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라와 최순실을 패러디한 유세윤(사진 위)과 김민교 <사진=tvN 'SNL 코리아8' 캡처> |
[뉴스핌=이현경 기자] 한반도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반대 발언에 참여한 방송인 김제동이 SBS ‘미운우리새끼’에서 갑자기 하차했다. 최순실 사태를 풍자한 tvN ‘SNL 코리아’의 민진기PD는 돌연 다른 프로그램 연출진으로 차출됐다. 두 사람의 석연찮은 이동이 단지 시기적인 문제였다는 데 동의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국민의 뜻을 담아 신랄한 풍자에 앞장섰던 예능프로그램에 비상이 걸렸다. '최순실 게이트'. 그러니까 일반인이 국정에 개입하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방송계도 풍자를 통해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풍자만 하면 관계자들이 쫓겨나는 상황이 이어져 지켜보는 사람들을 당황하게 한다.
김제동은 2009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도식 사회를 본 이후 방송계에서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6년 KBS 연예대상을 받은 그는 이후로 KBS에서 볼 수 없었다. MC를 맡았던 KBS 2TV ‘스타골든벨’까지 하차하게 됐다. 그에게 대상을 안겨준 KBS는 김제동과 거리를 뒀고 주로 SBS와 MBC에서 그를 볼 수 있었지만 인기나 분위기는 예전만 못했다. 간혹 절친 유재석, 하하 등이 출연하는 MBC ‘무한도전’에 게스트로 초대됐지만 고정 출연을 맡을 기회는 사실상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다 SBS ‘미운우리새끼’ 고정 출연자가 되는가 싶던 김제동은 사드 문제로 성주를 방문한 8월 이후 9월 초 ‘미운우리새끼’에서 하차했다. 이에 대해 ‘미운우리새끼’ 측은 외압설을 부정했고 김제동의 스케줄 조정이 힘들어 함께하지 못하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팬들은 석연찮은 하차라고 입을 모았다.
풍자 코미디쇼 ‘SNL 코리아8’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5일 ‘SNL 코리아8’은 온 국정농단 의혹을 받는 최순실과 그의 딸 정유라를 풍자했다. ‘SNL 코리아8’의 크루 김민교는 언론을 통해 알려진 최순실로 완벽하게 변신해 눈길을 끌었다. 흰색 셔츠, 머리에 올린 선글라스, 그리고 치켜뜬 눈과 표정으로 최순실 흉내를 냈다.
특히 이 코너에서 김민교는 “죽을죄를 지었다”는 최순실의 검찰 출석 당시 말을 따라해 웃음을 줬다. 정상훈의 “곰탕 끓여놨다”는 대사에 “곰탕 먹어도 되냐”고 받아치며 최순실의 첫 검찰 조사 상황을 풍자했다.
유세윤은 ‘SNL 코리아8’에서 정유라를 패러디했다. 그는 ‘그리스 로마 신화’ 코너에서 페가수스처럼 상반신은 인간, 하반신은 말의 다리 분장을 하고 등장했다. 승마선수 차림을 한 그는 “우리 엄마 누군지 몰라? 엄마 빽도 능력인 거 몰라” “나 이따 광화문 갈 거야. 가지 말라고? 왜 거기 무슨 일 있어?”라며 정유라를 연상케 하는 대사를 선보였다.
최순실 풍자 이후 ‘SNL 코리아8’가 초심을 찾았다는 반가운 반응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딱 거기가지였다. 풍자 릴레이는 다시 멈췄다. 최근 청와대가 CJ 그룹 부사장 이미경의 퇴진을 요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 최순실 풍자로 인해 민진기PD가 떠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깊어졌다.
특히나 시즌을 마무리하지 않고 다른 프로그램으로 가는 경우는 처음이기 때문에 더욱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에 대해 ‘SNL 코리아8’ 측은 “민진기PD가 급하게 다른 프로그램의 연출을 맡게 돼서다. 청와대 외압설은 사실이 아니다. 이미 예정된 일”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SNL 코리아’ 시즌1과 시즌2를 연출한 장진 감독이 시즌3부터 하차하고 2012년 이후 ‘여의도 텔레토비’(대선 후보 문재인·박근혜·이정희 캐릭터로 정치 풍자한 코너)가 시즌4에서 없어지게 되면서 CJ를 향한 정치계의 외압설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한 스타들이 줄줄이 TV에서는 볼 수 없게 된 일도 있다. 물론 방송사에서는 외압설, 블랙리스트 등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최근 영화계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고, 최근 14년 동안 MBC 라디오와 함께한 최양락이 청취자와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하차했을 때 MBC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진 이유라고 해명했다. 최양락의 아내 팽현숙은 시사 풍자 때문에 남편을 괴롭힌 외압설을 언급하며 억울해했다.
현재 KBS 2TV ‘개그콘서트’는 ‘민상토론2’에서 개그맨 유민상과 김대성이 적나라게 시국 풍자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위 같은 악순환이 계속된다면 이 역시 언제까지 시청자가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방송관계자들 역시 시국이 시국인지라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담은 개그와 풍자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것에 상당히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뉴스핌 Newspim] 이현경 기자(89hklee@newspim.com)