쌓아야”
'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에서 어느새 전설이 된 그가 청년들의 창업 열풍을 말린 이유는 무엇일까.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벤처 1세대 시절, 김 의원 주변에서 창업을 했다가 실패한 이들을 수없이 목도했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만 해도 창업 시스템이 잘 돼 있다. 20대 때 창업해서 실패해도 또 창업하고 도전할 수 있는 구조지만 우리나라는 회복하는데 꽤 오래 걸린다"며 "사회 안전망이 없는 속에서 사회경험이 없는 20대 친구들이 창업을 하면 실패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의원은 또 "경험 없이 바로 창업하면 시행착오를 너무 많이 겪고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로 빠지기도 한다"며 "창업을 하려고 결심할 정도면 사회에서 중요한 인적 자원인데, 사장되지 않고 성장할 수 있어야 하는데 준비되지 않은 창업을 하고 나서 완전히 창업 생태계에서 퇴출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아이디어가 있다고 바로 창업하지 말고 벤처회사에서 벤처 생태계를 경험해보고 창업하는 것이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정부가 창업을 손쉽게 할 수 있는 풍토를 조장하는 측면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요즘 아이디어만 있으면 5000만원, 1억원은 쉽게 구할 수 있다"며 "쉽게 창업을 할 수 있다 보니 일단 해보고 안되면 접는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동네에서 가게 하나를 차려도 1~2년 준비하고 하는 것과 남의 말을 듣고 문을 여는 것과는 완전 다르다"며 "창업도 마찬가지"라고 힘줘 말했다.
◆ “창업동아리 넘치는 대학...기술 기반의 벤처가 나오기 쉽지 않다”
창업동아리가 넘쳐나는 현재의 대학 캠퍼스에 대해서도 그는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다. 김 의원은 "빌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가 대학을 졸업하고 창업한 게 아니다"며 "사회적 분위기와 시스템이 있으면 그런 사람들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대학들은 창업동아리 숫자나 창업 관련 교육과정이 있는가로 학교 평가를 받고 그런 게 있어야 정부가 지원금을 주니 성과와 상관 없이 창업과정을 만드는데, 이 것은 맞지 않다"며 "그런 기능은 학교 밖에 있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이형석 사진기자> |
청년들이 기업 등 학교 밖에 창업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한다는 의미다. 캠퍼스에서 창업을 익힌 청년들이 동네에서 가게를 열고 사회경험을 시작하는 세태에 대해서도 김 의원은 반박했다.
"(정부로부터) 투자를 받아야 하니 단기 수익이 날 수 있는 회사만 창업한다"며 "기술 기반의 벤처가 나오기 쉽지 않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어 "그러다보니 단기 수익이 나올 수 있는 동네 개업이 대부분"이라며 "빵집이든 치킨집이든 단기간에 매출이 나오는 사업 위주로 창업하다보니 규모도 작고, 동네 빵집 하나 더 만든다고 해서 일자리가 늘지도 않고 그 안에서 갈라먹기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 "삼성은 왜 한국이 아닌 미국에 벤처캐피탈을 만들었나"
청년 창업을 권하지 말자는 것이 김 의원의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정부의 창업 지원을 중단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초기 창업단계에 집중된 지원책을 단계별로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 차원에서 현재 대기업 지주회사의 벤처캐피탈 소유를 금지하는 것도 풀어 줄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현금이 넉넉한 대기업이 창업 생태계에 활발하게 투자를 할 수 있어야 창업가도 엑시트(투자자나 창업자가 회사에 투입한 자금을 회수하는 것)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창업 단계, 몸집을 키우는 스케일업 단계, 인수합병(M&A) 단계, 엑시트 단계, 재투자 단계가 있는데 창업 단계는 우리나라가 비교적 잘 돼 있어 돈을 구하기는 비교적 쉽다"면서도 "우리가 벤치마킹 하는 이스라엘이나 미국을 보면 그런 돈은 대학의 기술지주회사에서 나오거나 일반 기업들이 장기적인 시각에서 전략적 투자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비교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관 의원 <사진=김학선 사진기자> |
김 의원은 또 "우리나라는 기업이 벤처 투자를 하기 어렵게 돼 있다"며 "큰 기업들은 대부분 지주회사 구조인데, 산업자본은 금융사를 소유하지 못하게 되어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삼성도 우리나라에 안 만들고 미국에 벤처캐피탈을 만들어 투자한다"고 덧붙였다.
김 의원은 마지막으로 벤처 생태계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과 비교하며 우리도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은 서부개척시대다. 실리콘 밸리에서 경험을 쌓고 자국 내 시장이 열리니 중국으로 돌아간 친구들이 많다"며 "10년 전 중국에 비즈니스를 위해 가면 영어가 되는 친구들이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거의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고 말했다. 실리콘 밸리를 경험한 인적 자원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중국만의 시장이 있고 자본도 많고 그러니 엄청나게 성장한다"며 "속도에서 뒤쳐지면 격차가 가속화된다"고 경고했다.
sunu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