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산 “대등한 관계” vs 르노 “지배적 지위 유지”
‘40% 출자’ 규정에 따른 지분 조정 여부가 초점
[서울=뉴스핌] 오영상 전문기자 = 닛산·르노·미쓰비시 3사 연합의 대표들이 29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회의를 갖는다고 28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카를로스 곤 회장이 소득 허위 신고 등의 혐의로 일본 검찰에 체포된 후 처음으로 갖는 대표 회의이다.
이번 회의는 신차 개발이나 부품 조달 등 3사 연합의 중요 사항을 결정하는 총괄회사 ‘르노·닛산BV’(암스테르담 소재)가 무대가 된다.
닛산의 사이카와 히로토(西川広人) 사장과 미쓰비시의 마스코 오사무(益子修) 회장은 현지에 가지 않고 화상을 통해 참석한다. 르노에서는 잠정 CEO를 맡고 있는 티에리 볼로레 COO가 참석한다.
이번 회의에서는 3사 연합의 틀을 유지한다는 방침을 확인하는 정도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닛산자동차와 르노자동차 로고 [사진=NHK 캡처] |
◆ 닛산 vs 르노, 본격적인 줄다리기 시작
하지만 이번 회의가 갖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이번을 기점으로 르노와 ‘대등한 관계’를 모색하는 닛산과, 닛산에 대한 지배적 지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르노와의 본격적인 줄다리기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사이카와 닛산 사장은 지난 26일 곤 전 회장의 체포 경위 등을 설명하는 사내 TV 방송에서 “닛산과 르노의 제휴 관계는 대등하지 않다”고 불만을 나타내며, 양사 관계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했다.
지난 19일 곤 전 회장의 체포 직후 기자회견에서도 “개인에게 의존했던 연합의 체제를 바로잡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곤 회장 체포는) 위기가 아니라 기회”라고 강조했다.
사이카와 사장의 발언은 닛산과 르노의 지분 구조 조정을 통해 불평등한 제휴 관계를 바로 잡겠다는 의지로 풀이되며, 이번 회의를 시작으로 르노와의 관계 재정립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닛산은 첨단 기술을 비롯해 판매 대수, 수익력 등에서 모두 르노를 압도한다. 닛산이 2008~2018년 출원한 특허 건수만도 약 6만8000건에 달하며 르노의 두 배를 넘어선다.
하지만 르노는 자본 측면에서 닛산보다 우위에 서 있다. 르노는 닛산의 지분 43.4%를 보유하며 의결권도 갖고 있는 반면, 닛산이 15%를 갖고 있는 르노 주식에는 의결권이 없다. 이러한 불평등한 지분 보유로 인해 불균형적인 지배 구조가 이어져 왔다는 것이 닛산의 불만이다.
사이카와 히로토 닛산 사장 [사진=로이터 뉴스핌] |
◆ ‘40% 출자’ 규정 따른 지분 조정이 핵심
닛산과 르노의 지분 관계에 있어서는 프랑스 회사법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프랑스 회사법에는 40% 이상 출자를 받은 기업은 출자를 한 기업의 주식을 보유하더라도 의결권을 가질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닛산이 르노 주식 15%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의결권을 갖지 못하는 이유이다.
닛산이 불평등한 지분 보유로 인한 불균형적인 지배 구조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르노의 출자 비율을 40% 아래로 떨어뜨려야 한다. 르노의 지분이 40% 아래로 내려가면 닛산도 르노에 대한 의결권을 가질 수 있다.
반대로 닛산이 르노 지분을 25%까지 늘리면, 일본의 회사법에 근거해 르노가 가진 닛산에 대한 의결권이 소멸된다.
양사는 ‘개정 얼라이언스 기본합의서(RAMA)’라는 협정을 맺고 있다. 협정에 따르면 르노는 닛산과의 합의 없이 닛산 주식을 매입할 수 없지만, 닛산은 프랑스 정부 등으로부터 경영 간섭을 받았다고 판단한 경우 르노와의 합의 없이 르노 주식을 매입할 수 있다.
닛산은 르노와의 대등한 관계를 정립하기 위한 협의 과정에서 이 협정을 카드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
닛산 회장 인사 등을 비롯해 닛산과 르노의 주도권 쟁탈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다. 닛산·르노 연합 간의 줄다리기가 진흙탕 싸움이 될지, 조기에 타협점을 찾아낼 수 있을지 지켜볼 대목이다.
goldendo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