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은 기업활동 지원 목적...지금은 정치적 목적에 동원"
[뉴스핌=최유리 기자] "외국에서 사례를 찾기 힘든 희귀한 법안을 채택한다면 웃음거리가 될 일이다." "문제점이 많아 이미 폐기된 상법을 다시 논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40년 이상 상법·기업법을 연구한 학계 전문가들의 목소리에는 통탄스러움이 묻어났다. 국내 기업 경영권을 흔들 수 있는 상법개정안 도입을 둘러싼 논쟁에서 정작 주인공이 돼야 할 '기업'과 '경제'에 대한 고민이 빠져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15일 '상법개정안의 쟁점과 문제점: 전 상법학회장들에게 듣는다'를 주제로 긴급좌담회를 개최했다. 긴급좌담회에는 상법·기업법학회장을 역임한 학계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상법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감사위원 분리 선임 및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집중투표제 의무화 ▲근로자대표 등 추천자 사외이사 의무선임 ▲다중대표소송 도입 ▲전자투표제 의무화 ▲자사주 처분규제 부활 등이다.
상법개정안이 도입될 경우 국내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 수단을 제한해 해외 투기자본의 놀이터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깊다. 이 경우 기업은 경영권 지키기에 집중할 수 밖에 없어 여유 자금이 생겨도 일자리 창출이나 투자 등을 진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기업 경영에 막대한 영향이 예상되는 법안이지만 사회적 이념이나 정치적 목적으로 동원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불거진 기업 옥죄기 분위기를 타고 상법개정안이 상정됐기에 기업 성장에 대한 고민은 실종됐다는 얘기다.
이날 토론회에서 김선정 동국대 법과대학 교수(전 상사판례학회 회장)는 "상법이 기업 발전 관점이 아니라 사회적 빈부격차 해소, 경제민주화, 재벌 해체같은 사회적 이념을 위해 동원되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라며 "사회적 이념은 그에 걸맞는 법률을 통해 추구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최완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전 상사법학회 회장) 교수도 "지금 국회에서 논의되는 상법개정안은 다분히 정치적 색채를 띄고 있다"면서 "정치권은 경제가 최악이라고 걱정하면서도 기업을 뛰게 만들기는 커녕 반기업 정서에 편승해 발목 잡는 데 몰두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때문에 상법개정안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론에 머무르고 있다. 기업 오너의 전횡을 견제하고 소수주주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명분 만큼은 그럴 듯 하지만 현실성을 따져보면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상사법학회 회장)는 "법은 실효성이 더 중요한데 전례를 찾기 힘들거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법들만 잔뜩 모아 놓은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최완진 교수도 "상법은 그야말로 살아움직이는 법이기 때문에 이론과 현실이 괴리돼서는 안 된다"면서 "과거에는 어떻게 하면 기업의 활동을 원활하게 이끌 수 있느냐에 주안점을 두고 상법을 논의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토로했다.
혼란스러운 시국을 타고 상법 연구자들 만큼이나 경제계의 주름이 깊다. 걸핏하면 반복되는 기업 때리기와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상법 개정에 대한 논쟁을 재연하는 것에 대한 피로감도 엿보인다. 경제 살리기가 고민이라면 상법의 주인공인 기업을 살리기 위한 건설적인 논쟁이 필요한 때다.
[뉴스핌 Newspim] 최유리 기자 (yrcho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