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경기부양' vs 한은 '물가안정' 목표 충돌
"문재인 정부, 재정정책 강조해 갈등여지 적을 수도"
[뉴스핌=김은빈 기자] 밀월보다는 갈등. 새 정부가 출범할 때면 정부와 한국은행 사이에 여지없이 잡음이 나왔다. 집권 초기 경기부양을 원하는 정부와 물가안정이 최우선인 한은의 입장이 부딪쳤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 초창기 시절을 짚어보면 한은과 불협화음을 일으킨 경우가 많았다. 현 이주열 총재 전임이었던 김중수 전 총재(2010~2014년)가 대표적. MB정권(2008~2013년) 하에서 임기를 시작한 김 총재는 2013년 박근혜정부 출범 직후 갈등을 빚었다.
그 일례가 서별관회의 불참이었다. 2013년 3월, 김 전 총재는 박근혜정부들어 처음 열렸던 긴급경제점검회의에 돌연 불참을 선언했다. MB정부 시절엔 비공식 서별관회의에도 참석했던 김 전 총재여서 논란이 일었다.
김 전 총재와 박근혜정부의 갈등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뒤이은 4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한은이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 당시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노골적으로 기준금리 인하를 요구해 동결 결정은 '대립각'을 세우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김 전 총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기자회견을 통해 “외부에서 금리인하를 요구하는 것은 금리 결정에 중요한 변수가 되지 못한다”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김 전 총재의 전임이던 이성태 전 총재(2006~2010년)도 MB정부 초기 정권과 대립각을 세웠다. 2008년 금융위기가 오면서 기획재정부에서 금리 인하를 압박했지만, 이 전 총재는 금리 동결기조를 유지하거나, 미국이나 유럽 대비 소폭 인하하는 것에 그쳤다.
2008년 8월에는 5%에서 5.25%로 되려 금리를 인상하기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 “이 총재는 한국은행이 물가의 최후 보루라고 생각한 것 같다”고 회고록에 기술한 바 있다.
새 정부와 한은의 갈등 배경은 정부와 한은의 '입장 차이'다. 집권 초기 경기부양을 원하는 정부와 물가안정을 지키려는 한은의 입장이 상충되는 것.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시장 관계자는 “임기 중 금리인상을 환영할 정부는 많지 않을 것”이라며 “정권출범 초기 갈등을 빚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한은 독립성 훼손 논란이 일 정도로 정부가 노골적인 인하 압박을 넣는 경우도 있었다. 2013년 이완구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한은 총재를 겨냥해 “청개구리의 심리를 갖거나, 호주 늘보의 행태를 보이는 일이 없도록 고심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기에 한은 총재 임명권을 대통령이 쥐고 있는 만큼, 새 정권 입장에선 ‘옛정권의 사람’으로 한은 총재가 비춰진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박승 전 총재(2002~2006년)를 비롯해 이성태, 김중수 전 총재 모두 정권이 바뀐 뒤 ‘옛정권의 사람’이라는 이유로 경질설이 돌았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정부에선 이런 상황과 다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문재인 정부가 통화정책보다는 재정정책에 방점을 두고 있기 때문.
실제로 선거기간 동안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캠프의 주요 경제정책 담당 인사들은 재정정책을 강조하는 발언을 계속했다. 문 대통령의 경제자문이었던 박승 전 한은 총재는 "현 수준에서 추가 금리인하는 회의적"이라며 "경제정책의 핵심은 가계소득 증대와 복지증대"라고 발언했다. 새 정부의 경제정책이 재정정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걸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서향미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과의 금리 차 등을 생각해보면 통화정책은 한계에 와있다”며 “정부가 재정확장을 얘기한다는 점에서 한은의 부담이 줄어드는 셈”이라고 말했다.
통화정책에 대한 압력이 줄어들면 갈등을 빚을 여지도 적어지게 된다. 다른 금융시장 관계자도 “이주열 총재는 전부터 재정정책 역할을 강조했었다"며 "이 총재 입장에선 문 대통령 당선이 반갑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뉴스핌Newspim] 김은빈 기자 (kebj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