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노인 '엠마'와 도우미 로봇 '스톤'의 이야기
10월28일까지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공연
[서울=뉴스핌] 황수정 기자 = 크고 동그란 눈에 서구적인 외모, 무표정한 얼굴에 기계적인 말투를 들으면 로봇 역할과 딱 맞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면모로 관객들에게 따뜻함을 주는 배우다. 뮤지컬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에 출연 중인 배우 이휘종(27)을 지난 7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배우 이휘종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인근의 카페에서 진행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9.07 leehs@newspim.com |
뮤지컬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연출 박해림)는 스스로 고립된 삶을 선택함 '엠마'가 가짜보다 더 진짜 같은 도우미 로봇 '스톤'의 등장으로 새로운 감정을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담는다. 이휘종은 '스톤' 역을 맡아 열연 중이다.
"예전에는 작품을 맡을 때 책을 보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그림을 찾아보기도 하고 음악을 찾아보기도 했죠. 이번 작품은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을 참고했어요. 이 영화에 나오는 로봇은 휴머니즘이 강하거든요. 어떤 행동을 따라 하는 게 아니라 로봇이 감정을 이해하고 학습하는 걸 어떻게 표현하는지 중점을 두고 봤어요."
이휘종이 맡은 '스톤'은 말 그대로 도우미 로봇이다. 그의 독특한 표정과 말투, 과장되지 않은 연기는 판타지적 설정에 설득력을 더한다. 특히 작품 초반과 후반 달라지는 캐릭터 성격을 표현하기 위해 신경쓰고 있다.
"간단하게 '아이'라고 생각했어요. 인간의 감정을 '느낀다'라는 게 아니라 '이해한다'라고 생각했죠. 엠마가 어떤 것들을 이야기해줄 때, 스톤은 아이처럼 그냥 듣고 배우는 거라고 설정했죠. 말투보다는 사실 표정에 더 많이 신경 썼어요. 예를 들어, 엠마가 '너도 웃을 줄 아니'라는 대사가 있고 난 후에는 표정을 마음대로 쓰는데, 그전에는 전형적인 로봇의 상악과 하악이 나눠어있는 듯한 느낌으로 웃죠(웃음). "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배우 이휘종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인근의 카페에서 진행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9.07 leehs@newspim.com |
정답이 없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어떤 배우가 표현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스톤' 역은 이휘종 외에 배우 이율, 고상호가 함께 트리플 캐스팅됐다. '엠마' 역 또한 마찬가지다. 배우 정영주, 유연, 정연이 맡아 각기 다른 매력을 선보이고 있다.
"저는 정말 로봇처럼 해요. 인간미와 위트가 있는 쪽은 (이)율이 형이죠. (고)상호 형은 그 중간이에요. 조금 더 개구진 느낌이 있고요(웃음). (정)영주 누나는 무대에서 장난을 많이 치려고 해요. 제가 실수를 하면 그냥 안 넘어가고 더 재밌게 만들려고 하는 편이죠. 정이 많아서 연락도 많이 하시고 같이 좋은 걸 찾아 나가려는 노력이 대단해요. 유연 누나는 눈을 보고 호흡하다 보면 따뜻함을 많이 느껴요. 좋은 엄마가 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웃음). 정연 누나는 컨디션이 나쁘든 좋든 항상 프로페셔널하게 어느 수위 이상 해내요. 그게 정말 놀라워요."
작품은 2014년 개발을 시작으로 2017년 한예종 졸업 독회 공연에서 선보이며 호평받은 바 있다. 이휘종은 졸업 독회 공연에서도 '스톤' 역으로 함께 했다. 그는 "독회 때는 엠마와 스톤의 이야기가 더 강했지만, 이번에는 엠마에게 더 초점이 맞춰졌다"고 달라진 점을 밝혔다.
"예전에는 엠마와 스톤의 이야기가 강해서 로봇에게 더 집중됐다면, 이번에는 '버나드'라는 새로운 인물이 추가되고 다른 사건도 전개가 되면서 조금 더 재밌어지고 숨 쉴 공간이 생긴 것 같아요. 엠마에게 더 초점이 맞춰지게 됐죠. 뭐가 더 좋다 나쁘다 얘기할 수 없지만, 딱 하나 아쉬운 점은 열린 결말이라 스톤의 이야기가 후반부에 사라졌다는 거? 연습하면서 이것저것 해봤는데, 결국 로봇 위주가 되는 것 같아서 불친절할 수 있지만 관객들의 상상으로 맡겨두자는 결론을 내리게 됐죠."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배우 이휘종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인근의 카페에서 진행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9.07 leehs@newspim.com |
극 중 '스톤'은 집 안에서만 생활하는 '엠마'를 집 밖으로 이끌어내며 변화시킨다. 일련의 행동을 통해 '엠마'가 잊고 있었던 혹은 왜곡됐던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이휘종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고.
