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지은 기자]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천재 시인, 광인이자 모던보이였던 이상의 고뇌와 처절함을 제대로 담아냈다. 그리고 짜릿한 전율까지.
뮤지컬 ‘스모크’는 시인 이상의 작품 ‘오감도 제 15호’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됐다. 이 작품은 모든 걸 포기하고 세상을 떠나려는 초(김경수‧김재범‧박은석)와 순수하고 바다를 꿈꾸는 해(정원영‧고은성‧윤소호), 그들에게 납치된 여인 홍(유주혜‧정연‧김여진)까지. 세 사람이 함께 머무르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뤘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스모크’는 마치 출구가 막힌 답답한 세상에서 살아야 했던 이상의 가슴 속에 남은 열정과 예술혼 그리고 희망이 불꽃처럼 타 들어가 ‘연기’만 남은 상태를 의미한다.
이상의 시를 접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작품이 다소 난해하게 다가올 수 있다. 첫 시작부터 강렬하며, 초와 홍, 그리고 해의 미스터리한 대사들이 빠른 속도로 오간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을 삐뚤게 바라보는 초, 마냥 순수하기만한 해, 이 두 사람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홍의 존재는 관객들에게 궁금증 유발한다.
고은성은 바다를 원하는 어린 아이의 마음을 유연하게 표현했다. 쭈뼛거리는 몸짓으로, 해맑은 표정으로 대변했다. 김재범은 세상을 향한, 자신에게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절제된 감정 표출한다. 김여진은 두 남자 사이에서 섬세한 표현과 제스처로 몰입감을 높인다.
하지만 이 세 사람의 감정의 변화가 커질수록, 관객들은 혼란에 빠진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스모크’의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초와 홍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에는 짜릿한 전율이 일면서 모든 수수께끼가 풀린다.
특히 고은성은 이상으로 완벽히 분했다. ‘바다’를 꿈꿨던 순수했던 모습과 인물들의 정체가 밝혀진 후의 연기는 그가 얼마나 캐릭터에 몰두해 연습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상의 시가 대사와 뮤지컬 넘버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는 것이다. 무대 연출 또한 허투루 한 것이 없다. 1930년대 경성의 분위기를 연출한 무대는 암울한 시대상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 이상의 다양한 작품이 무대에 녹아 장관을 이룬다.
더욱이 모든 사람들이 등을 돌렸음에도 불구하고 이상이 글을 계속 썼던 이유와 ‘오감도’를 통해 그가 왜 문법을 파괴했는지, 왜 띄어쓰기를 무시했는지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단, 뮤지컬을 보기 전 이상의 작품을 한 번쯤은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렇다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오는 울림이 더 클 것이다. 그리고 무대에서 날아 다니는 한 마리 나비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 포인트이다.
한편 ‘스모크’는 오는 5월 28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만 13세 이상 관람가.
[뉴스핌 Newspim] 이지은 기자 (alice09@newspim.com)·사진=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