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 대한 규제 일변도 보다는 혁신활동 유도가 논의돼야
[뉴스핌 = 이강혁 기자·최유리 기자] 지난해 전 세계가 페이스북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저커버그에 열광했다. 약 52조원 규모의 지분가치를 기부한다고 선언해서다. 2015년 기준 우리 정부 예산의 7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2004년 학내 서비스로 시작해 시가총액 400조원이 넘는 IT 공룡으로 성장시킨 그의 이력만큼 눈에 띄는 행보였다.
대기업을 '재벌'이라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국내의 반응은 부러움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특히 한국에선 왜 저커버그같은 기업가가 나오지 않느냐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컸다. 기업 성장과 사회 환원을 동시에 추구한 저커버그와 달리, 기업가를 탐욕스럽고 개혁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국내 분위기와는 대조적이었기 때문이다.
▲"반기업 정서에서 저커버그 나오기 어렵다"...대기업에 대한 인식 전환 필요
"어느 지표를 보더라도 한국의 경제민주화는 실패했다. 성장, 투자, 분배가 다 나빠졌다. 주식시장 위주 모델로 구조조정하면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국회에 제출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은 기업의 투자 및 자원배분에 있어서 그렇지 않아도 강해져 있는 금융투자자자들의 힘을 더 강화시키는 것들이기 때문에 경제양극화를 오히려 더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신장섭 싱가폴국립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그의 저서 '경제민주화…일그러진 시대의 화두'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다른 많은 전문가들도 비슷한 의견을 제시한다. 한국에서 저커버그같은 기업인이 나오려면 규제 일변도보다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정책으로 혁신활동을 유도해야 한다는 견해다.
전문가들이 야당 등 정치권의 상법 개정안 논의를 그 프레임부터 바꿔야 한다고 비판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재벌개혁을 경영권 규제로만 보지말고 현재의 주주자본주의부터 건설적인 방향에서 고민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단적으로 경영권 방어보다는 기업 활동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 과제로 꼽힌다. 차등의결권은 그 대안 중 하나다. 저커버그가 회사 지분 99%를 기부하고도 안정적인 경영권을 유지하며 의사결정을 주도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차등의결권은 일부 주식에 특별히 많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경영진이나 최대주주, 주식을 장기적으로 보유한 사람에게 보유 지분율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주는 방식이다. 1주당 1의결권을 주는 국내와는 다르다.
차등의결권이 경영권 방어에 대한 불필요한 소모를 해소하면 기업 입장에선 장기적인 성장 로드맵을 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경영권 방어에 들어가는 불필요한 비용을 낮추는 대신 장기 전략에 기반한 투자나 고용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경영권이 안정되면 상호출자나 순환출자 해소에도 긍정적인 동기를 부여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모든 국민이 1표를 행사하는 민주주의 원칙을 기업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라라도 단기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일반 주주들과 장기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은 달라야 한다"고 했다.
이미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등 경제협력기구(OCED) 30개국 중 20여개국은 차등의결권제를 도입했다.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한 IT기업 구글, 페이스북, 알리바바 등이 대표적이다. 구글은 공동차업자들이 보유한 주식이 일반주주들의 주식과 비교해 10배의 의결권을 가진다. 페이스북 CEO인 저커버그 역시 15% 가량의 지분으로 53%가 갖는 의결권을 확보했다.
실제로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한 기업들은 장기적인 투자나 사회 환원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단적으로 구글은 연구조직인 자회사 '구글 X'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으며 차기 성장 동력원의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주력 사업인 검색엔진과 동떨어진 무인차, 드론 등에서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단기적인 실적을 추구하는 주주 입장에선 이런 실험이 낭비로 보일 수 있으나, 경영의 관점에선 정기적이고 선제적인 투자의 좋은 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주총에서 이사회 과반을 넘겨야 인수합병(M&A)을 진행할 수 있는 국내와 달리 차등의결권 제도에선 전화 한 통으로 대규모 투자가 가능하다"며 "미국에서 혁신적인 IT 기업이 많이 나오는 것은 안정적인 경영권을 기반으로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규제로 기업 이끈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인센티브 중심으로 전환
재벌개혁이 시대적 요구라면, 상법 개정안 논의를 규제 중심에서 기업의 과감한 투자와 혁신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4차산업혁명이 미래 먹거리의 핵심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기업이 얼마나 발빠르게 대처하느냐는 우리의 미래와도 맞닿아 있다.
이와 관련, 박종훈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규제를 강화해서 기업을 이끌어 가야겠다는 발상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서 "기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나오면 규제부터 만드는데 그러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실행으로 옮기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대신 시장이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제도를 운영하고 기업에도 유인책을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권종호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 지배구조를 규제하기보다는 다양한 선택지를 주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시장에 공개하고 평가를 받으면 된다"면서 "시장 안에서 작동하게 만든 다음 규제와 인센티브를 모두 주면서 적극적인 기업 활동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가에 대한 시각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모든 사회 문제의 원인이 대기업에 있고 이들을 옥죄면 만사가 해결된다는 관점은 이들의 순기능마저 저하시킬 수 있어서다.
이병태 교수는 "재벌들이 이미 사회공헌을 많이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기업의 성과나 기부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데 세금 걱정부터 해야 한다면 누가 나서겠냐"고 반문했다.
이와 관련,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은 "4차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잡으려면 긴 안목이 필요하다"면서 "10년, 100년 뒤 기업이익을 생각하고 투자를 할 수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이를 국가 성장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 재계팀장 (ikh@newspim.com) 최유리 기자 (yrcho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