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주식시장에 첫발...4년 만에 수십억원 벌어
2008년 고통스럽던 1년...'공포'에 베팅 이듬해 '대박'
[뉴스핌=김양섭 기자] 지난 2월 샘표식품 5% 주주 명단에 낯선 이름 하나가 등장했다. 개인투자자 이정윤. 샘표식품은 그가 처음으로 5% 이상 사들인 종목이다. 그 후로도 지분을 조금씩 늘려 8월 2일 기준 그의 지분은 9.76%다. 돈으로 따지면 150억원 정도다.
이정윤 세무사 /이형석 기자 leehs@ |
세간에 그의 이름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주식 커뮤니티에선 필명 ‘개미전도사’로 유명세를 떨친 인물. 또 증권사 실전투자대회에서 풋대박세무사, 이세무사, 제씨리버모어, 강남장어 등의 필명으로 수차례 수상한 경력도 있다. 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직업은 세무사다. ‘풋’(하락 방향의 투자)으로 수익을 내기도 하고, 전설적인 차트매매 투자가인 ‘제씨리버모어’를 롤모델 중 하나로 여기는 ‘전천후’ 투자자다.
상당수의 거액 개인투자자들이 대체로 ‘가치투자자’를 표방하면서 ‘가치투자에만 답이 있다’는 식의 투자론을 강조하는 것과는 다르다. 재무제표를 다루는 전문가인 ‘세무사’이기도 하지만 추세매매, 차트매매를 등한시하지도 않는다. 또 가치투자자들이 ‘제로섬 게임’이라며 거들떠보지 않는 선물옵션 투자도 그가 주요 수익을 내는 대상 중 하나. 그는 "본인에게 수익을 주는 게 우량주"라고 정의한다.
그의 주식투자 인생은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제대한 뒤 여의도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시작됐다. 그는 중학생 시절부터 ‘증권맨’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고 한다. 그에게 증권맨은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었다.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 제도권에 몸을 담지는 않았지만 여의도에 있는 주식투자 관련 회사에 취직했다.
그가 주식을 시작하게 된 시기는 1999년. 주식시장이 이제 막 IMF 외환위기의 고통을 털어내고 가파른 상승세를 타던 시점이다. 당시 그는 주로 저가주 중심 투자전략으로 주식을 시작했다. 자고 일어나면 주가가 오르는 신기루도 경험했다. 이후에는 IMF 위기 시 관리종목이 된 종목 중 브랜드 가치가 높고 관리종목 탈피가 예상되는 종목들을 찾아 투자했다. 계몽사, 삼익악기, 상아제약, 바로크가구 등이 대표적.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연속으로 2~3배씩 수익이 났다. 투자수익이 불어나면서 투자금이 커지자 관리종목에 투자하는 ‘하이리스크(high risk)’가 부담이 됐다. 그래서 어느 정도 위험은 있지만 큰 기대수익을 노릴 수 있는 코스닥 시장에 관심을 기울였다.
닷컴버블 광풍이 불면서 그는 또 한 번 시세를 즐겼다. 그의 시드머니(Seed money)는 고작 ‘월급’에 불과한 수준이었지만 이렇게 해서 수년 만에 수십억원을 벌었다. “1주일에 자산이 두 배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5일 연속 상한가도 경험했다”고 귀띔했다.
이정윤 세무사 /이형석 기자 leehs@ |
수중에 돈이 많아졌지만 진로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전업투자로 갈 것인지, 제도권에 취업할 것인지 등 많은 생각이 들었다. 고민을 하다 2003년엔 캐나다로 떠난다. 2년 정도 영어 공부를 한 뒤 귀국했다. 캐나다에서도 물론 주식투자는 계속했다. “인터넷만 연결돼 있으면 시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주식투자를 할 수 있으니 전업투자는 정말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전업투자는 좋은 직업이었지만 진로에 대한 고민은 계속됐다. 그러다 세무사 자격증에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세무사 자격증 공부를 하는 동안엔 주식투자를 하지 않았다. “주식투자를 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은데, 공부만 하고 있으니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고 생각해 신림동 고시촌에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그렇게 세무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그는 몇 년간 세무사 일을 했지만 지금은 전업투자자로 살고 있다. 기회비용 차원이다. 세무사로 돈 버는 것보다 주식투자를 통해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연 30% 이상 수익률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포트폴리오는 대부분 주식이다. 부동산 전문대학원을 다녔지만 부동산 투자는 하지 않았다. 그는 “본인 투자 타입을 알아야 한다. 부동산 공부를 많이 했지만 내게 맞는 투자는 부동산보다는 주식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다. 그는 2007년 11월부터 2008년 11월까지 ‘지옥’의 1년을 보냈다. 세무사 자격증을 취득해 세무법인을 차리고 세무사로 일하면서 틈틈이 공부해 CFP(국제공인재무설계사) 시험에 합격했던 시기다.
