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편 연출작 '폴란드로 간 아이들' 선보여
극영화 '그루터기' 제작과정 담은 다큐멘터리…10월31일 개봉
[서울=뉴스핌] 장주연 기자 = 고인이 된 연극배우 추송웅의 일지에는 “좋은 예술 작품 하나가 분노를 멈추게 하고 성찰하게 만든다”라는 글귀가 있다. 어린 시절 무대에 오른 아버지를 동경해 배우가 된 소녀는 이 말을 마음에 품었다.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의 시작은 아마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르겠다.
배우 추상미(45)가 첫 장편 연출작 ‘폴란드로 간 아이들’로 극장가를 찾았다. 오는 31일 개봉하는 영화는 1951년 폴란드로 보내진 1500명의 한국전쟁 고아와 폴란드 선생님들의 비밀 실화를 찾아 남과 북 두 여자가 함께 떠나는 여정을 담았다. 배우에서 감독으로 돌아온 추상미를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뉴스핌이 만났다.
[사진=커넥트픽쳐스] |
“확실히 배우로 신작을 선보일 때와는 기분이 다르죠. 비교 자체가 안돼요(웃음). 사실 전쟁고아란 소재 자체가 오로지 제 관심으로 선택한 거잖아요. 그래서 얼마나 많은 관객과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 소통할 수 있을까 걱정됐어요. 더군다나 후반 작업을 2년 동안 하면서 외부 반응과 차단됐죠. 오로지 남편만 모니터 고문을 당했어요(웃음). 그래서 더 긴장됐는데 부산국제영화제, 언론시사회 모두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었죠.”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 추상미의 첫 장편 연출작이 된 건 우연이자 필연이었다. 2014년 지인의 출판사에서 해당 자료를 보게 된 추상미는 이 소재로 극영화를 만들기로 결심, ‘그루터기’ 제작을 준비했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그는 제작 과정이 남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고, 다큐멘터리로 담아냈다.
“사실은 다큐멘터리 제작은 생각도 안했어요. 극영화를 만들고 싶었으니까. 근데 리시치 과정에서 생존 교사들과 접촉을 하는데 이걸 시나리오 리서치로만 남기기에는 너무 아쉽더라고요. 이분들의 생전 모습, 육성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렇게 사전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됐죠. 물론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실화라 그걸 알리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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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를 이끄는 주인공은 두 명이다. 한 명은 추상미,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탈북 소녀 이송이다. 이송은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인 배우 지망생으로 오디션을 통해 ‘그루터기’ 주요 배역에 캐스팅됐다.
“투자를 위해서는 남한 아역 스타가 필요하겠지만, 조·단역만큼은 북한 친구들을 쓰고 싶었어요. 그들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게 있으니까요. 그래서 오디션을 진행했고 송이가 캐스팅됐죠. 여정을 송이와 함께한 건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였어요. 근데 아픔과 트라우마가 있어서 쉽게 말을 안하더라고요. 그러다가 폴란드 사람들을 만나면서 빗장이 풀렸죠. 북한 출신인 걸 늘 숨겼는데 처음 자부심도 생겼다더라고요. 아마 송이에게는 상처를 대면하는 여정이자 정체성 회복의 여정이었을 거예요.”
물론 이송만 치유된 건 아니다. 추상미 역시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만들며 자신을 돌아보고 다독여주는 시간을 갖게 됐다. 영화 초반부 언급되듯 그는 이 영화를 만들 당시 극심한 산후 우울증에 시달렸고, 이는 곧 아이를 향한 집착으로 나타났다.
“제 상처를 밝힌 것도 상처가 아름답게 사용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아서 가능했죠. 폴란드 교사들을 보면서 상처가 고난이고 시련이지만, 깊을수록 진짜 사랑을 줄 수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동시에 누군가의 문제, 상처를 볼 때 공감이 얼마나 중요한가, 어떻게 그걸 얻어낼 수 있는가를 배웠죠. 제 바람은 개인, 역사의 상처를 다른 민족의 아이들을 품는데 선하게 쓴 그들처럼 우리의 상처도 그렇게 발휘됐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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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터기’ 진행 과정도 궁금했다. 폴란드 교사들의 이야기가 주가 되는 ‘폴란드로 간 아이들’과 달리 ‘그루터기’는 유일하게 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폴란드 묘지에 묻힌 전쟁고아 김귀덕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리서치 과정에서 남한 고아가 있다는 걸 알게 돼서 지금 시나리오 수정 중이에요. 남한 배우 캐스팅도 남았고요. 이르면 내년, 늦으면 내후년 즈음에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촬영은 대부분 폴란드에서 진행될 듯해요. 단언할 수 있는 건 굉장히 아름다운 비주얼을 볼 수 있다는 거죠. 전쟁고아들이 머물렀던 프와코비체가 호수도 있고 녹지도 많거든요. 현지 촬영, 미술 감독들과 협업해서 그 아름다움도 담아볼 예정이죠.”
마지막으로 감독이 아닌 배우로서의 활동 계획을 물었다. 그는 “배우 추상미를 그리워 해줘서 너무 감사하다. 무대는 저도 그립다”며 웃었지만, 아직은 연기하는 배우 추상미보다 연출하는 감독 추상미로서 보여주고 싶은 게 더 많은 듯했다.
“아직 찍고 싶은 영화가 많아요. 한 시대에 필요한 메시지, 치유나 성찰이 일어날 수 있는 작품들을 보여주고 싶죠. 배우 할 때와 다른 점이요? 세상을 향한 시선, 사회적 이슈와 문제에 관심이 많아졌고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이 많아졌죠. 사람들의 삶 자체에도 관심이 커졌고요. 앞으로 만들 작품들도 이런 부분이 아닐까 해요. 코미디, 공포, 스릴러보다는 사람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거든요. 물론 모든 건 ‘그루터기’를 끝낸 후에 생각해봐야겠지만요(웃음).”
jjy333jj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