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홍규 기자 = 미국의 금리 인상과 달러화 강세, 전 세계 무역갈등에 시달리고 있는 아시아 신흥 국가들이 심호흡을 크게 하고 있다. 원유와 휘발유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이들 국가의 물가를 압박하고 있어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증산을 통해 미국의 대(對)이란 석유 제재에 따른 글로벌 원유 공급 감소분을 메울 의사가 없음을 밝힌 가운데 국제유가 '100달러' 전망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올해 통화 가치 하락에 큰 타격을 받은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인도는 '고유가'라는 '이중고'에 직면한 상황이다. 이들의 인플레이션뿐 아니라 경상 적자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이 세 국가의 중앙은행은 올해 모두 금리를 인상했다며 향후 수개월 간 금리를 계속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또 1일부터 발표되는 태국과 인도네시아 등 주요 에너지 수입국의 물가 지표가 주목된다고 전했다. 필리핀의 9월 소비자물가는 오는 5일 발표되며 인도는 12일 공개된다.
필리핀은 올해 들어 아시아 신흥국 중 높은 인플레이션을 경험하고 있다. 필리핀의 물가 상승률은 세금 인상과 통화 약세, 쌀 공급 부족 현상이 맞물리며 연초 2.9%에서 지난 8월 6.4%로 대폭 상승했다. 중앙은행의 물가 안정 목표 2~4%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유가 상승은 필리핀 경제에 추가 위협이 될 전망이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의 타마라 헨더슨에 따르면 유가와 필리핀의 인플레이션 상관관계는 0.84로 주요 동남아시아 국가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주 필리핀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50bp(1bp=0.01%포인트) 인상했다. 지난 5월 이후 네 번째 인상이다. 오는 5일 발표될 9월 물가 상승률은 약 7%가 전망됐다.
인도의 지난 8월 물가 상승률은 3.7%로, 중앙은행의 중기 목표치 4%를 밑돌고 있지만, 통화 가치 하락과 유가 상승으로 향후 수개월 내 목표치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올해 인도 루피화는 아시아 통화 가운데 최악의 성과를 내고 있다. 원유는 인도의 최대 수입 품목이다. 인도 중앙은행은 이번 회계연도(~2019년 3월)의 하반기 물가상승률이 4.8%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 상반기는 5%로 예상했다. 오는 5일 통화정책회의에서 25bp 금리 인상이 예상된다는 설명이다.
인도네시아의 인플레이션은 다소 진정된 모습이다. 지난주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25bp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지난 5월 이후 다섯 번째로, 150bp를 끌어올렸다. 중앙은행은 루피아화 안정화와 자본 유출 방지에 통화 정책의 초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가 에너지 순수입국인 만큼 유가 상승으로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블룸버그는 진단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해외 연료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바이오 연료 사용을 늘리는 등 여러 조치를 통해 수입을 제한해왔다.
1일 공개될 인도네시아의 9월 인플레이션은 직전월 3.2%에서 3.1%로 둔화할 것으로 전망됐다. 중앙은행의 2.5~4.5% 목표 범위 내에 머물 것이라는 관측이다.
태국은 올해 아시아 신흥국 중 '안전지대'로 꼽혔던 곳이다. 꾸준한 경제 성장률과 넉넉한 외환보유액, 안정적인 물가상승률 덕분이다. 지난 수개월간 태국 바트화가 강세를 나타내면서 향후 물가 오름세는 둔화할 것으로 예상됐다. 태국의 지난 8월 물가 상승률은 1.62%로, 9월은 1.23%가 전망됐다. 태국 중앙은행의 물가 안정 목표 범위는 1~4%다.
하지만 태국 역시 고유가 여파를 피해갈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태국의 소비자물가와 브렌트유 가격의 12개월 상관관계는 0.71로 조사됐다. 때문에 이미 금리 인상을 예고한 태국 중앙은행의 긴축 행보가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원유 배럴[사진=로이터 뉴스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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