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현대사의 오점으로 남은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이 10주년을 맞았다.
당시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던 리먼 임직원은 2만5000명에 달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상황을 맞았던 이들이 지금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맨해튼 금융권 <사진=블룸버그> |
미국 투자 매체 CNBC는 리먼 파산의 충격을 가장 직접적으로 체험했던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지금까지 비슷한 직종과 연봉을 제공하는 일자리를 찾지 못한 실정이라고 보도했다.
수십만 달러의 손실을 떠안은 뒤 최근까지 고전한 이들부터 10년간 대여섯 군데의 직장을 임시직 신분으로 전전하는 전직 뱅커까지 리먼 사람들의 이야기가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리사 로이트만은 HSBC에서 근무하다 리먼이 파산하지 1년 전인 2007년 이직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리먼이 탄탄한 공룡 투자은행(IB)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었고, 100만달러에 이르는 연봉이 무척이나 입맛을 당겼다.
로이트만은 이직과 함께 1990년대 이후 축적한 우리사주 조합 지분을 전량 리먼 주식으로 교체했다. 파산에 따른 손실은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었다.
자녀들의 대학 등록금부터 은퇴 계획까지 뿌리부터 흔들린 가운데 로이트만은 소규모 금융업체에 재취업 기회를 찾았지만 수입은 리먼에서 받았던 연봉의 절반 수준이다.
재정적인 문제보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은 정체성 상실이라고 로이트만은 말했다.
제이슨 버크셔는 파산 직전 해고 통보를 받을 때까지 리먼에서 20년간 뼈를 묻었던 케이스다. 우연히 상사의 이메일을 정리하다 자신이 감원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던 그는 공식 해고 통보를 받고 직장을 떠난 뒤 상당 기간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마음을 추스르고 금융권에서 다른 일자리를 찾았지만 지금까지 임시직을 전전하는 형편이다. 새 고용주는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 채용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단 한 번도 현실화되지 않았다.
2004년 리먼에 입사한 찰스 콰웨이저는 불과 4년만에 예기치 않게 실직자가 된 것은 물론이고 연금펀드의 상당 부분을 리먼 주식과 채권으로 보유했다가 20만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떠안았다.
뿐만 아니라 이후 그의 커리어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리먼의 우량 자산을 사들였던 바클레이스로 옮겨 갔던 그는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한 채 소규모 신생 기업으로 이직했지만 이 업체도 금융위기의 충격 속에 파산하고 말았다.
현재 그는 애완견 상품을 생산하는 신생 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다. 운동화에 티셔츠 차림으로 출근하는 그는 언젠가 양복에 구두를 착용하고 근무할 날을 기대하고 있다.
2003년 애널리스트로 리먼에 입사에 불과 5년 사이 관리 담당 부사장까지 고속 승진했던 르네 스페로는 리먼이 파산보호를 신청했을 당시 임신 10주였다.
은퇴를 맞을 것으로 기대했던 직장을 잃은 뒤 스페로는 바클레이스로 옮겼지만 자신의 업무는 허드렛일에 불과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금융권 재취업에 어렵사리 성공했지만 연봉은 육아 비용을 간신히 충당할 정도였다.
일을 그만두고 상당 기간 전업 주부로 지낸 스페로는 집 근처의 간호사 양성 교육기관에 다니며 제2의 인생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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