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신용카드업법 제정부터 생체인식까지
[뉴스핌=김은빈 기자]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신용카드. 사라져가는 현금 대신 지갑 속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는 중입니다.
아마 한국인들의 삶은 저를 떼어놓고는 설명하기 힘들지 않나 싶습니다. 한국인들이 계산을 할 때 저를 사용하는 경우가 절반을 넘거든요. (한국은행 2015년말 기준) 게다가 신용카드를 갖고 있는 성인의 비율은 90%가 넘죠.
2017년인 올해는 저의 기반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신용카드업법’이 만들어진 지 30년이 됩니다. 저도 서른살이 되었다고 볼 수 있죠.
<사진=뉴시스> |
◆ 태어난 곳은? 백화점!
한국에서 제가 처음 태어난 곳은 ‘백화점’입니다.
1969년 신세계 백화점에서 직원들에게 신용거래가 가능한 카드를 발급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최초의 신용카드로 꼽히는 ‘신세계 백화점 카드’죠. 하지만 이 카드는 신세계 백화점에서만 사용가능했습니다. 지금 같은 신용카드와는 달랐죠.
1987년 이전에도 신용카드가 있었는데, 왜 ‘서른 살’이냐고요? 카드가 아무리 편리해도, 카드를 사용하는데 제약이 따른다면 카드가 활성화되기는 어렵겠죠? 신용카드업법은 그 몇가지 제약을 없앤 법이기도 합니다.
카드를 사용한다고 해서 가격을 다르게 한다거나(가격차별금지), 카드사용을 거절하지 못하도록(카드거절금지) 하는 내용이 대표적이죠.
결국 신용카드업법 제정을 기점으로 지금같은 ‘전업계 카드사’(카드영업을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LG가 코리안 익스프레스라는 회사를 인수(1987)했고, 삼성이 위너스 카드를 인수(1988)하면서 카드사업에 뛰어들었죠.
그래서 여신금융협회도 이 시기를 “본격적인 카드산업이 개막”한 시기라고 말합니다.
"모두 부자되세요"라는 멘트로 인기가 높았던 2002년 BC카드 CF<사진=CF화면 캡처> |
◆ 내수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팔을 걷어붙이다
산업의 싹을 틔운 저는 약 10년 뒤, 본격적인 성장기를 맞이합니다. 외환위기가 몰아치고 난 뒤, 침체된 내수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카드 사용을 권장한 게 계기였죠.
특히 ‘신용카드 소득공제’가 1999년 세법개정을 통해 시작되면서 사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998년 2억 8153만 건이던 신용카드 결제건수는 세법이 개정된 1999년에 3억7665만건으로 늘어나더니, 2002년에는 22억3436만건으로 폭증합니다. 3년 새 6배로.
이외에도 신용카드 현금대출의 월 이용한도를 폐지, 매달 카드 영수증을 추첨해 복권당첨금을 주는 ‘신용카드 영수증 복권 제도’ 등 활성화 정책이 등장했습니다. 이에 힘입어 2002년에는 신용카드 사용액이 619조원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무리한 성장 드라이브가 있으면 탈도 나는 법. '막발'이란 용어 아시나요? 소득이 없는 대학생한테도, 길거리에서 선물까지 주면서 신용카드를 '마구 발급'한 겁니다. 소득이 없는데 외상으로 마구 쓰고, 카드 여러개를 만들어 돌려막기를 했죠. 빚을 내 빚을 갚은 행태 ㅜㅜ.
2003년 기준 카드사들의 평균 연체채권비율은 무려 14.55%였습니다. 2016년말 평균 연체채권비율이 1.03%였다는 걸 생각해보면 상당한 비율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카드사들이 도미노식 부실을 일으킨 '카드사태'로 이어집니다.
결국 카드사의 부실이 도마위에 올랐고, 당국도 칼을 빼들었습니다. 카드사들의 길거리 영업이나 방문 모집이 금지됐고, 당국의 건전성 감독이 강화됐어요. 카드업계의 구조조정도 시작됐죠. 2003년부터 2008년의 기간동안 8개였던 전업카드사가 5곳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 모바일카드·바이오페이…‘카드없는 사회’로 성큼
아픔만큼 성숙해진다고 하죠.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2009년부터는 카드사들의 실적도 점차 개선됐습니다. 카드 전업사도 5곳에서 현재 8곳으로 확대가 됐습니다.
제도적으로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2012년엔 가맹점 수수료 체계를 개편했습니다. ‘업종별’로 매기던 수수료를 ‘가맹점별’로 매기게 됐죠. 또 대형가맹점이 카드사에게 부당하게 낮은 수수료를 요구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대신 영세가맹점(연매출 2억 이하)에 대해선 우대 수수료율을 적용하게 됐습니다.
2014년엔 신용카드 정보유출사태를 겪으면서 좀 더 소비자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카드발급 시 수집하는 회원들의 개인정보를 최소화했고, 보관과 파기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마련했어요.
또 ‘빅데이터’를 공부해, 좀 더 고객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노력도 하고있네요.
삼성페이 결제 <사진=뉴시스> |
앞으로는 제 외관도 많이 바뀌게 될 것 같습니다. 저는 8.5cm X 5.4cm의 플라스틱에서 벗어나게 될 것 같거든요. 아니, 이미 벗어났죠.
‘삼성페이’같은 간편 결제 기술이 등장하면서 저를 들고다니는 대신 핸드폰으로 결제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또 모바일 전용 카드들도 나오고 있고요. 이런 모바일카드는 발급에 드는 비용이 적다 보니, 연회비가 다른 카드보다 낮습니다.
요즘엔 정맥이나 홍채인식같은 기술들이 등장하던데, 미래에는 사람들 몸에 살아 숨쉬는 존재가 될 지도 모르겠어요.
[뉴스핌Newspim] 김은빈 기자 (kebj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