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투표제 의무화 등 기업 경영권 흔들 가능성 농후
[서울=뉴스핌] 백진엽 기자, 김지나 기자 = 법무부가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을 재추진하면서 재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소액주주의 권리를 강화해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기본 취지는 이해하지만, 투기 자본에 경영권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26일 재계 등에 따르면 법무부는 최근 상법 개정안 검토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법무부는 보고서를 통해 국회에 계류중인 개정안 내용 중 ▲집중투표제 의무화▲다중대표소송제 도입▲감사위원 분리 선출 등의 사안에 찬성하는 의견을 냈다.
대주주의 권한을 제한하고 소액주주의 권리를 강화해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이 중 집중투표제는 등기이사를 선출할 때 후보별로 1주마다 선임할 이사의 수만큼 표를 갖게 하는 제도다. 표를 집중하거나 분산해 투표할 수 있어서 소수 주주라 하더라도 지지하는 특정 후보를 당선시키는 등의 전략을 세울 수 있다. 법무부가 이번에 제출한 의견서에는 자산 2조원 이상 상장회사에 집중투표제를 의무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담겼다.
이밖에 다중대표소송제는 모기업 주주가 자회사의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 방식은 감사위원 중 1명 이상을 기존 등기이사와 별도로 선출하는 방식이다.
법무부는 지난 2013년에도 비슷한 내용을 입법 예고했지만, 반발이 심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를 문재인 정부들어 다시 한번 재추진하는 것이다.
법무부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재계에서는 기업의 경영권을 흔들어 결국 투자와 고용 위축으로 이어지는 개악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집중투표제에 대해 투기 자본에 경영권이 무방비로 노출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과거 2013년에도 이같은 이유로 집중투표제에 대한 반대가 가장 컸다.
◆ 재계, 집중투표제 등 상법개정안 반대... "국내기업, 투기자본 먹잇감 전락"
집중투표가 의무화될 경우 지분이 적은 헤지펀드가 다른 투자자와 함께 특정 후보에 몰표를 던지는 방식으로 이사회에 들어올 수 있다. 때문에 기업의 지속가능성보다는 당장의 배당이익 등만 챙기려 하는 투기자본들에게 기업들이 먹잇감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중대표소송제 역시 지주사 등 모기업 지분을 가진 외국계 자본이 해당 기업의 계열사까지 소송 대상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경영권 간섭이 심해질 수 있다.
모든 외국계 자본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상당수 외국계 자본들은 기업의 장기적 투자보다는 고배당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 삼성과 최근 현대차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엘리엇 역시 최종 목적은 고배당 등 본인들의 수익 극대화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법무부가 추진하는 대로 상법이 개정될 경우 외국계 투기자본들에게 자리를 펴 주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 재계의 입장이다.
실제로 일본은 과거 집중투표제를 도입했다가 주주 간 파벌싸움, 경영 효율성 훼손 등 부작용이 커지면서 1970년대 폐지했다.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고 있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러시아, 칠레, 멕시코, 미국의 5~6개 주 등에 불과하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도는 전세계 어디에도 없는 법안으로 입법례조차 찾기 힘들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집중투표제의 경우 세계적으로 거의 하고 있는 기업들이 없고, 지금도 필요하다면 기업들 정관변경을 통해 자율적으로 도입할 수 있다"며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경우 해외 지분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들이 단기 수익을 위해 이 제도를 악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해외 펀드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맞춰 협력해 함께 움직여 단기 차익을 노릴 수도 있다"며 "때문에 집중투표제 도입을 반대한다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기업의 이사회나 주주총회가 분열돼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걱정도 많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의 의사결정은 시의성이 중요한 사안들이 많다"며 "그런데 상법 개정안으로 다양한 이해관계를 지닌 사람들이 이사회에 진입하게 될 경우 해당 기업은 싸움만 하다가 의사 결정 시기를 놓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jinebit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