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영화 ‘강철비’가 올겨울 극장가 대전의 화려한 포문을 열었다. 지난 14일 베일을 벗은 이 영화는 개봉 3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 무서운 흥행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유난히 덤덤하다. 희한하게 들뜨지도 않고 걱정되지도 않는다. 이게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다”던 그의 말이 자신감이었다는 게 수치로 확인된 순간이었다.
배우 곽도원(44)이 신작 ‘강철비’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강철비’는 북한 내 쿠데타가 발생하고 북한 권력 1호가 남한으로 긴급히 넘어오면서 펼쳐지는 첩보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 ‘변호인’(2013) 이후 또 한 번 양우석 감독과 함께한 작품이다.
“‘변호인’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감독님 책은 너무 통쾌했어요. 특히 엔딩. 실제로 이번에 사드 문제 터지고 중국 관광객들 뭉쳐서 한국 안오고, 그 와중에 미국이 한마디 하면 눈치 보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엔딩에서 대리 만족이 되는 거예요. 강국이 된 듯한 느낌이었죠. 그러면서 ‘아, 상상력 죽인다’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개봉 몇 주 전에 뉴스에서 우리나라가 핵보유국일 때를 이야기하더라고요. 이게 완전히 가상 속 이야기는 아니었던 거죠.”
극중 곽도원이 연기한 인물은 ‘남한 철우’ 곽철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으로 북한 최정예요원 엄철우(정우성)를 만나 총상을 입은 북한 1호와 조우하게 된다. 이후 북한의 선전 포고와 남한의 계엄령 선포까지 유례없던 전운이 감돌자 대한민국을 위해 엄철우와 힘을 합친다.
“핵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일상에서 곽철우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뭘까 고민했어요. ‘외로움’이었죠. 누구도 핵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아요. 조용히 하라고, 말도 안 된다고 하죠. 게다가 곽철우는 외교 안보 수석 ‘대행’이에요. 굉장히 나약하고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는 소시민이죠. 거기다 이혼까지 당한 외로운 아버지. 전쟁을 막으려는 곽철우 역시 가정을 지키려는 우리네 아버지들의 처절함에 초점이 맞춰져 있겠다고 생각했죠.”
영화 속 곽철우, 곽도원의 또 다른 롤인 유머 코드 이야기도 이어졌다. 긴 러닝타임(139분)이 지루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 곽도원은 적재적소에 유머를 배치해 극 분위기를 환기했다. 하지만 사실 무거운 주제의 영화에서 웃음을 담당한다는 건 베테랑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타이밍이 중요했죠. 우리가 2시간30분짜리 코스를 쭉 짰잖아요. 마라톤처럼요. 그럼 관객이 이제 그 코스를 달리는 거예요. 근데 중간중간 있는 음료수병에 까나리액젓이 들어있으면 안되거든요(웃음). 누적된 피로를 잘 풀어줘야 하죠. 그래서 코미디가 어려운 거고요. 그래서 리딩할 때부터 현장에서도 계속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그러면서 중심을 잡아갔죠. 무엇보다 편집도 참 잘해줬고요. ‘변호인’ 현장 편집 친구가 처음 편집 기사로 작업한 건데 정말 훌륭하게 해줬죠.”
그렇다면 그가 촬영하면서 진짜 힘들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곽도원은 망설임 없이 영어 연기라고 했다. 성조가 있는 중국어보다도 그는 영어가 더 곤욕이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전 진짜 영어를 못해요. 외국에서 음식도 못 시켜 먹죠. 근데 곽철우가 옥스퍼드를 나왔대요. 식은땀이 나더라고요. 아, 안됩디다(웃음). 나중에는 대사 까먹는 꿈도 꿨죠. 연기 처음 할 때, 20대 때나 꿨지 마흔 넘어서 그런 꿈을 다 꿨다니까요. 그래서 나중에는 3.14159… 원주율 외우듯 외웠죠. 또 함께 출연한 외국 배우가 자기네들도 프롬프터 쓴다고 해서 차 안에서 찍은 신은 뒤에 대사를 붙여 놨어요. 물론 외우고 들어갔지만, 그게 있다는 자체로 마음이 편하더라고요(웃음).”
‘변호인’과 ‘강철비’. 양우석 감독과 곽도원이 의기투합한 이 두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전 정권에서 출발했다는 점, 그리고 정치적 메시지가 분명하다는 점. 그래서 함께한 의도를, 그때의 부담감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곽도원의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배우는 무정부주의자이자 회색분자여야 하죠. 극단에서 연기 처음 할 때부터 그렇게 배웠어요. 전 시대를 이야기하는 게 배우의 숙명이라고 생각해요.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건 말할 줄 알고,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집회도 나가고 화도 내야죠. 연기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해요. 그게 배우가 해야 할 일이죠. 이번 ‘강철비’도 마찬가지였어요. 이 생각에 동의했고, 이게 작품으로서 배우의 눈과 입과 몸으로 표현될 때 관객에게 어떤 반향을 일으킬까 호기심이 많았죠.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다만 제가 강조하고 싶은 건 이 작품이 어떤 정치적 색깔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라는 거죠. 그리고 올겨울 좋은 작품들이 많은 가운데 우리는 아주 따뜻한 웃음코드를 가진 영화라는 거(웃음).”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