"저도 엠마처럼 힘든 기억을 숨겨놨던 적이 있었어요. 학교에서 '자서전'을 주제로 움직임 발표 과제가 있었는데, 그때 아픈 부분을 꺼내보려는 시도를 했죠. 사실 정말 싫었어요. 창피하기도 하고. 하지만 과제를 하면서 그 아픔이 제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더 생각하게 됐고, 사람들이 와서 한 마디씩 해주는 것이 엄청 따뜻하게 느껴졌어요. 그 전에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알코올 중독자들이 모여 사연을 털어놓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해가 되더라고요(웃음).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치유가 된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사실 '스톤'은 '엠마'의 죽은 남편의 기억이 주입된 로봇이다. 어딘가 익숙한 말투와 습관, 이야기 등을 통해 '엠마'를 혼란스럽게 하는 한편, 소중했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것. 작품 제목부터 노래나 인물들의 행동 등 공연 중간중간 조금씩 힌트를 숨겨져 있다.
"여러 장치가 있어요. 제가 하는 로봇의 말투나 행동들이 남편의 장난일 수도 있고, 무엇 하나 간단히 넘어가지 않고 엠마를 웃겨주려고 한다거나 기분 좋게 해주려고 하는 것 자체가 다 남편으로 보이게 하려는 거죠. 제목인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같은 경우, 가장 행복했지만 사소해서 쉽게 잊혀질 수 있는 어떤 단어와 늘상 있는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함께 표현한거라 생각해요. 두 사람이 예전에 매일 했던 행동이라는 설정인 거죠."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배우 이휘종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인근의 카페에서 진행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9.07 leehs@newspim.com |
로봇 연기뿐만 아니라 이휘종은 무대 위에서 직접 피아노를 치고 노래도 부른다. 지난해 연극 'B클래스'를 하며 처음 피아노를 배웠지만 이번에는 노래까지 불러야해 더욱 어려웠단다. 그래도 작품이 거듭되면서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또 무대 위 여유도 배우게 됐다.
"피아노 치는 건 늘 두려워요. 하지만 어떤 상황에 처하면 사람은 다 하게 되는 것 같아요(웃음). 이번에는 짧긴 하지만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하는게 어렵더라고요. 요즘에는 '나중에 내 아이를 위해 불러줘야지' 그런 생각을 하고 공연을 하게 돼요(웃음). 예전에는 무대에 오를 때 계획적으로 만들어서 찾아가는 편이었는데, 요즘에는 상대방에게 더 집중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저에게만 집중하면 관객은 몰라도 상대방은 알거든요. 그래서 저도 상대방을 계속 보고 더 믿으려고 하고 있어요."
이휘종은 뮤지컬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를 "따뜻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극장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이 찾고 있다. 이휘종은 '엠마'처럼 스스로 고립시키는 사람이 많은 현대사회이기에 더욱 공감갈 것이라고 자신했다.
"친구에게 들었는데, 어떤 분이 친구를 만나러 가는 걸 '추억을 만나러 간다'고 말했대요. 나이 많으신 분들이 공연을 보면 행복했던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것 같아요. 또 요즘 SNS나 정보가 많은 세상이라 정신이 없는데, 오히려 더 고립된 사람이 많다고 생각해요. 사회적인 가면을 쓰고 있지만 스스로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그분들이 공연을 보면 자기를 돌아볼 수 있고, 또 치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다보니 다양한 연령층에게 다가갈 수 있는 따뜻함을 주는 것 같아요."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배우 이휘종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인근의 카페에서 진행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9.07 leehs@newspim.com |
학창 시절 이휘종은 어머니 덕분에 운동, 공부, 그림 등 다양한 경험을 했다. 그의 최종 선택은 연기. 연극반 출신의 어머니 영향도 있었지만 노래 부르는 걸 워낙 좋아해 뮤지컬에 관심이 생겼다고. '엘리펀트송' '어쩌면 해피엔딩' '킬미나우' 등 아직 하고 싶은 작품이 많은 이휘종의 더 다양한 행보를 응원한다.
"단편 영화도 찍어봤지만, 아직까진 연극이나 뮤지컬이 더 재밌어요. 처음부터 끝가지 제가 끌고 가야하는 거잖아요. 계속해서 좋은 작품을 만나고 있지만, 하면 할수록 욕심이 더 생기는 것 같아요. 구체적인 목표보다 계속 찾고 있는 것 같아요.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수면 위에 올라왔다가도 수면 아래로 깊게 가라 앉잖아요. 그래서 계속 기억에 남는 배우, 오래 볼수록 괜찮은 배우로 기억되고 싶어요."
뮤지컬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는 오는 10월28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공연된다.
hsj121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