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자 사장만 12명, 일일이 보고 물리적 어려워
'제왕적 오너' 사회 편견...실제 경영시스템 달라
[ 뉴스핌=황세준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항소심 준비기일(28일)이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왔다. 1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에 유죄를 선고하면서 승마 지원 관련해 몰랐을리 없다고 밝혔다. 여론은 이 부회장측의 '모르쇠 전략'이 통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재계와 삼성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는 "삼성의 경영시스템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지적이다. '제왕적 총수'라는 사회적 편견과 실제 삼성의 경영시스템 사이의 괴리가 1심 판결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뇌물 공여 등 혐의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이형석 기자 leehs@ |
삼성은 총수가 모든 것을 거머쥐고 조직을 일사분란하게 통솔하는 이미지로 비춰져 왔다. 지난 2014년 삼성 엔지니어 출신인 한 일본인이 블룸버그와 인터뷰하면서 "삼성은 종교이고 이건희 회장은 신이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삼성전자는 권오현(DS), 신종균(IM), 윤부근(CE) 등 3인 대표이사가 사업부문을 나눠 총괄하면서 자율경영을 하고 있다. 또 각 사업부문에 속한 사장만 12명이다. 총수가 각 사장들에게 하루 30분씩 1개씩의 보고만 받아도 6시간이 필요해 대외 활동에 차질이 빚어지는 구조다.
때문에 삼성의 총수는 사업간의 균형을 조절하고 글로벌 IT 업계와 교류하는 역할에 주력하고 회사의 자금집행 등 구체적인 것은 대부분 위임하는 경영 방식을 이미 오래전부터 유지하고 있다.
과거 이건희 회장이 한 화학계열사 CEO로부터 '흑자전환'에 대해 보고 받으면서 "사장이 지금 왜 그걸 나에게 보고하나? 당장의 실적은 당신들이 알아서 하는 거고. 사장이면 지금 회사의 주력 사업이 3년 뒤에도 유지될 수 있는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그런 것들을 보고하라"고 호통친 일화는 삼성 안팎으로 유명하다.
삼성전자는 최근 3억달러(한화 약 3400억원) 규모의 '오토모티브 혁신 펀드'를 삼성전략혁신센터(SSIC)를 통해 새롭게 조성했다. 이것은 손영권 SSIC 사장 선에서 결정이 이뤄졌다.
이 부회장은 전무시절 CCO(Chief Customer Officer)를 첫 보직으로 받았다. 경쟁자이자 협력관계인 글로벌 IT 기업들과의 스킨십이 주 임무였다. 그는 실제 주요 거래선인 애플과 AT&T 경영책임자들을 현지에서 직접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분야에서 애플과 1위 자리를 놓고 경쟁하지만 반도체 분야에서는 애플이 최대 고객사다. 스티브 잡스 사망시 이 부회장은 추도식에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 총수는 미국을 한바퀴 돌고 와 큰 그림을 얘기하면 그것으로 역할을 다 한것이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논의하고 실행하는 것은 각 사업 조직의 몫"이라며 "몇월 며칠 삼성의 아무개 사장이 얼마를 결제했다는 것은 총수뿐만 아니라 사업부문장도 잘 모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회사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전했다.
더욱이 이 부회장은 '실용주의' 경영 철학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경영진들의 중요한 보고를 받을 때도 스마트폰 문자 메시지를 통해 '그렇게 하세요'라고 짤막하게 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지성 전 삼성전자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은 1심 재판에서 "이재용 부회장에게 미전실의 의사결정과 과정에 대해 보고하거나 결재받은 일 없고 예의상 알려주는 경우는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경영연구소는 22일 보고서를 통해 대기업들의 경쟁력 저하요인으로 '느린 의사결정 속도'를 꼽았다. 느린 의사결정은 관행을 되풀이하는 관료주의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삼성은 이미 '마하경영'을 통해 체질과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해 왔다. 이 부회장은 이를 더 업그레이드 했다. 삼성은 올해 3월부터 스타트업 방식의 '컬쳐혁신'에 나섰다. 직원들 간에 직급 없이 '00님'이라고만 호칭하며 회의 시간은 1시간 이내, 회식과 야근 없이 정시 퇴근 등을 시행했다.
그러나 부정적 여론 속에 1심 유죄 선고를 받은 이재용 부회장은 218일째 구속수감생활 중이다. 2심 재판부가 '몰랐다'는 주장을 어떻게 판단할지 재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뉴스핌 Newspim] 황세준 기자 (hsj@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