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부터 담배판매점간 지정거리 50m→100m
서울시 "편의점 과당경쟁 막고 소상공인·자영업자 보호"
넘어야할 과제 산더미, 신규창업방해·담합 비판 직면
경제전문가 "최저임금 인상 피해 보전 위해 시장왜곡"
[서울=뉴스핌] 박진범 기자 = 내년 3월부터 서울의 담배 판매점간 영업거리가 현 50m에서 100m로 늘어난다. 편의점 과당경쟁을 막기 위한 조치인데, 신규창업을 막고 시장을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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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점에서 직원이 물품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뉴스핌DB] |
◆'한집 건너 한집' 전국 편의점 4만개, 서울 9000개
서울시는 지난 18일 담배소매인 지정거리 100m 이상을 확정하고 자치구에 규정 개정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자치구별 입법예고 등 개정절차를 거친 뒤 내년 3월말쯤 본격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기존 담배소매인에 한해서는 5년간 유예기간을 부여했다. 신규로 담배소매인 지정을 받고자하는 사람에게 이번 정책이 적용된다. 거리 제한 강화로 기존 골목 슈퍼마켓이나 편의점 점포 양도가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현행 담배사업법은 담배소매인 간 거리를 도시의 경우 50m 이상, 농촌의 경우 100m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구체적인 거리는 지자체가 지역 여건에 맞춰 결정한다. 현재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100m 이상을 규정한 곳은 서초구가 유일하다. 나머지 24개 구는 50m 이상이다.
담배는 편의점 매출의 40%를 차지하는 핵심 품목이다. 이 때문에 세간에서는 이번 정책이 사실상 ‘편의점 출점 제한’ 조치라고 보고 있다. 앞으로 편의점을 열려는 곳 바로 인근에 다른 편의점이 있는 경우 출점이 제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이를 통해 편의점 과당출점경쟁을 막겠다는 심산이다. 그간 편의점 과밀현상으로 인한 영업환경 악화는 꾸준히 지적된 문제다. 전국 편의점 숫자는 이미 4만개에 달한다. 서울시내 편의점은 2016년 10월 8010개에서 2018년 7월 9073개로 늘었다. 증가율은 13.2%로 두 자리 수가 넘는다.
실제 거리를 둘러봐도 ‘한 집 건너 한 집’ 꼴로 점포가 들어선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서울시내 편의점 경영주인 서모씨는 “아르바이트생도 안 쓰고 남편과 아들이 번갈아 가게를 보는데도, 임대료 내고 본사에 내고 마진이 남는 게 별로 없다”고 성토했다. 서씨의 점포를 나와 왕복 2차선 도로 하나만 건너면 곧바로 다른 편의점이 나타난다.
이런 이유로 최근 편의점 업계는 허리가 휘고 있다. '제 살 깎아먹기'식의 무모한 경쟁이 사업성 악화를 불렀다는 분석이 나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까지 크게 올리면서 가맹점주의 수익성도 나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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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m도 되지 않는 거리를 두고 편의점 두 곳이 들어서있다. 2018.12.20 [사진=박진범 기자] |
◆"피 철철 나는 골목상권 살리겠다"...신규창업 기회는?
서울시는 이번 조치가 편의점 과당경쟁완화에 주효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시가 실시한 ‘편의점 과밀분석 연구용역’에 따르면 점포간 거리가 50m일 때 상가 및 주거지역에 따라 20~30%의 매출 잠식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점포간 거리가 멀어질수록 잠식효과는 감소했다.
이미 100m 이상 규정이 있는 서초구가 좋은 예다. 서울 편의점 숫자가 13.2% 증가할 동안 서초구는 477개로 변화가 없었다. 시는 이를 근거로 과밀현상을 해소하고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조인동 경제진흥본부장도 “편의점 난립으로 인한 기존 상권의 붕괴를 막고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꼭 필요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업계는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다. 이성종 한국세븐일레븐가맹점주협의회 공동대표는 “무분별한 출점, 최저임금 상승 등으로 편의점주들의 고통은 극에 달하고 있다”며 “이러한 출점경쟁을 막기 위해 담배소매권 지정거래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몇 가지 넘어야할 산이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우선 신규 창업의 길을 막는다는 우려가 잇따른다. 퇴직 후 밥벌이 수단으로 편의점을 열려는 50~60대의 창업 기회를 박탈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편의점주인 이모(62)씨는 “육군 중령으로 전역한 뒤 친구와 동업해 이 바닥에 뛰어들었다”며 “생계를 위해 열심히 벌고 있는데 이마저도 막혔다면 앞이 캄캄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존 점주에게 유리하도록 진입장벽을 세워줬다는 비판도 넘어야한다. 특히나 ‘목 좋은 곳’에 있는 대형 점포의 예처럼 독점현상이 심한 상권의 '밥그릇'이 더욱 공고해질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신규창업 기회를 아예 막는 것이 아니다"며 "기존 사업자들이 과당경쟁으로 인해 죽겠다는 심정인데 피가 철철 나는 상권을 살리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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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담배판매영업점 서비스권역 50m 네트워크 [사진=서울시] |
◆"담합 소지 많고 시장왜곡 우려"
정부 및 지자체의 과도한 개입이 오히려 부작용을 부를 가능성도 부담이다. ‘출점 거리제한’은 18년 전에도 철퇴를 맞은 바 있다. 지난 1994년 80m 이내 출점을 금지하는 ‘근접출점자율규약’이 나왔지만 2000년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정경쟁을 해친다며 폐지시켰다. 당시 공정위는 해당 규약을 카르텔(담합)이라고 봤다.
2012년, 이번에는 공정위가 250m 이내 출점을 제한하는 기준을 만들었다. 하지만 기업 활동을 과도하게 제약한다는 비판에 막혀 2014년 폐지됐다.
이를 두고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순히 개입의 문제가 아니라 경쟁을 촉진해야하는 공정위가 담합 소지가 매우 많은 문제를 우회하기 위해 내린 조치”라며 “이는 공정위 본연의 업무와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 편의점 업계가 최저임금 등 여러 문제가 생기니 그걸 보전해주기 위해 다른 형태로 시장 왜곡을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업계 불황의 원인을 과밀현상 하나로만 좁히는 것은 위험하다는 경고로 풀이된다.
한편으로는 급한 불보다 큰 불을 꺼야한다는 지적도 적잖다. 수렁에 빠진 업계의 숨통을 트기 위해서는 이번 조치가 미흡하다는 우려다. 전국편의점가맹점주협의회 측은 “담배판매권 지정거래뿐 아니라 최저수익 보장제 도입, 인테리어 잔존가 귀책비율 감액, 심야시간 영업강제 탈법행위 금지 방안 보완 등 핵심적인 문제를 해결할 실효성 있는 방안을 보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beo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