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포비아' 로 인해 도움 필요한 이들에게 피해 돌아가
[뉴스핌=오채윤 기자] 매년 이맘때쯤이면 거리에서 종을 울리며 빨간 자선냄비에 도움의 손길을 구하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선의의 기부금을 악용하는 사건들이 올해 잇따라 터진 탓에 기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겨나게 됐다.
올해 치료비 명목으로 수억원의 기부금을 받아 그 기부금으로 호화생활을 했던 ‘어금니 아빠’ 사건, 소외계층 아동청소년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성금 128억원을 가로챈 비영리단체 ‘새희망씨앗’ 사건까지. 이들은 선의를 베풀려는 사람들의 마음마저 쪼그라들게 했다.
‘기부포비아’는 ‘기부’와 공포증을 뜻하는 ‘포비아(phobia.공포증)’를 합친 신조어로, 기부에 대한 공포를 드러내는 말이다. 이 때문에 기부한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도 많아지게 됐다.
이런 ‘기부포비아’ 확산으로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갈지 우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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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
내년 1월까지 실시되는 ‘희망 2018 나눔캠페인’의 현재 모금액이 목표액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캠페인 기간 모금 상황은 온도계로 볼 수 있게 돼 있다. 모금 목표액 1%를 달성할 때마다 1도씩 올라가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액 또한 예년보다 현저히 줄어든 상황이다. 후원을 받아 취약계층에 연탄을 전달하는 기관도 올해 40만장 전달을 목표로 잡았지만 지금까지 14만장 정도밖에 후원받지 못했다. 기부포비아로 인해 냉랭해진 사회 분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직장인 김모(29)씨는 “평소에 자선냄비가 보이면 만 원짜리 한 장이라도 꼭 넣곤 했는데 요새 기부금 관련 사건 때문에 기부금이 과연 불우이웃에게 제대로 전달될까 의심스런 마음이 들기도 한다”며 “내가 낸 돈이 어떻게 이용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6일 기준 경남 창원광장에 설치된 사랑의 온도탑 온도는 7.6도(7억400만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15.8도(14억 3000만원)와 비교하면 이 역시 절반 수준이다.
그런가 하면, 기부금 정보 공개 의무를 가진 단체는 절반에 머물러 제도상 허점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기부단체들이 기부금 집행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국제 모금전문가 인증기관인 CFRE 회장은 지난 5일 열린 한국 필란트로피 소사이어티(KSoP) 창립 기념 국제포럼에 참석해 “미국에서도 끔찍한 모금 사기가 있었다”며 “비영리단체가 더 많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신뢰감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이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는 일이 없도록 제도적‧사회적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뉴스핌 Newspim] 오채윤 기자 (cha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