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한우물 경영으로 강소기업 일궈.."즐겁고 기쁜 회사 만들고파"
[뉴스핌=한태희 기자] "국내 시장에서 레이저 가공기 장비를 가장 많이 회사가 됐습니다. 그런데 1997년 외환위기가 터졌습니다. 국내 시장은 얼어붙었죠. 수출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외환위기 계기로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었었습니다. 27년간 한 우물만 팠더니 길이 보입니다."
계명재 HK 대표의 말이다. HK는 레이저 가공기를 만드는 중소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618억원으로 매출의 약 40%를 해외에서 거뒀다.
계명재 대표는 1990년 HK(옛 한광)를 창업했다. 뉴욕시립대에서 경영학 MBA를 다닌 계 대표는 레이저 가공기 성장성을 높게 평가했다. 철강이 '산업의 쌀'이라면 레이저 가공기는 쌀을 정교하게 다듬는 장비다. HK는 삼성이나 금성(현 LG) 등 쟁쟁한 기업과 이 분야에서 경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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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재 HK 대표 <사진=HK> |
레이저 가공기 국내 1위인 HK가 처음부터 평탄한 길을 걸은 건 아니었다. 다른 중소기업과 마찬가지로 자금 문제로 고생했다. 중소기업에 선뜻 돈을 빌려준다는 은행이 드물었다.
계 대표는 "지금은 사업성이 있으면 투자를 받거나 기술보증으로 돈을 빌릴 수가 있지만 그때는 그러지 못했다"라며 "처음에는 일하는 시간의 3분의 1을 은행에서 보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는 법. 낙후된 국내 기업 대출 환경은 역으로 계 대표가 성공해야만 하는 이유를 제공했다. 당시 담보를 통해서 돈을 빌리고 있었던 것. HK가 도산하면 담보를 제공했던 가족과 지인 등도 함께 위험에 빠지는 상황이었다.
계 대표는 "창업 초기에는 사업을 접을 생각도 했지만 지인들이 담보로 엮여있기 때문에 털고 나올 수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계 대표는 외환위기 또한 기회로 삼았다. 당시 HK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은 장비를 외국 기업에 임대하는 형식으로 팔았다. 제품에 하자가 생기면 제조사가 전부 떠안았다. 해외에서 독일을 포함한 유럽 제조사와 경쟁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문제가 있는 장비를 받으면 이를 보수해서 팔았습니다. 마진이 없더라도 이걸 처리하지 못하면 회사는 부도가 날 상황이니까요. 미국 전역을 돌며 팔았는데 이 과정에서 글로벌 스탠다드에 받는 제품을 만들 수가 있었습니다." 계 대표의 설명이다. 당시 환율이 계속 오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수출 판매금액으로 제품 보수 비용을 메꿀 수 있었다.
HK는 올해 해외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체 매출에서 해외 비중을 지금보다 약 10%포인트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계 대표는 "해외시장 점유율 확대만이 회사가 성장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어 "즐겁고 기쁨을 주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며 "그런 회사를 만들면 나 자신도 행복할 것 같다"고 했다.
[뉴스핌 Newspim] 한태희 기자 (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