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오영상 전문기자] 20일 일본은행(BOJ)의 새로운 부총재로 아마미야 마사요시(雨宮正佳) BOJ 이사, 와카타베 마사즈미(若田部昌澄) 와세다대학 교수가 취임했다. 이로써 연임이 결정된 구로다 하루히코(黒田東彦) 총재 하에서 새로운 BOJ 체제가 본격적인 서막을 올렸다.
특히 올해는 BOJ의 독립성을 존중한 새 BOJ법이 시행된 지 20년이 되는 해이다. 하지만 아베노믹스에 의해 구축된 정부와 BOJ 간의 공동 보조는 금융 정책의 독립성에 의문을 품게 만들고 있다.
이에 대해 이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금융완화를 지속할 것인지, 축소할 것인지. 새로운 BOJ 체제는 ‘금융정책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에 다시금 직면했다”고 전했다.
BOJ의 새 체제를 이끌 3인방. 왼쪽부터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 아마미야 마사요시 부총재, 와카타베 마사즈미 부총재.<사진=일본은행,와세다대학교> |
◆ 총리 관저가 BOJ 인사 '좌지우지'
BOJ의 총재·부총재 인사에 대한 막판 조율이 한창이던 지난 2월 중순. 아베노믹스의 어드바이저로 알려진 혼다 에츠로(本田悅朗) 주 스위스 대사는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에게 “디플레 탈피를 위해서는 대규모 재정 지출과 강력한 금융 완화가 불가결합니다. 와카타베 교수는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인물입니다”라고 조언했다. 그 후 와카타베 교수가 부총재 물망에 올랐다.
20년 전인 1998년 4월 시행된 새 BOJ법은 제3조에 ‘BOJ의 통화 및 금융 조절에 있어서의 자주성은 존중돼야 한다’고 적고 있다. 이 조문이 정부로부터 BOJ의 독립성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지금은 디플레 탈피를 위해 정부와 BOJ가 한 몸이 돼 대처하고 있다. 독립성의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는 이유이다. 20년 전 법 개정 때에도 BOJ에 어디까지 독립성을 인정할 것인지가 초점이 된 바 있다.
‘통화 및 금융 조절이 경제 정책의 일환을 이룰 것’이라는 BOJ법 제4조를 놓고 20년 전, 정부와 BOJ는 첨예하게 대립했다. ‘경제 정책’의 앞에 ‘정부의’라는 문구를 넣겠다는 정부 안에 BOJ는 ‘최후의 의사 결정을 BOJ에 맡기지 않으면 독립성의 의미가 없다’고 반발했다.
◆ 정부나 여론 지지 없으면 “정책 독립 어려워”
하지만 정부와 여론의 지지가 없으면 BOJ의 정책이나 독립성은 지속되기 어렵다. 새 BOJ법이 시행됐던 1998년부터 일본은 불황과 디플레가 심각해졌다. 소비자물가는 7년 연속 전년 대비 하락했으며, 그 사이 명목 기준으로 4번이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독립성을 쟁취한 BOJ는 2000년에 제로금리 정책 해제를 강행했다. 2007년에는 정책금리를 연 0.5%로 올리는 등 금융 긴축에도 나섰다. 하지만 닷컴 버블 붕괴와 리먼 쇼크에 직면하면서 경기는 악화됐다. ‘BOJ는 금융 완화에 소극적’이라는 평가가 정부뿐 아니라 학계나 재계, 심지어 국민들까지 퍼졌다.
BOJ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반대로 정부의 발언권은 강해졌다. 나아가 동일본 대지진과 그 후의 엔고 추세도 BOJ를 압박했다. 2012년 10월 BOJ는 민주당 정권과의 공동 문서에서 디플레 탈피 대응을 표명했다. 이듬해 1월에는 아베 정권의 뜻에 따르는 형태로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2%의 물가 목표를 내걸었다.
BOJ가 아베 정부의 뜻을 반영해 시작했던 양적·질적 금융완화는 이제 5년째로 접어들었다. 대량으로 국채를 매입하면서 지난해 말 BOJ의 국채 보유 잔고는 450조엔(약 4500조원)을 기록했다. 나아가 장기금리는 0%로 억제하면서 BOJ가 정부의 재정 지출을 뒷받침하는 ‘재정 파이낸스’ 색채는 날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반면, 은행들의 수익 악화나 국채 시장의 기능 저하 등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일부에서는 정부에 종속된 것처럼 보이는 지금의 금융 완화는 올바른 모습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신문은 “새 BOJ법 시행 20년을 맞아 새 체제로 출범하는 지금이야말로 BOJ 독립성의 의의를 물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연임안이 국회를 통화하면서 제2기 '구로다 체제'를 갖추게 된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사진=뉴시스> |
[뉴스핌Newspim] 오영상 전문기자 (goldendo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