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 높아지며 후폭풍 우려...일단 집단경영 나서며 비상 대비
[뉴스핌=이강혁 기자] "불확실성만 더 높아진거고요". "오너의 결단이 필요한 부분은 전부 올스톱된거죠". "뭘 어떻게 해야하느냐라는 논의조차 못하는 상황입니다". (복수의 삼성 관계자)
삼성그룹이 사상 초유의 총수 구속 사태로 멈춰섰다. 79년 삼성 역사상 처음 겪는 총수부재에 삼성 임직원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법원이 17일 새벽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이후 삼성 분위기는 그야말로 '패닉' 상태다. 삼성이 얼마나 이어질지 모를 총수의 경영공백 사태를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된다. 재계는 충격 속에서 경제에 미칠 부담을 우려하고 있다.
▲불확실성 높아지며 정상적 비즈니스 어려워져..'경영시계 제로'
삼성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경영환경 속에서 총수의 경영공백이 현실화되자, 미래전략실을 비롯한 계열사 전반의 의사결정 업무가 마비됐다. 특검정국으로 겨우 돌아가던 경영시계마저 그대로 멈춰선 셈이다. 플랜B는 생각하지 않았다던 삼성 수뇌부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모습이 역력하다.
삼성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임직원들은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발부 이후 서초사옥에서 비상대책을 논의했다. 그러나 어떻게 비상경영시스템을 가동할지 등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구속영장이 재청구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6일 오전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으로 출석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김학선 기자 yooksa@ |
당장 경영 불확실성에 따른 후폭풍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우선 그룹의 사업과 지배구조 개편작업이 중단될 가능성이 커졌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의 키포인트가 되면서 앞으로도 적잖은 잡음이 불가피하다. 다른 사업·지배구조 개편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이런 부분은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연장선에서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지주회사 전환은 상당기간 미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아직 검토 차원에서 진전된 방안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경영투명성 확보와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한 지주회사 전환 문제는 올해 상반기 가닥이 잡힐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미뤄졌던 인사도 상당기간 기약하기 어렵다. 범삼성가인 CJ그룹도 이재현 회장의 구속과 장기간의 법정공방에 따라 수년간 인사적체가 심각한 상황이었다. 삼성 역시 정상적인 경영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실행하는데 차질을 빚고 있다. 올해 경영계획은 사실상 제대로 진행되기 힘들다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정상적인 인사가 불가하다는 것은 인재경영이 핵심인 삼성의 경영시스템상 신규채용이나 인재영입 전략 전반에 여파를 미친다. 올해 채용이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미래를 위한 신수종 사업이나 인수합병, 투자 등 공격경영 전반은 시계제로 상태에 빠졌다. 경영환경상 현상유지조차 어렵다는 인식이 큰 만큼, 보수적인 경영전략 선회는 당연한 수순이기 때문이다.
신성장뿐만 아니라 '타이밍의 업'이라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사업에서도 자칫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삼성의 한 관계자는 "정상적인 비즈니스가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삼성전자 등기이사인 이 부회장의 구속으로 글로벌 사업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것이란 관측도 있다. 단적으로 미국의 해외부패방지법(FCPA) 대상 기업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각종 사업은 물론 수십년간 쌓아온 삼성 브랜드의 가치 하락을 우려하는 시각이 나온다.
▲집단경영 체제로 비상상황 대비...재계, 경제 여파 크게 우려
삼성이 이토록 충격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컨트롤타워가 흔들리는 상황을 이전에는 전혀 경험하지 못한 점도 한 몫한다. 삼성은 고(故) 이병철 선대 회장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여러가지 수사를 받았지만 불구속 수사로 경영상 중심을 잃은 적은 없다.
2008년 삼성특검의 여파로 이건희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적도 있지만, 이도 오너로서의 글로벌 거래선 미팅이나 중요 의사 결단은 가능했다. 이 부회장의 부재를 전혀 예상치 않았던 삼성으로서는 학습효과로 비상경영의 시물레이션을 제대로 돌려볼 수 없었던 셈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런 총수부재 상황이 얼마나 이어질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법정에서의 다툼은 얼마나 이어질지 전혀 예측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삼성 주변에서는 당장은 미래전략실과 계열사 사장단의 집단경영 체제로 비상상황을 대비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중심으로 미래전략실이 기존 컨트롤타워 기능을 수행하면서, 각 계열사 사장들이 협의체를 구성해 중요의사결정에 나서는 방식이 거론된다. 각 계열사의 전문경영인 독립경영 체제가 상당히 자리잡은 삼성의 입장에서 사업차질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는 삼성특검 영향으로 이건희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며 운영했던 방식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이 역시 오너의 결단이 필요한 부분에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어 삼성 수뇌부의 고민은 상당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총수 역할론이 거론되나, 현재로서는 예단하기 어렵다. 삼성 관계자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없는 그야말로 멘붕 상태"라며 말을 아꼈다.
한편, 재계는 한국 경제에 상당한 후폭풍이 몰아칠 것이라는 우려감에 휩싸였다. 당장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53개 기업에 대한 수사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삼성이 차지하는 경제적 위상으로 불확실성이 더 높아졌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경영계는 충격과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며 "국내를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인 삼성의 경영공백으로 인한 불확실성 증대와 국제신인도 하락은 국내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구속이 당장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삼성 경영이 원활하지 못하면 그 협력사, 나아가 경제 전반에도 분명 파장이 온다"라며 "기업하기 좋은 분위기냐 아니냐는 문제에서 보자면, 이 부회장 구속은 경영계에 더 심각한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 재계팀장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