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나도 돈 버는데 가사노동 남편의 4배”
부부간 ‘시간갈등’ 심화, 사회문제 비화 가능성
‘일·가정 양립’ 영원한 숙제…아직도 먼 韓사회
[뉴스핌=김기락 기자] 하우스푸어, 렌트푸어, 카푸어 그리고 타임푸어(Time Poor). 푸어는 빈곤함을 뜻한다. 일하느나 공부하느나 집안일 하느라 다른 것을 해볼 여유가 없는 사람들, 시간빈곤층. 우리네 엄마, 아빠 그리고 아이들이 아닐까.
# 어둑어둑한 밤. 10시간 넘게 일하고 집에 들어가니 식탁 위에 널브러진 반찬 뚜껑들, 싱크대엔 설거지거리가 넘쳐난다. ‘오늘도 쉬기는 글렀구나’란 생각에 잠시 소파에 쓰러진다.
지난해 육아휴직 후, 최근 복직한 직장인 K씨는 가사노동에 두손두발 다 들었다. “설거지, 청소 많이 힘드냐구요? 하루 이틀 안하면 파리, 벌레가 난리도 아니에요. 안할 수가 없어요. 미세먼지도 부쩍 많아지고.”
밤 8시께 집에 도착한 K씨는 청소부터 한다. 복직 후, 회사에 적응하는 동안 청소를 며칠 미뤘더니 위생적으로 문제가 생겼다.
유치원에 다니는 작은 애가 온몸이 가렵다고 긁어대 진료를 봤는데,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다. “워킹맘이죠?” 의사의 물음에 순간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이에 대한 죄책감에 눈두덩이가 뜨거워졌다.
워킹맘들이 부족한 시간에 슬퍼하고 있다. 남편과 똑같이 일하는데도 집안일을 안할 수 없어서다. 집안일이 여성들만의 몫이 된지 오래다.
통계청의 ‘한국인의 생활시간 변화상’ 조사 결과에 따르면 워킹맘의 가사노동 시간은 하루 3시간8분이다. 남성의 45분에 비하면 4배 이상 집안일을 하는 것이다.
2014년 서울의 가사노동시간(돌봄과 기계적 가사노동 시간의 합)을 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4.4배 더 많은 시간을 가정에 할애하고 있다.
여성에게 하루 중 언제 가장 바쁘냐고 물었다. 25.6%가 오전 6~8시, 37.4%가 오후 6~10시라고 했다. 직업 갖고 있는 남녀에게 왜 시간이 부족하냐고 질문했다. 남성 63.7%는 직업관련이라고 했고, 여성 75.6%는 가사노동 때문이라고 했다. 워킹맘과 남편의 ‘시간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간갈등’을 해소하려면 개인이 아닌 사회 모두가 나서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워킹맘이 힘들 것이란 생각만으론 앞으로도 달라질 게 없다는 의미다.
한 사회 운동가는 “독일 등 유럽의 가족 정책은 가족을 위한 지역차원의 연대를 중시하고 있다”며 “시간효율적 이동성, 가족친화적 노동환경과 교육, 유연한 서비스체계의 지원, 서비스 지향의 행정체계 등이 시간갈등 해소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실제 독일에서 시행되는 육아 및 교육 인프라 분야의 협력 사례는 각국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학교부터 각 기업,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유연한 개방시간, 부양가족에 대한 돌봄, 신뢰할 수 있는 돌봄 및 교육 등에 관심을 갖고 협력한다는 게 골자다.
다행스러운 점은 국내 기업에서도 워킹맘의 유연한 근무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홍보대행사 함샤우트 공인희 부장은 출퇴근 시간을 조정해 육아와 업무 효율성을 높였다.
공 부장은 “원래 아침 9시 출근해 저녁 6시 퇴근이었는데, 1시간씩 미뤄 10시 출근해서 7시 퇴근한다”며 “아침에 아이들 밥 먹이고, 어린이집에 보낸 후 출근한다. 모바일 시대인 만큼, 출근하는 시간동안 이메일이나 업무는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회사 직원들이 워킹맘을 이해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아이 안 낳을 여자가 얼마나 되겠냐. 모든 여성이 미래의 엄마 아니겠냐”면서 “무엇보다 경영진과 직원들의 높은 신뢰가 있어야만 근무 시간 등 제도의 다양한 변화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
[뉴스핌 Newspim] 김기락 기자 (people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