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전 예고없이 사임의사 밝혀
[서울=뉴스핌] 김지나 기자 = 28일 오전 서울 마곡동 코오롱원앤온리 타워. 매주 수요일 열리는 코오롱 '성공 퍼즐 세션' 행사가 마무리될 때 쯤 이웅열(63) 코오롱그룹 회장이 예고 없이 연단에 올랐다.
28일 오전 서울 마곡동 코오롱원앤온리타워에서 퇴임의사를 밝히는 코오롱그룹 이웅열 회장. [사진=코오롱] |
검정색 터틀넥과 청바지 차림의 캐주얼한 복장으로 등장한 이웅열 회장은 평소 정장을 갖춰 입을 때와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강연장에 모인 200여명의 직원 중 이 회장의 입에서 어떤 얘기가 나올 지 예상할 수 있는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오늘 내 옷차림이 색다르죠?"로 말문을 연 이웅열 회장은 "지금부터 제 말씀을 듣게 되시면 제가 왜 이 옷을 입고 왔는지 이해가되실겁니다."라고 말했다.
이웅열 회장은 준비해 온 퇴임 내용이 담긴 서신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28일 오전 서울 마곡동 코오롱원앤온리타워에서 자신의 퇴임을 밝힌 코오롱그룹 이웅열 회장이 임직원들과 악수를 나누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사진=코오롱] |
"코오롱의 대표이사와 이사직을 그만두고 코오롱의 경영에 관여하지 않겠습니다."퇴임에 대한 단호한 의지가 담긴 서신은 재계 인사들이 의례적으로 직원들에게 전달하는 딱딱하고 고정된 내용의 서신이 아니었다. 서신 안에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인간적인 설렘과 두려움이 묻어있었다.
이웅열 회장은 "청년 이웅열로 돌아가 새로운 창업의 길을 가겠다"면서 "그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을 밖에서 펼쳐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또 "새 일터에서 성공의 단 맛을 맛볼 준비가 돼 있다"면서 "까짓것, 행여 마음대로 안 되면 어떻습니까. 이젠 망할 권리까지 생겼는데요."라고 말했다.
28일 오전 서울 마곡동 코오롱원앤온리타워에서 자신의 퇴임을 밝히고 있는 코오롱그룹 이웅열 회장. [사진=코오롱] |
이웅열 회장은 1996년 1월 재계 회장으로선 젊은 나이인 마흔 살에 회장 자리에 올랐다. 그는 "저보고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한다"면서 "누이들까지도 우리 집안에서 금수저는 저밖에 없다고 말할 정도니 말 그대로입니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그 덕분에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하게 살아온 것도 부인하지 않는다"면서 "금수저를 꽉 물고 있느라 입을 앙다물었고, 이빨이 다 금이 간 듯 하다"고 자조적인 말도 했다. 이에 "여태껏 턱이 빠지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라며 "그 특권도, 책임감도 내려놓습니다."고 덧붙였다.
10분여간 서신을 낭독한 이 회장은 중간중간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제2의 인생' 살겠다고 선포하며 몇몇 임직원과 악수를 나누고 퇴장했다. 23년간 코오롱 회장으로 살아왔던 이 회장은 그렇게 퇴임식 없이 '퇴임 선포'만 남긴 채 청바지를 입고 회사를 유유히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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