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안보 분야 현안 논의 없이 '원칙 확인'
美 예봉 피하고 돌발사태 없이 무난한 마무리
향후 실무 협상에서 미국의 청구서 본격화될 듯
대미 전략 성공적...트럼프, 한국에 긍정적 태도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트럼프 시대 한·미 관계 재설정'을 위한 첫 번째 관문이었던 25일(미국 시간) 한·미 정상회담은 큰 이견이 돌출되지 않은 채 무난하게 마무리됐다. 당초 우려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적 발언이나 경제·안보 분야에서의 거친 압박도 없었다. 양측이 민감한 문제에 대한 세부적 논의를 피하고 '높은 곳에 올라가' 한·미 관계의 미래를 조망하는 접근법을 취한 결과다.
이번 회담을 앞두고 외교부·산업부 장관과 통상교섭본부장이 일정을 앞당겨 미국으로 달려가 의제 조율에 매달리고 대통령실 3실장이 모두 회담에 투입되는 등 총력전을 벌일 때만 해도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실제 회담에서는 우려했던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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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로이터=뉴스핌]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정상회담을 시작하면서 악수하고 있다. 2025.08.26 |
대통령실도 회담 결과에 안도하는 분위기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양국 정상이 공감대를 확인하고 이의 없이 끝났다는 것은 분명하다"며 "감히 성공적인 정상회담이었다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간 이견이 예상되는 사안에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통상·안보 분야에서의 중요한 이슈들은 자세히 다뤄지지 않았다. 이번 회담에서 확정적인 결론을 내기보다 큰 원칙을 확인하는 데 주력하고자 했던 한국의 입장에서는 성공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이번 회담을 성공으로 평가하는 것은 미국의 '예봉'을 피했다는 의미이지 한·미 간 입장 차이가 해소됐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달 한·미 관세협상 타결 후속조치로 3천500억 달러 규모 투자 패키지를 구성하는 문제와 농축산물 개방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한·미 간 현안으로 남아 있다. 또 안보 분야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확대와 중국 견제를 위한 한국의 역할 확대 등도 이번 회담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음으로써 향후 실무 차원에서 치열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정부의 외교 소식통은 "이번 회담으로 미국이 한국에 요구하는 내용이 변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한·미 관계를 위한 이른바 '미국의 청구서'는 언젠가 날아오게 될 것"이라며 "한국으로서는 첫단추를 무난히 끼우고 대응할 시간을 벌었다는 점에서 한숨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다.
앞으로 한·미는 실무 차원에서 통상 문제를 포함해 '한·미 동맹 현대화', 원자력 협정 개정 등의 난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전망이다. 미국이 요구하는 내용 중에는 한국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한·미 관계의 '챌린징 스테이지'는 사실상 정상회담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숙제를 안하고 파티에 먼저 다녀온 것과 같은 결과가 되긴 했지만 이번 회담에서 한국 측이 거둔 성과는 적지 않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관계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후한 평가'를 남긴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이 대통령에게 "스마트하다"고 칭찬하고 "당신은 미국으로부터 완전한 지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태도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다른 나라 정상과의 회담에서 보였던 거친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다.
또한 이번 회담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관계에서 무엇을 중시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는 것은 향후 대미 외교의 방향과 전략을 설정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의 조선 분야 협력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한국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또한 국방비 증액 등의 안보적 요구는 미국산 무기 구매를 늘리기 위한 목적이 크다는 점도 확인했다.
한국이 '마스가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미국의 국방비 증액 요구에 국방력 강화의 계기로 삼겠다는 방향으로 대응한 것이 판을 정확하게 읽은 정수였다는 점이 이번 회담을 통해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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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오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백악관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워싱턴DC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초청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뉴스핌] |
북한 문제에 대해서도 의미있는 결과를 얻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점을 확인했고, 한국이 북·미 대화를 적극 지지하고 조력하는 역할을 기꺼이 하겠다는 뜻을 전달함에 따라 향후 북·미 대화가 재개될 경우 한국의 입장을 반영시킬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한국이 북한 문제에 주도적 역할을 하지 않더라도 북·미 협상이 한국의 국익에 반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유도하겠다는 '실용주의적 접근법'이 효과를 본 셈이다.
향후 눈여겨볼 대목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중국의 반응이다. 한·미 동맹이 한국 외교의 근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한·일 협력을 통한 한·미·일 협력 강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에 대해 중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알 수 없다. 특히 이 대통령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간담회에서 "이제는 더 이상 '안미경중'(安美經中·미국과는 안보 협력, 중국과는 경제 협력을 병행) 노선을 취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언급한 것은 중국의 입장에서는 유쾌한 일이 아니다.
한·중 관계에 정통한 소식통은 "이번 정상회담은 한국의 대외전략의 근간이 한·미 동맹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이재명 정부가 경제와 안보 모두 미국과의 관계를 더 중시하고 있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 것"이라며 "중국은 이같은 상황을 어떻게 다뤄 나갈 것인지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opent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