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열풍의 중심에 선 2030세대
N포세대·청년실업 9.9%·대졸초봉 2400만원...미래 담보 어려워
주식, 부동산 대비 진입장벽 낮고 정보수집 용이
"월급만으론 집 한채 못사는 사회구조 문제"
[뉴스핌=이성웅 기자] 지난해 말 취업에 성공한 권수영(가명, 31)씨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200여만원을 3개월 전 가상화폐에 투자했는데 한달여만에 600% 넘는 수익을 거두며 학자금 대출 잔금을 모두 갚았기 때문이다.
권씨는 "사실 좀 더 묵혔더라면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었는데, 요즘 불안정한 코인시장을 보면 작년에 빼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든다"며 "기분 좋게 새출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트론(가상화폐의 일종)이 너무 고맙다"고 소회를 전했다.
권씨의 사례에서 'N포세대'라 불리는 2030세대가 코인판에 뛰어드는 원인을 찾을 수 있다. 17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 실업률은 9.9%로 역대 최고 수준. 각종 공무원 시험 준비생, 아르바이트, 일용직 등 비경제활동인구까지 포함한 체감실업률(고용보조지표3)을 합하면 22.7%에 달한다.
지난해 여의도 국회 잔디마당에서 열린 '2017 대한민국 청년일자리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채용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김학선 기자 yooksa@ |
또 취업포털 사람인의 조사결과, 지난 2016년 대졸사원 평균 초봉은 2373만원이다. 경기지역 웬만한 전세 매물도 2억원을 넘는 현실을 고려하면 내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기엔 한참 부족하다.
정부가 '투기'로까지 말하는 코인판에서 청년층이 희망을 찾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단순히 월급쟁이로는 미래를 도모할 수 없기 때문이다.
투자를 할 수 있는 대상은 많다. 그러나 종잣돈이 넉넉하지 않은 2030세대에겐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일반적인 투자는 진입장벽이 높다.
반면, 가상화폐는 500만원 이하의 상대적으로 적은 종잣돈으로도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종목에 따라 한달만에 10배 이상 수익을 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것이 가상화폐이기 때문이다.
2030세대는 지난 2009년 거의 공짜에 가까웠던 비트코인이 주당 2000만원대로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부러움과 후회, 기대감을 동시에 느꼈다. '왜 난 일찍이 투자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나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라는 기대에 부푼 셈이다.
또 가상화폐에 대한 정보는 온라인에 공개된 것이 많아 접근도 용이한 편이다. 주식이나 부동산 등에 대한 정보가 소수들 사이에서만 공유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비트코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실제로 특정 종목이 '떡상(급등을 의미하는 가상화폐계 은어)'한 날이면 가상화폐 관련 커뮤니티엔 2030세대의 수익인증 글이 줄을 잇는다.
지난해 말 한 20대 여성은 온라인 가상화폐 커뮤니티를 통해 "리플에 500만원을 투자해 2400% 수익을 거뒀다"며 "일부 수익을 동물보호단체에 기부하는 게 꿈"이라고 전했다.
한 30대 남성은 1100%대 수익 인증글을 올리며 "나는 가상화폐가 부의 재분배를 실현할 수 있는 현재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며 "부동산 투기나 주식 붐으로 부를 이룬 세대들이 가상화폐 투자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각종 '동전주(주당 수백원짜리 종목)'가 '지폐주(주당 수천원짜리 종목)'가 되는 날이면 포르셰, 벤츠 등 각종 고급 수입차를 계약하러 간다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2030세대가 가상화폐에 뛰어드는 이유는 마지막 인생역전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여기엔 월급만으론 집 한채도 살 수 없을 정도로 빈부격차가 큰 구조를 만들어놓은 기성세대의 탓도 있다"고 지적했다.
[뉴스핌 Newspim] 이성웅 기자 (lee.seongwo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