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지난겨울 수백만의 관객을 수없이 울렸던 그가 이번에는 살인 누명을 쓴 택배 기사가 돼 돌아왔다.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너무나 순진무구하고 너무나 억울한 얼굴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도망치는 처지에 “죄송하다”는 인사를 빼먹지 않고, 타인의 물건을 급히 빌릴(?) 때는 명함을 두고 가는 것도 잊지 않는다.
배우 강동원(37)이 신작 ‘골든슬럼버’가 베일을 벗었다. 지난 14일 개봉한 이 영화는 이사카 코타로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재구성한 작품. 광화문에서 벌어진 대통령 후보 암살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한 남자의 도주극을 그렸다.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가 나온 듯하죠. 제가 만든 사람이라 그런 걸 수도 있지만요(웃음). 제작 제안을 했다고 해서 더 애정이 가고 그러진 않아요. 물론 걱정은 됐죠. 내가 제안했는데 잘 안 되면 어쩌나 하고요(웃음). 다행히 저희가 원한 방향대로 나온 듯해요. 리듬감도 챙겼고 소소한 재미도 많이 살렸고요. 제가 처음부터 다 나와서 관객들이 지루할까 봐 재미를 살리려고 노력했거든요.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했죠.”
알려졌다시피 ‘골든슬럼버’는 강동원이 직접 영화화를 제안한 작품이다. 원작을 본 후 영화사 집을 찾아갔고, 이후 판권 구매와 시나리오 개발 과정까지 7년을 함께 지켜봤다. 무엇이 강동원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일까.
“여러 가지가 좋았어요. 첫째로는 이런 억울한 사람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죠. 또 실제로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났으니까 그걸 이야기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했고요.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 프레임이 씌워져서 완전 다른 사람이 돼버리는 것도 해보고 싶었죠. 하지만 가장 좋았던 지점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었어요. 홀로 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주위 도움을 받아서 살아남잖아요. 그 휴머니즘이 좋았죠.”
극중 강동원이 연기한 인물은 건우다. 대통령 후보 암살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택배기사.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심과 작은 선행이 세상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 착한 심성을 지녔다.
“연기가 어렵지는 않았어요. 풀려있는 캐릭터가 정제된 역할보다 연기가 수월하거든요. 저랑 비슷한 지점이 많았고요. 저도 늘 ‘손해 보면 어떠냐, 의미 있게 가자’라고 생각하죠. 물론 바보스럽게 착하진 않아요(웃음). 그냥 잘살고 싶고 죽으면 죽었지 치사하게 살고 싶진 않죠. 잘사는 게 뭐냐고요? 남에게 피해 안 주고 자기 일 열심히 하는 거죠. 사회 구성원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어요. 저만 잘 먹고 잘살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강동원의 1인 2역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었다. 강동원은 건우 역과 함께 가짜 건우, 이른바 실리콘 역할도 함께 소화했다. 한 작품 안에서 극과 극 캐릭터 오가는 강동원을 보는 건 관객 입장에서 꽤 흥미로운 일이다.
“때리는 것도 맞는 것도 나라서 힘들었어요. 근데 또 특수 분장이 재밌더라고요(웃음). 처음에는 똑같은 얼굴로 가려고 하다가 눈이랑 코만 특수 분장을 제안했어요. 사람 얼굴에서 눈과 코가 중요해서 포인트를 잡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너무 많이 건드리지는 못하고 왼쪽 쌍꺼풀을 없앴어요. 제가 원래 짝눈이거든요. 그러고 코를 세우고 입에도 뭘 넣었죠. 그게 또 자세히 보면 다른,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는 설정에도 부합되고요.”
강동원의 말처럼 ‘골든슬럼버’는 이미지가 전부인 세상, 그 무서운 힘을 말한다. 동시에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정보, 죄 없는 피해자를 양성하는 음모 등을 함께 꼬집는다. 전작이 ‘1987’(2017)이었기 때문일까. 이제 그의 작품 선택 기준에 메시지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느낌이다.
“그건 아니에요. 여전히 그때 가장 끌리는 걸 찍죠. 다만 어쩌다 보니 ‘1987’과 붙어서 그렇게들 생각하시나 봐요. 근데 ‘골든슬럼버’가 그 정도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진 않아요. 사실 ‘1987’ 찍고는 데미지가 좀 왔어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 이후 처음이었죠. 캐릭터가 안 좋게 끝나면 전 그렇더라고요. 머리로는 분리가 되는 데 감정이 섞이죠. 이번에는 이한열 여사 어머니께 치유를 많이 받았어요. 반면 ‘골든슬럼버’는 희망적으로 끝나서 곧바로 치유됐고요.”
강동원의 차기작은 김지운 감독의 ‘인랑’이다. ‘인랑’ 촬영이 끝나면 3월 즈음 유럽으로 넘어가 ‘쓰나미LA’를 찍을 예정이다. ‘쓰나미LA’는 강동원의 첫 할리우드 진출작. 이렇게 바쁜 스케줄 틈틈이 시나리오 작업도 이어가고 있다.
“시나리오는 다시 써야 해요. 너무 엉망이라(웃음). 작가를 붙일지 말지도 고민 중이죠. 몇 명에게 모니터링해줬는데 너무 슬프고 비관적이고 염세적이라고…. 제가 학창 시절에 그런 면이 좀 있었거든요. 하하. 우선 지금 당장 바람은 ‘골든슬럼버’가 잘됐으면 좋겠어요. 특별 출연한 ‘1987’을 빼면 ‘마스터’(2016) 이후 1년 만이잖아요. 그리고 또 다른 바람은 무사히 살아서 ‘인랑’ 촬영을 마치는 거죠(웃음). 병원에 안 실려 가고 잘 끝냈으면 해요.”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YG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