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부터 우후죽순 서울시내 특화거리
지자체 무관심,상권침체 속에 시민에게 외면
전문가들 "지역이 상생하는 특화거리 조성돼야"
[서울=뉴스핌] 구윤모 기자 = 지난 11일 오후 2시쯤 서울 종로구 낙원동의 다문화거리. 30여 개 노점상이 장사를 시작하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노점상 대부분이 분식, 호떡, 군밤, 각종 잡화들을 팔고 있을 뿐 다문화와 관련된 노점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노점상 겉면에 새겨진 한자와 일본어만이 이곳이 다문화거리임을 알렸다.
종로구는 지난 2010년 낙원동에 다문화거리를 조성하며 13개국 20여 개 음식 판매점을 설치하고 외국 전통공연도 개최하겠다고 공언했다. 실제로 거리 조성 초기에는 일본이나 중국 음식 등 다문화 음식을 파는 노점상이 존재했다. 그러나 장사가 안 되자 노점상 대부분이 업종을 변경하거나 폐업하면서 현재는 '다문화'와 거리가 먼 노점상만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특색없는 서울의 특화거리
서울시내 특화거리가 시련을 겪고 있다. 2000년대 중반 들어 서울시 각 자치구는 특화거리 조성에 열을 올렸다. '지역상권 활성화' 라는 특명을 띈 특화거리는 서울 각지로 퍼져나갔다. 그 결과 상급기관인 서울시에서도 각 자치구에서 운영하는 특화거리의 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급증했다.
그러나 지자체의 바람과 달리 대다수의 특화거리는 시민들의 삶 속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다. 지자체의 무관심과 경기불황, 상권침체 속에 특화거리만의 특별한 힘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종로구 낙원동 다문화거리 이정표 [사진=구윤모기자] |
노점상 한모(67)씨는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은 노인들이 대부분이고 젊은 사람들은 바로 옆 인사동으로 다 가기 때문에 거리가 활성화되기 어렵다"며 "구에서도 다문화거리라고 조성만 했을 뿐 홍보 등 별다른 조치는 해준 것이 없다"고 전했다.
특색이 없고 홍보도 안 되다 보니 시민들도 다문화거리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권용진(31)씨는 "종로에 자주 오는데 여기가 다문화거리인줄 오늘 처음 알았다"며 "각국의 음식이 잘 준비돼있고 홍보도 잘되면 자주 찾을텐데 아쉽다"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종로구에서는 다문화거리에 대한 별다른 활성화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대로변에 있던 노점상을 이면도로로 들여와 관리하기 위한 차원에서 조성된 것"이라며 "관리는 하고 있지만 홍보나 발전계획에 대해서는 말할 것이 없다"고 전했다.
◆아현동 웨딩거리, 결혼 트렌드 변화 속에 쇠퇴일로
수십 년간 예비부부들의 필수코스였던 서대문구 아현동 웨딩거리는 결혼 트렌드의 변화, 경쟁 상권의 성장이 맞물리며 쇠퇴일로를 걷고 있다.
13일 통계청에 따르면 조혼인율(인구 1000명 당 혼인 건수)은 2016년 5.5건이다. 1970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 결혼인구가 줄면 웨딩관련 업종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아현동 웨딩거리 현수막 [사진=구윤모기자] |
그러나 아현동 웨딩거리의 경우 서울 강남구 청담동 웨딩거리와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점이 상권쇠퇴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청담동 웨딩거리는 고급스런 지역 이미지에 웨딩컨설팅업체를 중심으로 형성된 웨딩 인프라가 더해져 아현동이 갖고 있던 '웨딩' 상징성을 상당 부분 가져왔다. 더욱이 인터넷의 발달로 예비부부들이 직접 발품을 팔지 않아도 된 점이 맞물리면서 아현동 웨딩거리의 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20년간 아현동 웨딩거리에서 일했다는 윤모(48)씨는 "한창 손님이 많을 때에 비하면 반의 반 수준으로 줄어든 것 같다"면서 "특히 마땅한 주차공간이 마련돼 있지 않다보니 손님들의 발길이 끊겼다"고 설명했다.
이에 서대문구는 뒤늦게 웨딩거리 활성화를 위한 움직임에 돌입했지만 변화하는 시대 흐름 속에 아현동 웨딩거리의 옛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서대문구청 관계자는 "현재 구에서도 웨딩거리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며 "웨딩 관련 업종을 권장업종으로 지정해 적극 유치할 예정이며 재건축을 통해 주차 문제도 일정 부분 해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양동 양꼬치거리, 상권 활성화 이면에 주민 고통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위치한 양꼬치거리는 2000년대 초반부터 양꼬치 전문 음식점이 들어서면서 성장했다. 서서히 상권이 확대되며 2016년 광진구는 양꼬치거리를 알리는 아치를 거리 양쪽 입구에 제작하며 본격적인 특화거리 홍보에 나섰다. 그 결과 현재 80여 개 점포가 활발히 영업하며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특화거리로 거듭났다.
그러나 이와 함께 원주민들의 고통도 시작됐다. 조용한 지역이 특화거리로 조성되며 소음, 방범 문제가 발생한 것은 물론 음식점포의 증가로 악취와 연기 문제 등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양꼬치거리가 주민들에게 자랑이 아닌 골칫거리가 된 것이다.
광진구 자양동 양꼬치거리 아치 [사진=구윤모기자] |
이 지역에 20여 년간 거주한 남모(73)씨는 "양고기 냄새와 강한 향신료 냄새 때문에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면서 "밤에는 끈적끈적한 기름이 섞인 연기가 심해 창문을 열기도 어렵다"며 한탄했다.
실제로 광진구청에는 양꼬치거리로 인해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들의 민원이 주기적으로 접수되고 있다. 그러나 구에서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면서 주민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광진구청 관계자는 "방범이나 위생 문제는 순찰을 강화하거나 자체적인 청소로 해결이 가능하지만 냄새 문제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 "지역이 상생하는 특화거리 만들어야"
전문가들은 주민들과 상인, 지역이 모두 상생할 수 있는 특화거리가 조성·운영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역의 모든 주체가 원하고 만족하는 특화거리만이 지역의 진정한 상징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남진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는 "대부분 특화거리가 지역의 정체성, 고유의 색깔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지역 주민들, 상인들이 진정으로 원하고 함께 협력하는 특화거리가 돼야 외부인에게도 사랑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자체에서 특화거리를 살리겠다고 예산만 쏟아 부으면 오히려 프랜차이즈가 들어오고 지역색을 잃을 수 있다"며 "서울시와 해당 자치구, 주민들이 협의체를 구성하고 같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도 "사람을 모을 수 있는 테마나 이벤트가 잘 준비된 테마거리가 조성되면 지역상권을 살리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면서 "무조건 예산을 퍼붓기 보다는 지역에 맞는 콘셉트를 뽑아내고 지역상권과 트렌드를 정확히 분석한 특화거리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iamky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