자고 일어나면 주가가 빠지는 시기가 계속됐다. 주식시장에 대한 회의감이 들면서 시장을 아예 떠날 생각도 했다. 그는 “한두 종목 실패가 아닌 기간 내내 매매 전체가 실패였다. 종목 선정보다 시장 판단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배웠다”고 회고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의 경험이 큰 무기가 됐다. 그는 주식시장에선 무엇보다 ‘살아남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코스피 지수가 1000포인트를 하향 돌파하고 900선이 무너지자 700, 600까지 갈 수 있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하지만 그는 시장을 떠나지 않았다. 대신 ‘공포’를 사들였다. 2008년 11월부터 선물옵션의 파생상품으로 지수 상승에 베팅했다. 강한 반등이 시작된 2009년은 그가 금액 기준으로 가장 많은 돈을 번 해다. 물론 수익률 기준으로는 1999년이 더 높았다. 2009년에 이어 2010년에도 이런 상방 파생 포지션을 구축하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누렸다. 그는 “주식투자는 종목 선정을 해야 하는데 파생매매는 그런 노력 없이 포지션 관리만 하면 되니 너무 편했다. 놀면서도 돈을 버는 매력에 흠뻑 빠졌다”고 했다.
문제는 방향을 틀면서 생겼다. 2010년 말 코스피 지수가 2000에 가까워지자 그는 “2007년 전고점을 쉽게 못 뚫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바로 포지션을 하방으로 변경했다. 그런데 지수는 계속 올랐고, 그는 상당히 큰 손실을 봐야 했다. 그는 “지수에 대한 뷰(view), 특히 추세 전환에 대한 뷰는 쉽게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 이후 지수의 추세를 파악할 때는 돌다리도 두드려 가는 심정으로 주의 깊게 살펴보게 됐다”고 했다.
전천후 투자자인 그는 자신의 투자법을 ‘삼박자 투자법’이라고 정의한다. 가치분석(재무제표 분석), 가격분석(차트 분석) 그리고 정보분석(재료 분석)을 동시에 하는 균형 잡힌 분석법이다.
그는 젊은 시절 추세매매, 정보매매를 많이 했다. 지금은 장기투자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그는 “차트매매나 정보매매 부분은 젊은 친구들이 아무래도 더 잘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는 긴 호흡을 갖는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했다. 샘표식품 투자 역시 이런 차원이다.
음식료는 그가 장기투자 대상으로 가장 선호하는 업종이다. 그는 “완제품을 생산하고 브랜드 가치가 있으며 특정 시장에서 매출점유율 1위인 음식료기업 주가 차트를 보면 일시적인 부침은 있어도 결국 우상향하는 패턴을 보인다”고 강조했다.
샘표식품을 주목한 것은 수년 전부터다. 샘표는 국내 간장시장 매출 점유율에서 오랫동안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업체다. 다른 음식료 기업에 비해 주가수익배율(PER), 주가순자산배율(PBR)도 비교적 낮았다. ‘비인기 소외주’라는 판단이 섰다. 그는 ‘삼박자 투자법’에 따라 분석을 시작했다. 이익증가율이 좋았고, 높은 유보율 등 재무 안정성도 뛰어났다. 차트로 보면 장기이동평균선이 중장기적으로 우상향이었고, 지주사 전환을 위한 기업분할 재료도 있었다. 이 같은 삼박자 투자법에 따라 그는 샘표식품을 장기투자 종목으로 선정하고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그는 해외 주식에도 투자한다. 지난 2015년 12월부터는 중국 주식을 사기 시작했다. 매달 2000만원씩 거의 기계적으로 사들인다. 첫 달에는 200만원씩 10개 종목을 샀다. 그는 주로 오르는 종목을 더 사는 방식을 취한다. 이런 식으로 총 10억원까지 투자할 계획이다. 바이앤홀드(Buy&Hold) 전략이어서 아직까지 매도한 종목은 없다. 이른바 ‘불타기’, ‘추세매매’에 대한 실증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까진 수익률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보유 종목이 내릴 때 사는 ‘물타기’는 싫어한다. 그는 ‘물타기’에 대해 “심리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에 매매 평균단가를 낮춰서 본전 이상에서 탈출하고 싶은 패배자의 탈출 욕구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주식투자는 그에게 평생직장이다. 그는 “앞으로 무엇을 하든, 어떤 꿈을 꾸든 주식투자를 그만두진 않을 것이다. 죽는 날까지 영원히 주식투자자가 되는 것은 꿈을 넘어 나의 인생”이라고 전했다. 그는 주식투자에 있어서도 ‘성실’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성실한 사람이 1등은 못할 수 있어도 절대 꼴등을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한발 한발 나아갈 생각이다.”
▲프로필
1971년 출생
한양대 경영학과 졸업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석사
경희대 관광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전 세무법인 창조 대표세무사
현 밸런스투자아카데미 대표
이정윤 세무사 /이형석 기자 leehs@ |
[뉴스핌 Newspim] 김양섭 기자 (ssup825@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